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5 23:21:23

명장(영화)

파일:external/image.cine21.com/M0010001_Thewarlords_maintrailer.jpg

1. 개요2. 투명장3. 원작4. 여담

1. 개요

원제는 '投名狀'(투명장). 영제가 'The Warlords'였던데다가 한국에 와서 제목이 '명장'이 된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어떤 명장(名將)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착각했다.[1] 2007년 진가신, 엽위민 감독이 제작한 영화.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등이 주연을 맡았다.

2. 투명장

원제인 '투명장'(投名狀)이란 “어떤 조직에 가입할 때 자기 이름을 적어 충성을 맹세하는 글”을 뜻한다.[2] 즉 극중에서는 주인공들이 형제의 의를 맺기로 하는 맹세문이 바로 이 투명장으로, 형제의 의를 맺었는데 이를 배신한 자는 죽여버린다는 살 떨리는 내용이다. 의형제를 맺는 장면은 언뜻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를 연상케 하나, 그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고 있으면 어딘가 스산함이 느껴진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e Warlords'인데, 중국에서 영어로 수입 시 잘못 번역한 것을 한국에서 그대로 번역한 것처럼 보인다.

'투명장'이라는 말의 유명한 출전은 바로 수호전이다. 임충 양산박에 들어갈 때 왕륜이 투명장을 요구하는데, 참고로 왕륜이 임충에게 요구한 투명장은 문서가 아니라 행인의 목이었다. 즉, 아무 관계 없는 무고한 사람을 죽여 그 목을 가져와서 두령에게 다른 마음 없음을 표시하라는 것. 다만 수호전에서 왕륜은 탐욕스럽고, 겁이 많은 소인배로 굳이 문서로 써도 될 투명장 대신에 사람 모가지를 요구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으로, 일단 죄없는 사람 모가지를 요구하는 것은 도적에 속하는 녹림인들의 기준으로도 수준 미달의 행동이라 상당한 무리수였다. 실제로 수호전를 읽어보면 임충은 자기 말은 반드시 지키는 협객 중의 협객으로 나오는데, 애시당초 투명장의 내용이라는 것이 배신하면 자진하겠다는 수준의 내용이라 이 어겼더라면 당대 중국 사회에서 중시되는 명예를 자기 손으로 박살내는 격이므로 엄청난 타격이 있기 때문에 문서만으로도 충분히 무게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임충도 당연히 글을 쓰게 될 줄 알고 종이와 붓을 달라고 요청했다가, 왕륜의 대답을 듣고 크게 당황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연히 당대의 사정을 모를리 없는 뒷세계 인간인 왕륜이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 다른 심보가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즉 임충이 죄 없는 사람 모가지를 가져오면 충성의 증명도 될 뿐더러, 임충의 명예도 떨어지는 격이라 양산박에서의 입지가 취약해질 것이라 자신의 입지를 위협할 수 없고, 만약 거절하면 충성 맹세를 거부한 셈이니 쫓아내거나 죽일 수 있는 명분이 되기 때문에 이런 지저분한 일을 시킨 것. 씁쓸한 것은 임충 또한 지은 죄가 너무 막중한 탓에 도저히 갈 곳이 없는 처지라, 결국에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길을 떠나게 된다.[3] 수호전의 투명장 에피소드가 매우 엽기적이고 개개인의 탐욕과 갈등에 좌지우지 되는 신뢰를 묘사하듯이, 이 영화 역시 그 단어를 제목으로 차용하여 “남자들의 목숨을 건 의형제 맹세라는 것은 언뜻 숭고해 보이지만 결국 자신들의 저열한 욕망에 의해 좌우되는 덧없는 것”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또 투명장의 맹세라는 것은 단순히 그냥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마저 거리낌 없이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무거운 것이고, 그만큼 형제의 의를 위해 투명장을 쓴다는 것은 목숨을 맡길 정도로 신뢰가 두터운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사회적인 명예 개념의 무게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 그것을 위해 남을 죽이는 것 쯤은 거리낌 없이 행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을 다루는 만큼, 투명장을 거리낌 없이 쓸 정도로 우애와 신뢰가 두터웠던 의형제들 조차도 세상이 만드는 거대한 흐름과 질서, 그리고 개인의 탐욕을 거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과, 그리고 이를 거침 없이 배신하고 출세 가도를 달렸던 방청운조차도 조정의 꼭두각시가 되었다가 의형제 손에 죽게 되는 허무하고 허탈한 결말을 통해 굴레에 갇힌 인간의 비극 또한 같이 묘사하고 있다.

