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27 22:57:45

로마노스 보이아스

이름 로마노스 보이아스
(영어: Romanos Boilas, 그리스어: Ρωμανὸς Βὀΐλας)
출생 미상
사망 미상
직위 원로원 의원, 헤타리아 근위대 지휘관
반란 대상 콘스탄티노스 9세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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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마케도니아 왕조의 반란자. 콘스탄티노스 9세를 상대로 반란을 꾀했으나 발각당했다.

2. 생애

11세기 동로마 제국에서 민정 및 군사 행정 방면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보이아스 가문의 일원이다. 1049년 콘스탄티노스 9세 황제에 의해 원로원 의원 겸 헤타리아 근위대 지휘관으로 발탁되었다. 미하일 프셀로스 요안니스 조나라스는 그가 방탕하고 사치스러워서 궁정의 재원을 낭비했다고 비평했다. 반면 요안니스 스킬리치스에 따르면, 그는 상당히 약아빠졌고 인성은 좋지 않았지만, 능력은 뛰어났다고 평했다. 1051년 또는 1052년, 그는 콘스탄티노스 9세를 타도하기 위한 음모를 주동하여 원로원 의원 몇명과 경호원들을 포섭했다. 프셀로스에 따르면, 그는 콘스탄티노스 9세가 조이 황후의 사망 후 결혼하려 했으나 테오도라 원로원에 의해 제지되었던 알란족 또는 조지아 출신의 공주와 결혼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콘스탄티노스 9세가 은밀히 그 공주와 밀회한다는 걸 알게 되자, 황제를 처치하기로 작심했다고 한다.

음모는 얼마 안가 발각되었고, 그를 비롯한 일당은 모조리 체포되었다. 콘스탄티노스 9세는 그를 용서해주려 했지만, 황제를 암살하려 했으니 마땅히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테오도라 황후와 콘스탄티노스의 여동생 에우프레피아의 강력한 권고를 이기지 못하고 유배보냈다. 하지만 열흘 뒤에 그를 사면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오게 했다. 이듬해, 황제에 대한 비방 편지를 쓰고 유포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콘스탄티노스 9세는 이번에도 너그럽게 봐줬다. 그의 이후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