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5 22:21:45

바리사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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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번역3. 신학4. 율법 전문가 바리사이파5. 기타6. 관련 문서

1. 개요

예수가 활동했던 시대에 존재했던 유대교 경건주의 분파, 중간 계급 평신도 경건주의를 말한다.

2. 번역

바리사이파 사람은 1900년 편찬한 개신교의 신약성경전서(조선성서공회)에서부터 '바리새'로 옮겼으며, 1971년 공동번역 성서의 신약전서(대한성서공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 1993년 표준새번역 성경전서(대한성서공회)에서는 바리새파 사람, 천주교 성경(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는 바리사이로 옮겼다.

3. 신학

바리새 사람은 이스라엘이 그리스-로마 문화 곧 그리스와 로마 문화가 융합된 이방문화의 영향을 받아가는 헬레니즘화로 이스라엘 고유문화와 신앙을 잃을 것을 우려하여 오경(토라 또는 율법)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준수하는 데 철저함을 보였으며, 유대교 신학을 계승하는 업적을 남겼다. 이들은 천사 등의 영적인 존재를 받아들였고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모세5경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석하여 영적인 존재와 부활을 믿지 않는 근본주의자들인 사두가이파와 대립했다.
바리새파는 삶과 신앙을 지탱해주는 최고의 권위로 토라를 꼽지만 그들이 사는 사회에 직접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므로 시대적 변화에 따라 율법 정신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리새파의 저작 중 하나인 <피르케 아보스Pirke Aboth>에는 “율법 주변에 울타리를 치라”는 잠언이 수록되었는데, 이는 야훼의 율법을 조금이라도 어길 수 있는 만일의 사태를 막기 위해 경고성 규율을 이중삼중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려는 의도는 바람직하지만 도가 지나치다 보면 이처럼 부수적이고 본질적이지 않은 규율만 늘어나게 되어 신의 선을 기념하려는 본래의 의무를 넘어 짐스러운 의무로 전락하는 것이다.

성경의 탄생 / 존 드레인 저

4. 율법 전문가 바리사이파

이들은 안티오코스 4세의 헬레니즘 동화 운동에 가장 먼저 저항한 유대교 순수주의 세력인 '하시딤'으로부터 유래했다. 하시딤은 마카베오 전쟁 초기의 예루살렘 탈환 시점까지 마타디아 유다 마카베오를 지원했으며, 예루살렘 탈환 후 전쟁 후원을 중단하고 학구적인 분파로 변화하여 바리사이파로 발전했다.

바리사이파는 랍비들의 구전의 으뜸가는 해석가들이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중산층의 수공예인들과 직공들 가문 출신이었다. 가령 바리사이파였던 사도 바울로는 천막 제조업자였다. 그들은 농부들 집단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이 중요한 결단에 직면할 때 왕이나 대제사장의 의견을 따르기 보다는 바리사이파들의 의견을 따랐다고 했다. 백성들이 그들을 더 신뢰했기 때문에 바리사이파들은 “산헤드린”을 포함한 행정당국의 고위 관리들로 선출되었다. 요세푸스는 예수 시대에 팔레스타인에는 오직 6,000명만의 바리사이파인들이 살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대중들의 지지를 필요로 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수많은 군중들을 이끄는 예수의 능력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바리사이파는 “악인은 영원한 벌을 받고 , 의인은 죽은 후 부활한다.”고 가르쳤다(행 23:8). 그러나 다른 많은 유대 집단들은 이러한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대신 그들은 죽음이 영혼을 육체로부터 영원히 분리시킨다고 하는 헬라적이고 페르시아적 사상을 주장했다.

이것은 또한 많은 군중들이 예수를 따랐던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는 가난한 목수에 지나지 않았지만 으뜸가는 율법교사였다(마 7:28-29). 더욱이 그는 죽은 자가 부활할 것이라고 가르쳤다(눅 14:14, 요 11:25). 예수의 식사에 관한 가르침(막 7:1-9), 어른 공경에 관한 가르침(막 7:10-13), 안식일 준수에 관한 가르침(마 12:24-32)은 모두 바리사이파의 가르침과 일치하면서도 독특한 관점을 견지하고 있었다. 또한 예수는 유대 신비가들이 기술한 천사들, 귀신들, 다른 영들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것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5. 기타