한국판 자막에서는 '투명장'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고 그냥 '목숨을 건 맹세' 정도로 의역해서 내보냈다.

3. 원작

명장 영화 자체는 유명한 장철 감독의 1973년자마(刺馬)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자마는 제목부터 심플하게 ' 마신이를 찌르다'는 뜻인데, 이는 청대 말기에 벌어진 실화다. 동치 9년 7월 26일(서기 1870년 양력 8월 22일)에 벌어진 일로 도적 경력이 있던 장문상이 양강총독 마신이를 찔러 죽인 사건인데, 마신이는 회족 출신의 관료로 이날 상오 연병장에서 열병식을 마치고 총독부서로 돌아오던 도중에 자객 장문상의 습격을 받아 살해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서태후까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을 정도로 큰 사건이라서 장문상을 체포하여 철저한 수사를 반 년 남짓 진행했지만 결국 암살동기를 밝히지 못한 채 장문상은 도적과 내통하여 관리를 죽였다는 죄를 받아 사형에 처해지고 그의 심장은 도려내어져 마신이의 제단에 바쳐졌다고 한다. 청말 4대 기안 항목 참조.

이렇게 암살동기도 밝혀지지 않은 채 종결된 '산적 장문상이 총독 마신이를 암살했다'는 짤막한 역사적 팩트가, 후대의 묘한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온갖 음모론과 로망으로 치장하여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창조했다. 역사 속의 인물인 장문상과 마신이는 영화 명장 속에서는 이름이 바뀌어 등장한다. 금성무가 분한 강오양이 역사 속의 장문상에 해당하고, 이연걸이 분한 방청운이 역사 속의 마신이에 해당한다. 덧붙여 마신이는 청말의 유명한 정치가 이홍장과 과거급제 동기이며 마신이의 전임 양강총독은 다름 아닌 증국번. 마신이 암살 사건 이후 놀란 조정에서 증국번을 다시 불러다 부임시켰다고.

같은 소재를 다뤘다지만 장철의 자마와 진가신의 명장은 상당히 스타일이 다른데, 이는 장철은 선이 굵은 무협영화를 찍어왔던 감독이라는 것과 진가신은 선이 가는 멜로영화를 전문으로 해왔던 감독이라는 점에서 영화 자체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크다. 감독 본인도 자마와에 대한 비교가 부담스러웠는지 후에는 자마의 리메이크라는 표현을 안쓰게되었다. 인터뷰

무엇보다 중화권에서 만든 블록버스터 영화중 이만큼 어둡고 진지한 작품도 드물다. 주제도 뚜렷한 편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대의를 위해 가족과 형제의 의리와 같은 도덕을 저버리는게 옳은가에 대한 물음과, 그런 대의를 추구한답시고 속으론 자신의 출세를 추구하는 인간의 이중성, 철저하게 사람을 도구로 사용한 뒤 필요없어지면 거리낌없이 죽여 처리하는 권력의 냉엄함 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4]

이연걸은 여기서 복잡한 심리를 가진 악역 주인공, 소위 맥베스형 인물의 배역을 맡았는데, 그 배역의 복잡한 정신세계를 독하게 연기하면서,[5] 평론가들에게 이연걸이 '무술배우'가 아닌 진짜 '배우'가 되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자마에서도 같은 캐릭터를 연기해 열연을 펼쳐 금마상 우수연기특별상(優秀演技特别獎)을 타 기존의 이미지를 벗어나 진정한 배우로 거듭난 적룡의 경우와 유사.

