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카 미쓰루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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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일본 시리즈 우승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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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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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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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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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니시가키 토쿠오 (1950~1953) |
2대 후지타 소이치 (1954~1955) |
3대 우노 미츠오 (1956~1960) |
4대 스나오시 쿠니노부 (1961~1962) |
5대 하마자키 신지 (19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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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하야시 기이치 (1964~1965) |
7대 이이다 토쿠지 (1966~1967) |
8대 벳쇼 타케히코 (1968~1970) |
9대 미하라 오사무 (1971~1973) |
10대 아라카와 히로시 (1974~1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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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히로오카 타츠로 (1976~1979) ★ |
12대 타케가미 시로 (1980~1984) |
13대 도바시 마사유키 (1984~1986) |
14대 세키네 쥰조 (1987~1989) |
15대 노무라 카츠야 (1990~1998)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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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와카마츠 츠토무 (1999~2005) ★ |
17대 후루타 아츠야 (2006~2007) |
18대 타카다 시게루 (2008~2010) |
19대 오가와 준지 (2011~2014) |
20대 마나카 미츠루 (2015~2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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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오가와 준지 (2018~2019) |
22대 타카츠 신고 (2020~)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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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리즈 우승 / ★: 센트럴리그 우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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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카 미쓰루 真中満 | Mitsuru Mana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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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1년 1월 6일 ([age(1971-01-06)]세) |
도치기현 오타와라 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우쓰노미야 가쿠엔 고등학교 - 니혼대학 |
신체 | 170cm, 88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92년 드래프트 3위 |
소속팀 | 야쿠르트 스왈로즈 (1993~2008) |
지도자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군 타격코치 (2009~2010)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군 감독 (2011~2013)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1군 메인 타격코치 (2014)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감독 (2015~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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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일본의 전 야구선수이자 야구감독. 야쿠르트 스왈로즈 한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한 프랜차이즈 스타였고 또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2. 선수 시절
고등학교 시절 팀의 3번 타자로 활약했고 대학교 시절에는 통산 타율 3할에 8홈런을 기록하며 베스트나인에 4차례 선정되었다. 1992년 드래프트에서 3순위로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지명되어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기존의 주전 중견수-1번타자였던 이이다 테츠야[1]와의 주전 경쟁에서 승리하여 1997년 시즌과 2001년 시즌 리그와 일본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였다. 1998년 시즌에는 전 경기에 출장했으며, 이듬해 1999년 시즌에는 처음으로 규정타석 타율 3할을 기록하였다.2005년 시즌에 아오키 노리치카가 급성장하면서 주전 자리를 내 주었지만 대타로 출장하여 3할을 기록하는 등 '대타의 신', '대타 직공'으로 불리웠다. 특히 후루타 아쓰야 감독 시절인 2007년에는 98경기 대타 출장이라는 일본프로야구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8년에는 14타수 1안타를 기록하였고,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프로 통산 성적은 1368경기 4274타석 3918타수 1122안타 54홈런 335타점 타율 .286.
3. 지도자 시절
은퇴 이듬해인 2009년 시즌에 야쿠르트 2군 타격코치로 지도자 생활 시작하였다. 2011년부터는 2군 감독을 맡아 2013년 2군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14년에 1군 타격코치로 승격되었다[2], 2015년에 오가와 준지 감독의 후임으로 야쿠르트 감독에 선임되었다.3.1. 2015년 시즌
2015년 시즌에는 개막 14경기 연속 3실점 이하를 기록한 투수진의 분발[3]로 13승 8패(4월 23일 현재)를 마크하며 리그 1위를 달리며 잘 해내고 있는 모양새. 그러나 5월 들어서 잦은 연패로 인해 17승 18패(5월 10일)로 3위로 처졌다.여담으로 이 야쿠르트의 예상 밖 우승으로 인해 한신 와다 유타카 감독은 시즌종료 후 자진사퇴를 선언했고, 요코하마의 나카하타 키요시 감독과 요미우리 하라 다쓰노리 감독 역시 일본시리즈 진출 실패 후 자진 사퇴, 주니치의 타니시게 모토노부는 선수를 은퇴하고 감독으로 전임하는 등 센트럴리그는 히로시마를 제외한 4팀이나 감독 교체/전임 감독화의 폭풍이 몰아쳤다.