  • 서구권과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경건한 체 하는 위선자들(특히 종교적인 맥락에서) 혹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를 바리사이라고 하는 표현이 있다. 현대 유대교 측에서는 자신들을 바리사이파의 후예로 보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을 불쾌하게 여긴다.
  • 요한의 복음서 5장 44절[1]에 따르면,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자신의 율법적 행위를 내세우며 교만하게 행동했던 이유 중 하나는 주위 사람들의 칭찬이라고 하며, 성경의 관점에서 봤을 때 누군가를 남들보다 나은 특별한 존재로 추켜세우는 칭찬은 죄에 해당한다. 기독교의 경우에도 다른 사람들의 칭찬에 맛을 들여서 열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기 쉽고 한순간에 세속화 되기도 쉽다.
  • 하지만 일제 시대를 살았던 식민지 조선의 김교신은 이런 바리사이파를 다르게 봤던 모양이다. 김교신은 "요즘 세상에는 차라리 위선도 그립다"며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전략) 온유하심이 비길 데 없으니 예수라고만 하면, 사람들이 비둘기와 양을 연상한다. 이것이 예수의 일면인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다른 반면이 있으니 위선을 보실 때의 태도가 그것이다. 저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팔고 사는 사람을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의 교의를 둘러엎으시면서, 교통순사가 노방 상매를 정돈하듯이 난폭한 솜씨를 보이신 것은 너무도 유명한 사실이었지만(마태 21:12, 13), 그 밖에 서기관과 바리새교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 진저!'라는 저주를 속사포처럼 연발하신 것도(마태 23장) 전혀 외식하는 자, 곧 위선자를 대하여서다. 비둘기 같이 순하시고, 창기나 세리는 오히려 용납하시던 예수가 위선자를 대할 때만은 마치 동성의 자극이 반발하듯이 격퇴하지 않고는 마지 않으셨다. 가증한 것이 많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장 가증한 것, 아주 견딜 수 없이 가증한 것은 위선이었다. 따라서 성서를 읽는 자도 그리스도와 아울러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위선자인 줄 알게 되었다.
마는 위선자의 표본으로 지적받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언행을 상고하면 저들에게는 차라리 기특한 것이 많았다. 저들은 '말만 하고 행치 않는' 것이 결점이었으나(동 23, 3), 그 하는 말은 옳은 말이었으므로, 예수도 자기 제자에게 '바리새인의 명하는 말은 준행하라'고 가르치셨다(동 23, 2). 저희는 헛된 맹세로써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였으나, 맹세란 것이 신성한 것인줄은 알았던 고로 지시할 물건을 고려하였다(동 23:16-22). 저희는 '잔과 소반의 거죽은 깨끗이 하되, 그 안은 토색함과 불의함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동23, 25)라고 책망받았으나 그래도 깨끗이 할 줄은 알았고 규모는 있는 사람들이었다. 저희는 선지자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의 비를 세움으로 책망받았으나(동 23, 29) 저희 스스로는 의인이 못 되면서라도 의인의 공적을 인식하는 안식만은 우리 조선 사람들보다 훨씬 나았다. 저희는 범사를 사람에게 보이려는 허영심으로 하였으나 그래도 선이라는 표준이 있는 백성이었다. 선을 행하지 못할 지라도 선을 행할 것이라는 도는 알았고, 이를 두려워할 줄은 알았었다.
돌이켜, 20세기의 문화를 자랑하는 현대인은 어떠한가? 현대인은 언행의 일치를 기하되 행실뿐 아니라 말까지도 선하지 않음을 귀히 여기며, 위선을 꺼려하는 고로 공연하게 불의를 말하고 비례를 행하면 도리어 솔직하고 철저하다는 사회의 찬탄을 받는 세상이다. 현대인은 도의의 기본을 파괴하고 선의 표준을 전복함으로써, 청천백일하에 불의를 감행하여, 위선의 필요성을 없이하였다. 오호라, 이제는 위선도 그리운 세대로다.
김교신 '위선도 그리워'(1933년 9월)
김교신의 말은 요약하면 언행일치를 운운하면서 대놓고 뻔뻔스러운 짓을 해놓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쩌라고?" 식으로 나오면서 "그래도 겉으로만 착한 척하면서 뒤로는 호박씨 까는 '위선자'들보다는 내가 더 솔직하지 뭘" "내가 왜 남들 눈치 보고 살아야 되는데? 자유민주주의 아니야? 싫은데 싫다는 티도 내 마음대로 못 내냐? 혐오할 자유도 없어?" 이런 태도로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일침이다. 이런 인간들보다는 그래도 부끄러움이 뭔지 알았고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선하다고 보일지는 머릿속에 개념을 두고 겉으로라도 착한 척하며 남들 시선을 의식할 줄 알았던 바리사이파가 더 낫다는 얘기다.

6. 관련 문서



[1] 너희는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도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바라지 않으니 어떻게 나를 믿을 수가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