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해양고등학교 釜山海洋高等學校 BUSAN MARINE HIGH SCHO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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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 <colbgcolor=white,#191919> 1956년 3월 13일 |
폐교 | 1995년 2월 28일 |
유형 | 해양계열 특수목적고등학교 |
성별 | 남자고등학교 |
형태 | 사립학교 |
학교법인 | 신민학원(현 부일학원) |
주소 | 부산광역시 서구 충무대로 133 ( 남부민동)[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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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산광역시 서구 남부민동[2]에 있었던 사립 해양 계열 특수목적고등학교[3]로 대한민국 최초의 특수목적고등학교 중에 하나였다. 2018년에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가 폐교되기 전까지는 부산에서 마지막으로 폐교된 정규 고등학교였다. 현재 이 학교의 기능은 부산 영도구 동삼동에 위치한 부산해사고등학교로 이관되었으며, 학적부도 신민학원(현 부일학원) 계열 학교( 부일외국어고등학교, 부일전자디자인고등학교)들이 아닌 부산해사고등학교가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2. 역사
1956년 3월 13일에 사립 선원 양성 학교로 개교 하였으며, 1974년 고교 평준화를 앞두고 1년 전인 1973년에 대한민국 최초의 11개 특수목적고등학교[4] 중에 하나로 지정 되었다. 덤으로 1983년 교복자율화 조치 당시에 교복 존치가 결정된 학교였다. 그래서 교복자율화 시기에도 교복을 입고 다니던 소수의 학교 가운데 하나였다.하지만 1990년대 이후로 힘든 일을 기피하는 사회 풍조가 만연하면서 부산해양고등학교는 1991학년도 학생 모집에서 900명 모집에 649명이 지원하여 0.71대1이라는 저조한 경쟁률을 보였으며[5] 국립 각종학교인 부산선원학교가 승선률이 97%였던것과 달리 부산해양고등학교의 승선률은 20%에 불과하였다. [6]
결국 1991년 8월 5일에 해운항만청 및 교육부는 국립 초급간부선원 양성 각종학교인 부산선원학교와 인천선원학교를 정규 특수목적고등학교로 전환하는 방침과 함께 부산해양고등학교를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하기로 신민학원과 합의를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무언가가 꼬인 것인지 결국은 부산해양고등학교는 폐교될 처지가 되고 말았다. 1992년에 사하구 감천1동으로 이전을 하면서 마지막 학생을 모집하였고, 1995년 2월 28일을 끝으로 최초의 특수목적고등학교인 부산해양고등학교는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하면서 퇴장하였고 그 자리는 부산해사고등학교가 대체하게 되었다.
3. 국립부산선원학교와의 통폐합 신경전
1991년 8월 5일에 해운항만청과 교육부의 방침으로 부산해양고등학교와 국립부산선원학교의 통폐합이 예정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두 학교간의 알력이 상당하였다. 해양고 재학생과 동문들은 해양고의 40여년에 가까운 역사와 기수를 승계하고 '국립부산해양고등학교'라는 교명을 원하였으나 선원학교의 학생들과 동문들은 사립학교의 역사를 따를수 없다고 반발하였고 부산해운고등학교로 교명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것 때문인지 해양고를 배제하고 선원학교를 정규학교로 바로 계승하여 전환하는 방침이 되니 이제는 해양고 재학생들과 동문회가 가만히 있지 않는 등 상당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과거에도 해양고와 선원학교 학생들이 덕명여자상업고등학교(현 부산마케팅고등학교)에서 패싸움을 벌였던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두 학교 간의 신경전은 필연적인 일이었다.결국 초급간부선원 양성을 위한 새 국립 고등학교는 선원학교나 해양고 학생들의 바람과는 달리 부산해사고등학교라는 제3의 이름으로 확정되었고, 1995년 부터 해양고 학적부는 부산해사고등학교로 통폐합하여 관리하기로 방침이 정해지자 역시 선원학교 재학생들이 들고일어나버렸다. 해양고 학적부 이관에 반발한 선원학교 재학생들은 1992년 9월 28일부터 수업거부에 들어가더니, 9월 30일에는 집단 자퇴서를 제출하고 10월 14일에는 봉래교차로에서 가두시위를 벌이는 등 3주 이상 수업을 거부하였다.
선원학교 재학생들은 해양고 학적부가 해사고로 이관되는것은 선원학교의 전통이 말살된다고 주장하면서, 폐교되는 사립 해양고 학적부는 교육청이나 신민학원(현 부일학원) 계열 학교인 부일전자공업고등학교(현 부일전자디자인고등학교)에서 보관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해양고의 학적부는 1995년부터 새 국립학교인 해사고로 이관되어 보관될 것이 확정되자, 그 과정에서의 반발 때문에 해사고의 역사나 기수는 선원학교의 것을 따르게 되고, 해양고의 것은 배제되게 되면서 결국 두 학교의 신경전은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봉합되면서 잠잠해졌다.
