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감독 중 국내외적으로 가장 높은 위상을 올린 4명의 감독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을 가리키는 용어. 4명의 감독 모두 한국 영화 시장의 르네상스로 꼽히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등장하여, 팬데믹이 휩쓴 2020년대 이후에도 꾸준히 거장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감독들이다.2. 유래
원래부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을 꼽으라면 이 4명은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감독들이였다. 하지만 '봉박홍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한국 영화계에서 이 4명 이후 차세대 거장이 나오지 않는다는 위기론이 제기되며 기성세대 거장들을 묶어 부르기 위한 용어로 '봉박홍이'가 대두되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거장 감독들을 묶어 부르는 단어는 '봉박홍이' 내지는 이와 비슷한 용어가 존재했으나, 신조어로써의 지위를 얻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영화 위기론에서 비롯되었다.
각종 언론에서 '봉박홍이'라는 용어의 노출이 크게 증가한 것은 2024년 개최된 제77회 칸 영화제부터다. 이 해의 칸 영화제에 한국 영화는 비경쟁 심야 상영 부문에 《 베테랑2》 딱 한 편이 초청된 것에 그치며, 한국 영화계 차세대 거장의 부재가 현실화되었다는 지적과 함께 기성세대 거장을 '봉박홍이'라는 용어로 묶어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
3. 위상
2020년대 초반엔 한국 영화계에서 세계 3대 영화제라 불리는 칸, 베니스, 베를린 영화제의 경쟁 부문을 당당히 입성할 수 있는 감독은 오로지 이 4명밖에 없을 정도로 독보적인 위상을 지녔다.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각종 영화제에 초청되며 위상을 쌓은 몇몇 감독들이 있지만, 경쟁 부문에 꾸준히 초청될 정도의 드높은 명성을 10년 넘게 현재진행형으로 유지하는 한국 감독은 찾아보기 힘들다.-
봉준호
2003년 《 살인의 추억》부터 한국 영화사에 유의미한 기록을 꾸준히 남겨 왔고, 《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 최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비영어권 영화 최초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을 비롯해 영화사에 중대한 기록들을 여럿 세우며 한국 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상승시킨 감독이다. 의외로 세계 3대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은 넷 중 가장 늦었지만,[1] 칸 영화제 비경쟁 진출 때부터 외신의 주목을 받아 할리우드와 협업한 영화를 여러 편 만들기도 했다. 흥행 성적에 있어서도 두 편의 천만 영화를 보유하는 등, 국내의 대중적인 지지도 매우 높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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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2000년 《 공동경비구역 JSA》로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여는 데 일조했고, 2003년 《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린 남자'로 명성을 날렸다. 이후에도 《 박쥐》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 헤어질 결심》으로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칸 영화제 중심으로 지지를 받으며 '깐느 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비교적 수위가 높음에도 특유의 매력적인 작품 세계로 일정 수준의 대중적 매니아층을 형성한 감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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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2004년 《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을 뚫은 것을 시작으로, 30편이 넘는 영화를 내놓는 다작 감독임에도 내놓는 작품마다 높은 확률로 서구 유명 영화제의 초청을 받는 감독이다. 2020년대에는 《 도망친 여자》, 《 인트로덕션》, 《 소설가의 영화》, 《 여행자의 필요》 4작품이 베를린 영화제에서 은곰상을 받으며 베를린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감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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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1990년대 후반 《 초록물고기》와 《 박하사탕》으로 국내 영화계에 일대 충격을 안겨 준 뒤, 《 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으며 세계적 위상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 연출한 《 밀양》, 《 시》, 《 버닝》 세 작품은 모두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으며, 그 중 《밀양》은 여우주연상, 《시》는 각본상을 수상했다.
4. 대항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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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사실 영화감독으로써의 세계적 위상은 김기덕이 이 4명에 비해 딱히 밀리지 않는다. 《 피에타》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한국 최초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받은 것도 그이고, 《 사마리아》가 베를린 감독상, 《 빈집》이 베니스 감독상, 《 아리랑》이 칸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을 받으며 한국 감독 중 유일하게 세계 3대 영화제에서 모두 상을 받은 화려하고 꾸준한 커리어까지 겸비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김기덕을 묶어 한국 영화계 거장의 계보로 '봉박홍이김'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김기덕이 이 4명에 비해 언급 빈도가 적은 이유는 폭력적이고 거친 연출 특성으로 관객뿐만 아니라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굉장히 갈리는 감독이기도 하거니와, 2018년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후 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및 샤라웃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봉박홍이'라는 용어의 정립이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고려하면, 이 때의 그는 업계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데다 이미 사망한 인물이였기 때문에 봉박홍이 4명만이 거장의 계보를 상징하는 용어로 정립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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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홍진
나홍진 감독의 경우 특유의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연출작이 단 3편밖에 없는 과작 감독인 데다, 아직 세계 3대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거나 수상하는 등 봉박홍이와 비견될 만한 커리어를 쌓지 못했다. 그럼에도 3편 모두 높은 작품성과 고유의 연출 스타일로 평론가와 대중을 막론하고 높은 지지를 받는 감독이며, 《 곡성》은 칸 영화제 비경쟁 진출 후 국내외적으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향후 봉박홍이의 자리를 위협할 가장 유력한 감독을 꼽으라면 대체로 나홍진 감독이 꼽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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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봉박홍이가 2000년대 한국 영화 르네상스와 함께 태동한 감독들이라면, 임권택은 그 이전의 시대에 한국 영화의 지변을 확대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 춘향뎐》으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한국 영화 최초로 진출한 것도, 《 취화선》으로 칸 영화제 본상을 최초로 수상한 것도 임권택이다. 다만 말년인 2010년대 들어서는 연출한 작품들이 화제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사실상 은퇴했기 때문에 봉박홍이와는 활동 시기가 겹치지 않는다. 그래도 각종 매체에서 한국의 위대한 영화감독 순위를 매길 땐 임권택과 김기영을 비롯한 고전 영화감독들이 봉박홍이 사이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봉박홍이는 국내외적 위상이 특출난 4명의 감독을 일컫는 단어인데 이들은 전성기가 너무 옛날이라 세계적 위상을 얻기에는 한계가 있었기도 하다.
5. 여담
봉박홍이 4명 중에서도 국내외적 위상과 대중적 지지 면에서 특출난 봉준호, 박찬욱 2명을 묶어 '봉박'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홍상수는 김민희와의 스캔들이 보도된 이후 한동안 국내 활동 및 언급이 줄어들면서 나머지 3명에 비해 대한민국 내의 위상이 다소 밀리던 때도 있었다. 이후에는 사건의 화제성도 시들해졌고, 홍상수가 이후로 베를린 은곰상을 4개나 받아 버리면서 탄탄한 커리어를 갖추자 홍상수도 다시금 대등한 봉박홍이의 일원으로 언급되는 편이다. 여전히 작가와 작품을 분리하여 볼 수 있느냐는 문제가 따라다니긴 하지만, 고소를 당하며 법적 문제를 일으킨 김기덕과 달리 홍상수는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수는 있어도 법적 문제는 아닌지라 상대적으로 언급이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