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벤 쿠로키 Ben Kuro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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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7년 5월 16일 |
미국 네브래스카 고텐스버그 | |
사망 | 2015년 9월 1일 (향년 98세) |
미국 캘리포니아 카마리요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NNNcm, NNkg, 혈액형 |
가족 | 이름 (관계) |
학력 |
초등학교 (졸업·중퇴) 중학교 (졸업·중퇴) 고등학교 (졸업·중퇴) 대학교 단과대학 (학과1·학과2[복수전공] / 재학·학사·중퇴) |
종교 | 종교 |
직업 | 군인 |
소속 | 미합중국 육군 항공대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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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네브래스카 출신으로 태평양 전쟁 당시에 미국 육군 항공대로 참전했다. 1941년 진주만 공습이 일어나자 벤의 아버지 쿠로키 쇼스케는 아들 프레드와 벤에게 미군에 입대하라고 했다. 벤과 프레드는 그랜드아일랜드의 모병소에서 지원했지만 거절당했고 노스플랫으로 가 다시 지원했는데, 쿠로키란 성이 폴란드식 이름이라 생각한 모병관은 그냥 질문 없이 그를 통과시켰다. 사실 이는 농담으로 하는 말이고 모병관이 1명을 모병할 때마다 2달러를 받기 때문에 혈통 따윈 연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형제인 빌 쿠로키와 헨리 쿠로키도 같은 해에 입대했다.1942년에 텍사스의 셰퍼드필드에서 벤과 프레드는 훈련을 받았는데 일본계 미국인들은 해외로 배치되지 않을 거란 얘길 들었다. 쿠로키는 장교에게 부탁해 영국에 주둔한 미 공군 8군에 행정병으로 갔다. 당시 항공기 사수의 수요가 높았던 탓에 그는 지원했고 2주 동안 교육을 받은 뒤에 B-24 포탑상부 사수로 활약했다. 스페인령 모로코에서 갔다가 기체 문제로 착륙했다가 프랑코의 스페인 독재정부에 3개월 동안 붙잡혔다.
그의 동료들과 그는 미국 국무부의 신원 보장으로 풀려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복무했다. 그 후 주요 폭격 작전에 참여했고 태평양 전쟁에 참전시켜 줄 것을 요구했다. 거절당했지만 전쟁장관[2]인 헨리 스팀슨이 그를 보장하면서 일본계 미국인으론 유일하게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28회 출격하여 일본군을 박살냈다. 1946년까지 복무한 뒤 주로 기자로 일했으며 1984년 은퇴했다. 2015년 9월 1일에 9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