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15:46:03

북옥저


예맥의 국가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예맥인
고조선 | 진번국 | 임둔국 | 낙랑국? | 대방국?
예인
부여계 : 고리국? | 북부여 | 동부여 | 갈사국 | 졸본부여
옥저계 : 북옥저 | 남옥저 | 동옥저
동예계 : 불내예국 | 화려국 | 북명
맥인
고구려 | 백제 | 비류국 | 조나국 | 개마국 | 구다국 | 주나국 | 해두국 | 행인국 | 황룡국 | 맥국 | 대수맥 | 소수맥 | 양맥
}}}
}}}}}}

북옥저 (北沃沮)
{치구루(置溝婁)}
파일:external/www.gnedu.net/p6_01.jpg
▲옥저와 주변국 지도
존속기간 기원전 3세기 ~ 244년(기원후 3세기)
(기원전 3세기)[1]
위치 북간도
연해주 남부 지방
함경도 북부 지역
군주 군장 (읍군, 삼로)
종족 예맥[2]
언어 고대 한국어
사건 주몽에 의해 복속
성립 이전 부족국가
멸망 이후 ?[3]
현재 영토
[[북한|]][[틀:국기|]][[틀:국기|]]

[[중국|]][[틀:국기|]][[틀:국기|]]

[[러시아|]][[틀:국기|]][[틀:국기|]]
1. 개요2. 기록

[clearfix]

1. 개요

북옥저는 개마산 동쪽에 있었던 한국의 옛 나라로, '치구루'라고도 한다. 후에 동명성왕 주몽에 의해 고구려에 흡수되었다.

2. 기록

《후한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북옥저가 있는데 일명 치구루(置溝婁)이다. 남옥저에서 800여리를 간다. 그 풍습이 모두 남옥저와 같다. 경계는 남으로 읍루이고, 읍루 사람이 배 타는 것과 노략질을 즐기니, 북옥저가 이를 두려워하여 늘 여름에는 바위구멍에 숨어있다가 겨울에 이르러 뱃길이 통하지 않으면 아래로 내려와 읍락에서 살았다. 한 늙은 노인이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에서 베옷을 하나 얻었는데 그 모양은 보통사람 옷과 같으나 양 소매가 3장이나 되었다. 또 그는 말하기를, 언덕 위에서 보니 한 사람이 부서진 배를 타고 오는데 목 복판에도 얼굴이 하나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이 서로 통하지 않아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죽었다. 또 말하길 바다 가운데에 여인국이 있어 남자가 없다. 혹 전하기를 그 나라에는 신의 우물(神井)이 있어 이를 보면 쉽게 아이를 낳는다.[4]

기록에 의하면 남옥저와 320km 정도[5] 떨어져있었고, 읍루에게 상당히 당했던 것 같다.
[1] 고고학으로 확인했을 경우. [2] 위치상 말갈도 섞여 살았을 것으로 추정. [3] 고구려로 다수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 <위지>(魏志)에 관구검이 왕기를 파견하여 구려왕 '궁'을 쫓아 옥저 동쪽 경계에 이르러 늙은 노인에게 물어 전한 것이다. [5] 서울에서 한 부여 정도 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