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2 14:40:42

릴리우오칼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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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60D0D><colcolor=#ffffff> 제8대 하와이 국왕
릴리우오칼라니
Liliʻuokalani
파일:Liliuokalani_1891.jpg
이름 릴리우오칼라니
(Liliʻuokalani)
출생 1838년 9월 2일
하와이 왕국 호놀룰루
사망 1917년 11월 11일 (향년 79세)
미국 하와이 준주 호놀룰루
묘소 마우나 알라 왕릉
재위 하와이 왕국의 왕
1891년 1월 20일 ~ 1893년 1월 17일
서명
파일:릴리우오칼라니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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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60D0D><colcolor=#fff> 부모 아버지 카이사르 카파샤케아
어머니 케오호 카롤레
양아버지 아브네르 파키
양어머니 로라 코니아
배우자 존 오언 도미니스
종교 개신교 ( 성공회, 하와이 교회) }}}}}}}}}

1. 개요2. 생애3. 혈연 관계4. 창작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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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와이 왕국의 군주. 하와이 왕국의 최초이자 유일한 여왕이며, 칼라카우아 왕조와 하와이 왕국의 마지막 군주이다.

2. 생애

일찍이 신식 문물을 배워 하와이어 영어 양자에 둘 다 능통했고 작곡까지 했던 영민한 인물이었다( 알로하 오에가 그녀의 작품). 군주였던 오빠 칼라카우아가 1891년 사망하면서 왕위를 몰려받았다.

그녀는 하와이 미국인들을 그대로 뒀다간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이에 헌법 개정을 통해 이들의 참정권을 제한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각료회의에서 부결되면서 무산되었고, 이에 미국인의 농장을 국유화하는 조치로 대응했다. 하지만 미국인들도 반발했으며, 미 해군의 도움을 받아 수병 150명으로 왕궁을 점령, 미국인들에 의해 폐위당하고 하와이의 군주정은 폐지된다.[1]

폐위당한 이후 내내 미국 영국을 오가며 하와이 왕국을 되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 수소문했으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결국 하와이가 미국에 편입된 이후로 체포되어 재판에서 벌금과 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집행되지는 않았고, 이올라니 궁전의 구석 방에 유폐된 것으로 끝났다. 이후 풀려나 노년에는 평범한 미국 시민으로 살았고 79세로 사망했다.[2]

하와이 왕국을 먹은 지 약 100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 미국은 공식적으로 하와이 왕국을 무너뜨린 일에 대해 사과했다. 하와이 사과 법안 서명(영어)

3. 혈연 관계

릴리우오칼라니와 그의 가족은 하와이 왕국을 세운 카메하메하 1세의 후손이 아니나, 카메하메하 1세의 종조인 칼라니누이아마마오 왕자의 직계 후손으로 혈연 관계가 있다.[3] 5대 국왕인 카메하메하 5세가 직계 자손이 없이 사망하는 바람에 국가를 선거군주제로 개편하였으며, 이때 카메하메하 1세의 남동생의 손자인 루나릴로가 6대 국왕이 되었으나 역시나 직계 자손 없이 사망하여 칼라니누이아마마오 왕자의 직계 후손인 칼라마우가 7대 국왕이 되어 칼라마우 왕조를 열었다. 릴리우오칼라니는 칼라마우의 여동생으로 칼라마우가 사망한 후 선거로 뽑힌 군주다. 다만 작은 섬나라에서 좀 유력하면 어떻게든 혈연관계는 나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녀 또한 자손을 남기지 않았다. 형제들 중 한 명만이 딸 하나를 남겼는데, 일본과의 동맹을 위해 일본 황실과의 결혼을 추진하여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의 아들 히가시후시미노미야 요리히토 친왕과의 혼인을 추진했으나, 미국과의 갈등을 우려한 메이지 덴노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녀는 그 후 24세로 요절했다. 그러므로 지금 하와이 군주의 직계 후손은 단 한 명도 없다. 다만 현존 중이면서 가장 하와이 군주 가족과 가까운 혈연관계인 카와나나코아 가문도 칼라니누이아마마오 왕자의 직계후손이다. 카와나나코아 가문의 창시자인 데이비드 카와나나코아가 하와이 설탕 산업의 대부호였던 제임스 캠벨의 딸 아비게일 캠벨과 혼인하여 그 후손이 캠벨 가문의 재산을 상속받았고, 현 가문장인 쿠엔틴 카와나나코아가 주의원도 역임했던 적이 있는지라 현재에는 하와이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이 되었다.

4. 창작물에서

문명 6에서 원자 시대에 고용할 수 있는 음악가 위인이다. 뉴 프론티어 패스에서 마지막 DLC 지도자가 아니냐는 루머가 돌고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포르투갈이 마지막 문명 자리를 차지했다.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 두 컷 등장한다. 사진 컷과 알로하 오에를 부르면서 하와이에서 쫓겨나는 모습이 전부.


[1]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인물이 샌퍼드 돌로, 릴리우오칼라니가 폐위되고 하와이의 군주정이 폐지된 이후 건설된 하와이 공화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해 원주민들이 소유한 토지를 백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샌퍼드의 사촌인 제임스 돌이 이때 받은 파인애플 농장을 기반으로 세운 기업이 바로 열대 과일 회사 돌(Dole)이다. [2] 그나마 여생은 하와이에서 보낼 수 있었으며, 하와이 원주민들의 변함없는 존경을 받으며 살았다. 류큐 왕국 최후의 국왕으로서 도쿄로 끌려가 객사한 쇼타이에 비하면 나은 최후였던 셈. [3] 칼라니누이아마마오 왕자는 카메하메하 1세의 증조부였던 하와이 섬 대족장 키아베 2세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들인 칼라니오푸가 하와이섬 대족장이었던 당시 제임스 쿡이 하와이에 서양인 최초로 상륙하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