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램지 맥도널드를 총리로 하는 내각을 다루는 문서.2. 램지 맥도널드 1차 내각
램지 맥도널드 내각 (제1차 집권)
Lamsay macdonald minist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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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6px -11px" | 1924년 1월 22일 ~ 1924년 11월 4일 | ||
출범 이전 | 이후 | ||
1차 볼드윈 내각 | 2차 볼드윈 내각 | }}} | |
<colbgcolor=#e50038> 국왕 | 조지 5세 | ||
총리 | 램지 맥도널드 / 제56대 | ||
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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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공급 |
(~1924.8.13.) |
3. 램지 맥도널드 2차 내각
램지 맥도널드 내각 (제2차 집권)
Lamsay macdonald minist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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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6px -11px" | 1929년 6월 5일 ~ 1931년 8월 24일 | ||
출범 이전 | 이후 | ||
2차 볼드윈 내각 | 1차 국민연립 내각 | }}} | |
<colbgcolor=#e50038> 국왕 | 조지 5세 | ||
총리 | 램지 맥도널드 / 제58대 | ||
여당 |
(~1931.8.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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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공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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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차 국민정부
1차 국가연립내각 (제3차 집권)
1st national gouvern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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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6px -11px" | 1931년 8월 24일 ~ 1931년 10월 27일 | ||
출범 이전 | 이후 | ||
2차 맥도널드 내각 | 3차 국가연립내각 | }}} | |
<colbgcolor=#808080> 국왕 | 조지 5세 | ||
총리 | 램지 맥도널드 / 제58대 | ||
부총리 | 스탠리 볼드윈 | ||
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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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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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 2기 내각이 붕괴한 이후 만들어진 과도내각이다. 독립노동당과 독립자유당[1]의 의석수가 상당했기에 조기 총선을 결정해야 했다. 국민정부는 단 28명의 여당의원이 있었고 사실상 보수당 내각으로 기능했다. 이 시기 추밀원 의장이자 보수당 당수인 스탠리 볼드윈이 사실상의 부총리로 활동했다. 이들은 노동당의 확장 재정안을 부결시켰고 정치적 갈등은 심화되었다. 경제난으로 인해 사회불안은 급속도로 확산되고 오즈왈도 모슬리같은 파시스트들도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5. 2차 국민정부
2차 국가연립내각 (제4차 집권)
2st national gouvern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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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6px -11px" | 1931년 10월 27일 ~ 1935년 6월 7일 | ||
출범 이전 | 이후 | ||
1차 국가연립내각 | 3차 국가연립내각 | }}} | |
<colbgcolor=#808080> 국왕 | 조지 5세 | ||
총리 | 램지 맥도널드 / 제58대 | ||
부총리 | 스탠리 볼드윈 | ||
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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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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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9.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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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총선에서 국민정부 연립정당들은 도합 554석이라는 초대형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국민노동조직은 25석이라는 의석만을 차지하였고 독립노동당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내부의 파시즘 운동으로 인해 내분을 겪고 밖으로는 좌경 정책으로 불안감이 심화된 중산층 유권자로부터 외면받아 90석의 초라한 성적을 받아야 했다.
2차 국민정부는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보수당과 스탠리 볼드윈의 주도로 굴러갔고 정작 총리인 맥도널드의 영향력은 약했다.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한 국민노동조직은 정작 빈민 구제를 위한 정책을 전혀 펴지 못했다. 한편 자유당은 1차 국민정부 수립 시기 분당한 국민자유당과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었는데 국민정부의 방침이 식민지를 연결한 블록경제(보호무역)이었는데 이는 자유무역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던 자유당에선 절대 받아듣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결국 자유당 조차 1년만에 정부에서 탈퇴하며 이후 국민정부는 말만 국민정부이지 보수당 내각과 그들에게 동조하는 노동당, 자유당 탈당파로 구성된 연립정부에 불과했다.
그러는 사이 독일의 총리가 된 히틀러는 라인란트 재무장을 하는데 이때 맥도널드는 심각한 건강 악화로 정무를 수행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볼드윈은 즉각 영국 해군의 군축을 중단하였으나 여전히 독일을 상대로 유화책을 펼쳤다. 맥도널드는 결국 건강 문제로 사임하고 추밀원 의장 볼드윈이 새 총리로 임명된다.
[1]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와 존 케인스를 비롯한 확장재정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