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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샤쿠니 19대 샤 Վարազդատ | 바라다테스 |
||
제호 | 한국어 | 바라다테스 |
아르메니아어 | Վարազդատ | |
그리스어 | Βαρασδάτης | |
라틴어 | Varasdates | |
존호 | 샤 | |
생몰 년도 | 미상 ~ 미상 | |
재위 기간 | 374년 또는 375년 ~ 37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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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메니아 아르샤쿠니 왕조의 19대 샤.2. 생애
파파스의 이복형제 아노브의 아들로, 어린 시절을 로마 제국에서 보냈다. 그는 그리스에서 열린 올림피아 제전에 참여해 복싱 종목에서 우승했다고 전해진다. 374년 또는 375년 파파스가 피살된 뒤, 발렌스 황제에 의해 아르메니아 왕위에 올랐다. 당시 아르메니아군 총사령관은 무셰흐 마미코니안으로, 사산 왕조의 침략으로부터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강군을 양성하는데 힘을 기울였다.그런데 바라다테스의 유모 밧 사하루니가 절대 권력을 장악하는 데 방해되는 무셰흐를 제거하기 위해, 파파스가 피살된 배경엔 무셰흐가 있고 이제는 바라다테스를 죽이려 한다고 모함했다. 바라다테스는 연회를 열어서 무셰흐를 초대한 뒤 암살자를 시켜 죽여버렸고, 밧 사하루니는 권력을 독차지했다. 이로 인해 아르메니아 군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마미코니안 씨족은 바라다테스와 밧 사하루니를 적대했다.
그러던 중 그의 입지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를 옹립하고 아르메니아를 사산 왕조로부터 지켜주던 발렌스 황제가 378년 8월 9일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에서 고트군에게 완패하고 전사한 것이다. 마누엘 마미코니안 장군은 이 때를 틈타 379년 정변를 일으켜 밧 사하루니를 살해하고 그를 몰아냈다. 바라다테스가 로마로 망명한 후 어찌 되었는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이후 파파스의 두 아들 아르사케스 3세와 볼로가세스 3세가 공동 왕으로 등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