해양고의 학생 모집이 중단된 1993년 이후부터는 신민학원은 부일전자공업고등학교를 운영하고, 1995년 2월 28일 부산해양고등학교를 폐교한 바로 다음날인 3월 1일부터 부일외국어고등학교를 개교했지만, 이들 학교들 역시도 양쪽 모두 해양고와는 법적으로 별개의 학교가 되면서 직접적 연결고리가 없는 데다가 해양고의 역사나 기수를 승계하거나 복원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봐서 신민학원에서도 퇴출 직전의 해양고를 그리 달가워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7]
4. 학과
1.항해과(선장)2.기관과(기관장)
3.통신과(통신국장)
5. 여담
- 부산에서 폐교된 학교 중에서는 몇 안되게 동문들로 구성된 총 동창회가 결성된 학교로, 2018년 현재까지도 총동창회의 활동이 활발하다. 비록 폐교된 학교이기는 했지만 이 학교가 존재하던 당시에는 상당한 명성을 지닌 학교였고 자부심도 상당하였기에, 학교가 사라졌다고 해도 이 학교 동문들은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 이 학교가 폐교되고 후속 학교로 대체되는 과정을 보면 브니엘중학교와 거의 같다. 다만 두 학교의 폐교사유는 꽤나 다른데다가, 부산해양고등학교의 경우는 브니엘중학교 처럼 퇴출이 확정된 상태로 이전하기는 했으나 이전한 이후에도 1992년에 딱 한번의 마지막 학생들을 모집했다는것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그것 외에는 두 학교 모두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되었다.
- 병설중학교로 1961년 12월 30일에 설립된 부산해양중학교가 있었으나, 1974년 3월 1일을 끝으로 폐교되었다. 아마도 평준화 정책으로 인하여 폐교된 것으로 보이지만 부산해양고등학교와 달리, 이 학교의 학적부는 같은 재단의 학교인 부일전자디자인고등학교에서 보관하고 있다.
-
부산의 고등학교 중에서 교복이 가장 멋있었던걸로 유명했다. 동복은 해군 정복과 비슷한데다가 입고 다니면 천편일률적인
가쿠란 교복의 다른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확연히 눈에 띄었고, 하복은 상하의가 흰색이었으며 구두에 광을 내고 다녔었다. 그래서 이 당시 주변 학교에서는 부산해양고 교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부산해양고 학생들은
해군 빵모자풍 학모로 빡빡머리를 가리고다니면서[8] 한껏 멋을 뽐내고 다녔다고들 하며, 1983년 교복 자율화 당시에도 철도고등학교와 함께 규정 적용 제외 대상으로 지정되어서 교복자율화 시대에도 계속 교복을 입고 다녔다. 폐교 직전에는 어떤 형태의 교복이었는지는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서 불명. - 부산 소재 고등학교였지만 정작 부산소재 학생들의 비율은 생각보다는 낮았고 전국단위 모집으로 타 지역에서 유학온 학생들이 많았는데 제주도등 전국 팔도에서 유학온 학생들이 특히 많았었다고 한다. 27기생부터 기숙사가 생겨 1.2학년 총 400명 가량의 지방학생들을 수용했고 그외는 모두 하숙집이나 자취 생활을 하였다
[1]
현재는 대림비치아파트가 들어서있다.
[2]
1992년에
사하구
감천동 현재의
부일전자디자인고등학교,
부일외국어고등학교 건물로 이전하기는 했지만 통폐합으로 퇴출이 확정된 상태에서 이전하여서 크게 의미는 없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학생을 모집하기는 했지만...
[3]
현재의
마이스터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당시 특수목적고등학교는 지금의 마이스터 고등학교와 비슷한 포지션으로, 특수목적고등학교가 지금의 위상을 지니게 된 것은
과학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가 특수목적고등학교에 편입된 후의 일이다.
[4]
당시에 '특수목적고등학교'라 불린 학교들은 지금의
마이스터고등학교의 기능을 했었어서 특수목적고등학교라는 용어에는 '명문고'의 의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국제고등학교가 차례로 특수목적고로 등록된 후 학교 유형 자체를 재분류하여 기존의 농업계, 공업계, 해운계, 상업계 같은 직업 계열의 특수목적고로 불렸던 학교들은 모두
특성화고등학교 혹은 마이스터고등학교라는 별도 카테고리로 분리되어 특목고 하면 영재학교(법적으로는 고등학교가 아니나 사회 통념상 특목고처럼 간주된다.), 과학고, 외고, 국제고를 떠올리게 되면서 지금의 이미지가 정립되었고, 대신 특성화고의 인식 개선을 위해 우수 특성화고를 특목고의 일종인 마이스터고로 전환함으로써 마이스터고가 특목고의 한 종류로 지정되어 있다.
[5]
649명이나 지원해서 지금 기준으로 보면 학생수가 많은것 처럼 보이지만, 경쟁률이 0.71대 1이었기에 원서만 넣어도 합격으로 입결이라는거 자체가 존재하지 않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소위말하는 학습부진아와 문제아들이 대거 들어오는 바람에 학생 수만 많을 뿐 학생들의 수학능력은 많이 떨어지게 되었다. 부산해양고등학교의 최전성기 시절에는 경쟁률이 높았었고 가난하지만 중학교 성적이 뛰어났던 학생들이 전국에서 많이 찾아왔다는 점과 비교하면 1991년 당시의 학교 상태는 학생들의 수학능력뿐만 아니라 승선률까지도 20%에 불과하게 되어 상당히 저조해지는 등
특수목적고등학교(요즘의
마이스터고등학교 개념)로서의 본기능을 사실상 상실하게 된 수준이고 최전성기와 비교했을때는 정말로 영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6]
그 외에도 부산해양고등학교 출신의 경우 폐교한지 2년후인 1997년 기준으로 이직률은 무려 87.3%에 달하였으며 해기사 면허 미보유자 비율이 무려 77.1%에 달하였다. 1990년대 이후로는 해양계열 특수목적고등학교로서 기능을 거의 상실한 수준이 돼버렸다.
#
[7]
이미 1980년대 후반 부터 신민학원은 해양고를 처분할 계획을 세웠다는
카더라가 있다.
[8]
두발규정 자체는 스포츠머리를 허용해줘도 널널한 학교 취급이었던 시대였고, 부산해양고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