4. 여담

  • 이 영화에는 원래 능지처참을 시행하는 장면이 등장할 예정이었고 실제로 찍었다. 생살을 발라낸 몸통 분장까지 완벽하게 재현했을 정도. 금성무가 그 장면에서 무척 고생했고 감독도 이 장면을 위해서 특수 효과 전담 기술자를 따로 고용하는 등 심혈을 기울였으나 문제는... 이 능지형 집행 신이 통째로 짤렸다. 잔인한 장면이라 관람등급만 높아지는 데다가 극장에 걸려면 시간상 편집할 수 밖에 없었다고. 감독이 그 장면 짤렸다고 금성무한테 연락하는데 면전에서 말하기가 무서워서 전화로 알려줬다고 한다. 능지처참 씬을 찍을 때 고통스럽게 죽는 놈 표정이 왜 그 모양이냐며 금성무를 갈구고 다시 찍기를 반복했으니 얼굴 보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
    DVD판에서는 서플먼트로 볼 수 있고, 유튜브에도 올라있다. 다만 팔다리가 훅훅 썰려나가고 대포에 맞아 온몸이 산산조각나는 본작의 고어함에 비하면 이 장면은 의외로 건전한(?) 편으로, 잔혹함보다는 금성무의 회한에 찬, 한편으로는 영화를 보는 관객을 째려보는듯 섬뜩한 표정연기가 일품이다. 역사에서 장문상의 심문이 꽤 오래 진행되었다는 기록이 있듯이 여기서도 처형 시점에서는 강오양의 머리가 상당히 자라 있는 것을 보면 방청운 살해 이후 반년에서 1년 이상 시간이 흐른 후에 능지형이 집행된 듯하다.
  • 조이호(유덕화)가 태평천국군의 안전을 보장하는 대가로 소주(쑤저우)성의 항복을 받아내지만 강오양과 방청운은 당장 식량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항복한 태평천국군 병사들을 학살한다. 이는 소주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각색한 것이다. 소주를 공격할 당시 상승군을 지휘하던 찰스 조지 고든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조건으로 소주를 무혈 항복시켰다. 그런데 고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상승군 이홍장은 당시 청나라의 불관용 원칙에 의거해서 항복한 태평청국군을 모두 죽여버린 것. 이 때문에 고든과 이홍장은 매우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1] 배경만 청대로 바뀌었고 의(義)를 저버린 형제를 처단하는 식의 홍콩 느와르에 가깝다. [2] 중한사전에는 단순히 '항복문서'라는 뜻만 나오나, 원래 뜻은 이것이다. [3] 물론 평범한 사람을 죽이는 것 만큼은 자신의 명예에도 어긋나고, 양심에도 매우 찔리는 일이라 수 차례 할까말까 고민에 빠지며, 결국 인상이 매우 험악하고 딱봐도 칼 좀 쓸 줄 아는 것 같은 양지를 발견하고 싸우게 된다. [4] 영화 시작이 방청운이 시체더미 속을 헤집고 나오는 씬이고 전투씬도 와이어 액션 같은 중국 무협식의 과장된 연출을 자제하고 아예 없진 않지만 굉장히 처절하며 후반부엔 먹여살릴 식량이 없다는 이유로 항복한 병사들을 학살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5] 실제로도 작중에서 굉장히 냉정하고 독한 성격이다. 여성 2명을 성폭행한 병사 2명을 부장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처형하였고 보병들이 태평천국군 보병들의 사격에 큰 피해를 입어 사상자가 많이 나오는데도 철수할 것을 주장하는 부장의 제안을 거부하고 끝까지 돌격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