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0:43

동회(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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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董恢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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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이며 자는 휴서(休緒)로 형주 양양군 사람. 동윤전과 동윤전 주석 양양기에 행적이 전한다.

2. 생애

낭중을 지냈고 동윤이 일찍이 비의, 호제와 함께 밖에 나가 연회를 즐기기로 했는데, 나갈 수레가 이미 준비되어 동회가 동윤에게 인사를 해서 경의를 표했다. 동회는 나이가 어리고 관직이 낮았는데, 동윤이 나가는 것을 멈추고 그를 접대하는 것을 보고 불안해하며 떠날 것을 청했지만, 동윤은 허락하지 않고 말했다.

이에 동윤은 자신이 니온 목적이 좋아하는 선비들과 환담하기 위한 것으로 그대는 벌써 자신을 굽히고 쌓아놓은 것을 말하려 한다면서 이 말을 버렸으니 그 연회에 가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동윤은 말을 수레에서 풀도록 했고 비의 등도 수레를 멈추고 가지 않았으며, 동윤이 정직함을 지키고 아래 선비들에게 겸허하게 대하는 것이 대체로 이와 같았다고 한다.

유비가 입촉한 후에는 선신중랑에 임명되어 비의의 부사가 되어 오나라로 향했으며, 손권이 잔치를 베풀었다가 크게 취해서 비의에게 양의, 위연은 소인배로 제갈량이 없어지면 화란이 일어난다면서 미리 방지할 생각을 하지 않냐고 했다.

비의가 몹시 놀라 대답하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도움을 요청하자 동회는 비의를 주시하고 양의와 위연이 협력하지 않는 것은 사적인 분노에 따른 것으로 영포 한신처럼 제어하기 어렵지 않고, 후환을 예방하기 위해 임용하지 않으면 장래를 대비하려다가 풍파를 일으켜 배를 부수게 되는 것이니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대답하라고 했다.

손권이 이를 보고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으며, 제갈량이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동회의 말을 옳게 여겼으며, 동회는 오나라에서 돌아온 지 3일도 지나지 않아 승상부속이 되었고 나중에는 승진해 파군태수가 되었다.

배송지가 양양기를 동윤전에 인용하고 살펴보고는 한진춘추에도 이러한 말이 실려있지만, 동회가 가르쳐준 바가 있지 않은데다가 말 또한 조금 다르며, 양양기와 한진춘추 모두 습착치에게서 나왔지만 이처럼 동일하지 않다고 했다. 동윤전 본전에서 동회의 나이가 어려 관직이 미미하다고 기록된 것에 대해 만약 이미 승상부에 속하고, 나아가서는 파군태수에 이르면 관직이 미미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이로 인해 배송지는 습착치의 말을 의심스럽게 여겨 살펴보지 않게 되었다고 적었으며, 자치통감에서는 비의가 손권의 말에 대답한 것이 동회의 조언이 아닌 비의가 스스로 한 것으로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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