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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o I | ||
생몰년도 | 미상 ~ 1004년 | |
출생지 | 아말피 | |
사망지 | 아말피 | |
재위 기간 |
966년 - 984년(아말피 공작) 986년 - 1004년(아말피 공작) 981년 - 983년(살레르노 대공) |
1. 개요
아말피 공화국 3대 공작, 살레르노 공국 11대 대공.2. 행적
아말피 공화국 2대 공작 세르기우스 1세의 아들로, 958년 아버지가 공작에 취임한 직후에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966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공작위를 계승했고,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파트리키우스 칭호를 수여받았다. 973년 베네벤토 대공 아테눌프 2세의 아들이었으며 940년 12월 아버지가 사망한 뒤 백부 란둘프 1세에 의해 공동 대공에 선임되었다가 얼마 안가 추방당한 란둘프를 나폴리 공작 마리누스 2세와 함께 지원해 기술프 1세를 몰아내고 살레르노 공국을 장악하게 했다. 그러나 베네벤토 대공 판둘프 1세가 살레르노로 진격해 란둘프를 몰아내고 기술프 1세를 복위시켰다.981년 기술프 1세 사후 살레르노 대공위를 겸임하던 판둘프 1세가 사망하고 어린 아들 판둘프 2세가 살레르노 대공에 선임되자, 살레르노를 즉각 침공해 판둘프 2세를 몰아내고 살레르노 대공을 겸임했으며, 아들 조반니 1세를 공동 대공으로 세웠다. 이후 982년 7월 14일 콜로네 곶에서 시칠리아 토후국에게 참패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토 2세는 무슬림에 함께 대항할 동맹이 절실했기에 만소 1세가 살레르노 대공을 겸임하는 것을 인정했다.
983년 만소 1세가 정적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억압적인 정책을 실시하는 것에 반감을 품은 살레르노 주민들이 봉기해 만소 1세와 조반니 1세 부자를 축출하고 조반니 2세를 새 대공으로 선임했다. 1년 후인 984년에는 동생인 아달페르가 반란을 일으켜 형을 몰아내고 아말피 공작위를 찬탈했다. 하지만 2년 후인 986년에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아말피로 돌아와 아달페르와 그의 아내 드로사를 나폴리 공국으로 축출하고 복위에 성공했다.
이후 9산 안드레아 아포스톨로 성당을 세우고 987년 교황 요한 15세를 설득해 아말피를 대주교구로 승격하는 데 성공했다. 1004년에 사망했고, 조반니 1세가 만소의 뒤를 이어 아말피 공작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