3.2. 2016년
2016시즌은 지난해와 너무나도 다른 행보를 보였다.개막전에서 요미우리에 3연패를 시작으로 이리저리 치이다 꼴찌로 추락했다.그나마 야마다 테쓰토의 활약이 팬들에 위안을 삼았다. 홈런,타점에서 선두를 달리다가 8월중순 부상으로 3주간 결장했지만 복귀후 건재를 과시하여 9월 12일 현재 4위까지 뛰어올라 3위 DENA를 바짝추격해 2년연속 A클래스라도 찍자는 목표인듯....했으나 DENA가 9월 19일 경기에서 센트럴리그 우승팀 히로시마에 3대1로 승리하여 남은 경기결과에 상관없이 3위를 확정.막판에 한신에게도 추격을 당해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3.3. 2017년
2017 시즌 위기의 남자그리고 25년에 걸친 야쿠르트 프랜차이즈 스타 커리어를 마감하다.[4]
2017시즌은 WBC에서 홈런치고 랩하던 괴물이 그 동안은 개막전에서 못뛰었었는데 이번 시즌은 개막전부터 출장하기 때문에 지난 시즌보다는 낫지 않을까라는 희망고문을 했다. 3월 31일부터 시작된 DeNA와의 개막 시리즈에서 위닝시리즈를 기록해 일단은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그러나 바로 이어진 한신, 히로시마를 상대로 5연패, 주니치와의 첫경기도 내주면서 연패를 6으로 늘리며 곧장 DTD를 시전했고 그 후로는 5위 자리에 거의 고정되다가 5월 중순에 4연승으로 한번 반짝 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내 5연패. 교류전에 들어가기 직전의 주니치 전에서 1승을 거둔 뒤 교류전 들어와서 다시 1무 포함 10연패로 교류전 개막부터의 연패기록을 갱신. 17경기에서 1승1무15패를 기록하면서 구단사상 최악의 연패 신기록을 세운 팀에게 조차 깔린 최하위 신세가 됐다. 그 팀이 10경기 만에 교류전에서 첫 승을 거두고 구단사상 최악의 13연패에 종지부를 찍으면서 마침내 교류전에서도 최후의 0승클럽 멤버가 되면서 최하위로 추락했다.
그러나 7월 들어와서 하순이 다 되가는 20일까지 1승도 못 거두고 무승부 포함 13연패를 기록. 한 시즌 동안 두자릿수 연패를 두번이나 기록함과 동시에 1970년 야쿠르트 아톰즈 시절에 세웠던 팀 최다연패이자 센트럴 리그 연패 기록의 불명예 기록에 가까와지고 있다. 당장 21일부터 시작되는 한신 타이거스와의 3연전을 싹쓸이 당하면 그 당시의 기록과 동률을 이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아무리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쓸 선수들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손을 놓아버리면 구단도 마냥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는 일. 감독 본인의 지도자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결국 8월 22일, 자진 사퇴를 선언했다. 구단 측은 전력보강에 소홀했음을 인정하며 재신임 의사를 밝혔으나, 마나카 본인의 의사가 워낙 완강했다고 한다.
마나카의 후임으로 바로 전임감독이었던 오가와 준지 시니어디렉터가 4년만에 감독으로 복귀했다.
4. 관련 문서
[1]
준족 강견의 뛰어난 신체능력을 살린 수비로 유명했다.
[2]
이 해 야쿠르트는 전례없는 타선의 대폭발을 이루었다. 그러나 투수진의 붕괴로 팀은 꼴지로 떨어졌다... 자세한 항목은 팀 항목에.
[3]
1956년 니시테츠 이후 무려 59년만의 신기록이다.
[4]
입단부터 감독 퇴임까지 25년동안 선수, 코치, 감독으로서 단 한 순간도 팀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상황이 바뀌면 다시 어떤 형태로든 복귀할 가능성이 있으나 감독 본인 입장에서는 프로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팀을 떠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