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3 21:39:18

모르몬교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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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범행동기4. 범행 이후의 행적

1. 개요

1985년 10월 15일 미국 유타 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위조문서 사기꾼 마크 호프만 모르몬교 교회를 상대로 벌인 사기극과 살인 사건. 2021년 동 사건을 다루는 동명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제작되었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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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0월 15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사제폭탄이 터지면서 2명이 사망했는데 피해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모르몬교)를 믿고 있었다. 이 둘을 살해한 용의자는 바로 다음 날 본인의 자동차에서 사제폭탄이 오발로 폭발하면서 밝혀졌다.

그는 당시 유타주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31살의 문서수집가 마크 호프만이었다. 마크 호프만은 유타주립대학교 의과대학을 전공한 수재였고 네 명의 아이를 둔 가정의 아버지였으며 의과 전공을 살리지 않고 젊은 수집가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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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는 1830년부터 시작된 역사를 이어나가기 위해 역사 보존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마크 호프만은 그것을 돈벌이의 기회로 삼기 시작했는데 당시로부터 150년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가 시작될 때 있었던 기록과 비슷한 날조 서류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신실한 모르몬교 신자인 부모 아래에서 자랐기 때문에 교회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반대로 신앙을 잃고 가십거리에 더욱 집중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밝혔으며 교회의 역사에 숨은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계속해서 날조 자료들을 만들고 해당 교회에 팔아넘기려는 시도를 했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1830년에 시작된 종교로 교회의 역사 및 당시 자료에 대해 많은 신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크 호프만은 그 점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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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압수수색에 들어간 마크 호프만의 집에서는 무려 446개의 위조품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런 범죄사실을 알고 있던 주위 친구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저명한 문서수집가인 스티브 크리스텐슨이 있었다. 스티브 크리스텐슨은 마크 호프만의 범죄사실을 밝혀내고자 했고 진실이 드러날까 걱정했던 마크 호프만은 패닉 상태에서 준비한 사제폭탄으로 1985년 10월 15일 스티브 크리스텐슨과 캐시 시트(개리 시트의 아내)를 살해했다.

다음날인 1985년 10월 16일 마크 호프만은 자신의 차에서 세 번째 폭탄이 터지게 되면서 부상을 입었다. 경찰은 이를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마크 호프만의 범죄사실을 밝혀냈다.

3. 범행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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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호프만의 사제폭탄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 스티브 크리스텐슨과 캐시 시트

마크 호프만은 위조한 고문서 자료들로 애리조나, 콜로라도 등지에 많은 고객들을 두고 있었으며 많은 수집가들을 대상으로 30세의 나이에 한화로 환산하면 15억원 정도의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도 많은 날조 자료들을 판매하려고 했지만 교회는 다른 분석가 및 수집가들을 동시에 고용해 진위여부를 판단하여 마크 호프만의 제시액의 1/10 정도인 한화 5000만원 정도만 지불했다고 한다. 마크 호프만은 나이에 비해 너무 빠르게 부가 축적되자 파란색 스포츠카를 구매하고 사제총기, 사제폭탄 등을 구비하기도 했는데 그의 사치행각은 부가 축적되는 것보다 빨랐고 2년도 채 되지 않아 10억 정도의 빚을 지게 되었으며 훗날 검찰에서 더 많은 돈이 필요했던 이유는 날조했던 문서들 사이에 진짜 고문서를 비밀리에 구입해서 끼워넣어 진위구별을 어렵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자백했다.

그가 죽인 두 명 중 첫 번째 사람인 스티브 크리스텐슨은 자산관리사이자 교회가 의뢰한 고문서 수집가였다. 그의 역할은 마크 호프만의 자료가 진짜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것이었고 스티브 크리스텐슨은 그 자료들의 날조 가능성을 빠르게 눈치챘다. 마크 호프만은 목을 죄어오는 채무의 압박과 더 많은 날조 자료의 제작, 진본을 비밀리에 구매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에게 눈엣가시였던 스티브 크리스텐슨의 집에 갈색종이로 감싼 소포를 보냈는데 그 소포 속에는 마크 호프만이 만든 사제폭탄이 들어 있었고 소포를 열어 본 크리스텐슨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몇 시간 후 크리스텐슨의 고용주를 암살하기 위해 소포를 보냈지만 고용주의 아내 캐시가 소포를 열었다가 그 자리에서 폭사했다. 마크 호프만은 취조 중 "내 추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검찰에 자백했다.

4. 범행 이후의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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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23일, 마크 호프만은 2급 살인과 사기, 기만, 문서위조 등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87년 8월 6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십이사도정원회의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호프만의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교회 신자들이 교회 역사에 대해 더욱 면밀히 이해하고 조심히 받아들여야 할 것을 강조하며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1988년 9월 15일, 모든 것을 잃고 종신형에 처하게 된 마크 호프만은 감옥에서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남았다.

2011년 1월 마크 호프만이 가석방 위원회에서 판사에게 쓴 편지가 공개되었고 "내 추악한 삶이 노출되는 것보다 타인이나 자신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낫다고 느꼈다"고 고백했다.

2020년 기준으로 마크 호프만은 미국 최고등급 보안 교도소인 구니슨의 주 교도소로 이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