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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우레타니아 군주 ⵡⴽⴽⵓⵙ ⴰⵎⵣⵡⴰⵔⵓ | 보쿠스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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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보쿠스 1세 |
베르베르어 | ⵡⴽⴽⵓⵙ ⴰⵎⵣⵡⴰⵔⵓ | |
라틴어 | Bocchus I | |
생몰 년도 | 미상~기원전 62년 이전 | |
재위 기간 | 기원전 110년대~기원전 62년 이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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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우레타니아 왕국 군주. 유구르타 전쟁 때 사위 유구르타를 도왔지만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의 조언에 따라 유구르타를 배신하여 로마군에 넘기고 그 대가로 누미디아 서부 일대를 받아냈다.2. 행적
기원전 206년 누미디아의 마시니사 왕자가 히스파니아에서 조국으로 귀환하는 걸 도운 바가와 어떤 관계인지는 기록이 미비해서 알 수 없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바가의 아들이거나 손자일 거라 추정하지만 근거는 없다. 다만 기원전 118년 유구르타가 누미디아 왕으로 등극했을 당시에는 이미 왕위에 있었으며, 유구르타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 보냈다.기원전 106년, 유구르타 전쟁을 치르다 로마군에게 전 국토를 잃은 유구르타가 그에게 망명하여 구원을 호소했다. 그는 전 영토의 3분의 1을 줄 테니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로마는 신의가 없으며 이웃 나라를 파멸시키기 위해 안달하는 나라이니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하들 역시 그로부터 뇌물을 받아먹고 왕에게 로마와 항전할 것을 건의했다. 이에 그는 군대를 동원하여 로마군이 장악한 누미디아로 쳐들어갔다. 그와 유구르타의 군대는 겨울 숙영을 하러 돌아가고 있던 로마군을 공격했지만,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진두지휘하는 그들과 격전을 벌인 끝에 패퇴했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마우레타니아인과의 전투에서 상당한 인명 손실을 보자, 그들의 전투력을 좌시할 수 없다고 보고, 전투 대신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마리우스의 사절로서 마우레타니아에 찾아온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보쿠스에게 로마의 관대함을 차분히 설명하며, 유구르타를 내준다면 누미디아 영역 일부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한편, 유구르타는 술라 일행을 자신에게 넘겨주고 로마와 계속 싸운다면 막대한 재산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는 며칠간 밤을 지새우며 고민한 끝에 기원전 105년 유구르타를 유인하여 체포한 뒤 로마군에 넘겼다. 로마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에게 누미디아 서부 영토를 내주었다. 술라는 그가 유구르타를 자신에게 넘겨준 장면을 묘사한 금반지를 항상 끼고 다녔다고 한다. 그 후 그 후 로마에 표범과 사자를 포함한 아프리카산 동물들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등 로마와의 친선 관계를 굳건히 다졌다. 기원전 62년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작성한 연설문에 그의 아들 마스타네소수스가 마우레타니아 왕으로 언급된 걸 볼 때, 기원전 62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