브와디스와프 슈체파니아크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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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국가대표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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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제프 코틀라르치크 (19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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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와디스와프 슈체파니아크 (1937~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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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데우시 파르판 (1947~1950) |
이름 |
브와디스와프 슈체파니아크 (Władysław Szczepaniak) |
생년월일 | 1910년 5월 19일 |
사망년월일 | 1979년 5월 6일 (향년 68세) |
국적 | 폴란드 인민 공화국 |
출신지 | 프리비슬린스키 바르샤바 |
포지션 | 풀백 |
신체조건 | 170cm | 73kg |
소속팀 | 폴로니아 바르샤바 (1928-1947) |
국가대표 | 34경기 0골 (1930-1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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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어린 시절
슈체파니아크는 10살 무렵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1923년에 사망했고 그 후 그는 어머니가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을 도왔다.2.2. 선수 생활
2.2.1. 클럽
1926년에 처음 폴로니아 바르샤바에 입단할 때 슈체파니아크의 포지션은 센터 포워드와 하프백이었지만 1930년대 초반에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슈체파니아크는 1928년 팀의 1군에 데뷔한 이래로 단 한번도 팀을 바꾸지 않았고 팀의 간판 선수이자 주장이었다. 전쟁 기간에도 비공식 챔피언십에 참가했는데 당시 나치 독일은 폴란드인들의 조직적 스포츠 경기 참가를 금지했기 때문에 이는 애국적인 행위로 간주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1946년에 최초로 팀이 리그 우승하는 순간에도 그는 선수들을 이끌었다.
2.2.2. 국가대표
1930년 9월 28일의 스웨덴전이 슈체파니아크의 국가대표팀 데뷔 경기였고 폴란드는 스웨덴을 3대0으로 눌렀다.슈체파니아크는 1938년 월드컵과 1936년 올림픽에 참가했는데 올림픽에서는 노르웨이와의 3위 결정전에만 출전했다. 하지만 폴란드는 노르웨이에 2대3으로 져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월드컵에 슈체파니아크는 주장으로 출전했고 폴란드의 첫 상대는 브라질. 폴란드는 브라질과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펼쳤지만 5대6으로 아깝게 패했다.
그는 1947년까지 뛰면서 국가대표팀에서 34경기의 출전 기록을 남겼는데 폴란드 대표팀에서의 마지막 출전 당시 그는 폴란드 대표팀 최고령 출전자였고 이 기록은 2013년까지 지속되었다.
2.3. 이후
선수 생활을 마친 슈체파니아크는 주로 코치로 축구계에 남아 있었고 바르샤바에 있는 가금류 산업 협회의 행정부를 이끌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30년대 폴란드 최고의 수비수로 평가받는다.4. 수상
4.1. 클럽[2]
- 엑스트라클라사 우승 1회: 1946
- 폴란드 축구 챔피언십 준우승 1회: 1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