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1489><colcolor=#fff> 모리스 프로스페르 펠릭스 마리 샬 Maurice Prosper Félix Marie Chal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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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5년 9월 5일 |
프랑스 르 퐁테 | |
사망 | 1979년 1월 3일 (향년 73세) |
프랑스 파리 | |
학력 | 생시르 사관학교 (졸업) |
군사 경력 | |
복무 기간 | 프랑스 공군 |
1923년 ~ 1961년 | |
최종계급 | 대장(Général d'armée aérienne) |
주요참전 |
제2차 세계 대전 알제리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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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공군의 장군으로 1961년 4월 발발한 장군들의 쿠데타 당시 주모자 중 한 사람이었다.2. 생애
1905년 보클뤼즈의 퐁테에서 태어났다.1923년 생시르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25년 소위로 임관했다. 졸업 후 공군에 입대하여 조종사 교육을 받았으며 1932년 대위로 진급했다. 1937년 고등항공학교에 입학하고 1939년 소령으로 진급했다.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북부의 공중전에 참전하여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프랑스 침공 이후 비시 프랑스의 공군 장교로 아비뇽에 배치되었다. 1942년 나치 독일이 비시 프랑스 관할 지역을 점령하면서 레지스탕스에 뛰어들었으며 기(Guy)라는 활동명을 사용하였다. 또한 비시 프랑스의 공군 장교라는 신분을 이용해서 독일 공군의 기밀을 런던으로 보냈다.
전후 프랑스 공군의 참모본부로 배속되었으며 1949년 준장으로 진급하여 프랑스 보호령 모로코에서 공군을 지휘하였다. 1953년 항공전술학교장으로 임명되고 소장으로 진급했다. 1956년 수에즈 전쟁 당시 프랑스 대표단으로 이집트에 파견되었으며 1958년 라울 살랑 장군의 공군 보좌관이 되었다.
1961년 샤를 드골이 알제리에 자결 원칙을 적용할 것을 밝히자 드골에 반발하여 4월 에드몽 주오, 라울 살랑, 앙드레 젤레르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961년 금고형을 선고받고 라상테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1966년 풀려났고 1968년 드골에 의해 사면되었다. 말년에는 회고록을 집필하고 1979년 1월 8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