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10:26:55

깃털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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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설명4. 왼손잡이용/오른손잡이용5. 모양6. 언어별 명칭

1. 개요


양피지 위에 깃펜으로 글씨를 쓰는 모습

Quill Pen

서양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했던 의 한 종류로 고전 필기구의 대명사. 아예 '펜(pen)'의 어원이 라틴어로 '깃털'이라는 의미를 지닌 'penna'이다.

2. 역사

고대 이집트에서는 갈대 파피루스의 줄기를 따다가 줄기 끝을 물어뜯거나 칼로 잘라내어 뾰족하게 만든 뒤에 사용했다. 이러한 갈잎 펜은 고대 로마 시대까지 잘 쓰였으나 관리하기 번거로웠고 적당한 갈대를 구할 수 없었던 지방에선 사실상 쓰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재료를 이용한 펜이 필요했다. 이때 거위, 등 큰 새의 날개 깃털은 깃대 안이 비어 펜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으므로 깃털을 이용하여 펜을 만드는 방법이 나왔다.[1] 이후로 19세기까지 문제 없이 쓰이다가 발전된 기술과 기계식 공정의 도입 덕분에 볼펜, 만년필 등 현대적인 필기도구로 대체되자 급격하게 쇠퇴하였다.

한반도에서 사실상 깃털펜을 처음 대중 앞에서 사용한 이는 바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일 듯 싶다. 조선 조정에 체포된 후 대신들이 프랑스의 서신을 보고 이런 작고 가는 글씨를 어떻게 쓰는지 물어보자, 김대건은 새의 깃털을 가져와 달라고 해서 즉석에서 펜으로 만들어 글을 써 보았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이외의 필기구에 생소했던 조선 대신들은 김대건 신부가 새의 깃털로 가느다란 글씨를 써내려가는 모습을 매우 신기하게 여겼다고 한다. 서울대학교의 상징에도 이 깃털펜이 그려져있다.

오늘날에도 깃펜만의 풍류와 멋에 도취된 사람들은 그것만이 가진 미학의 가치를 높이 여긴다. 오늘날 기성품으로 나오는 '제품화'된 깃털펜은 대부분 깃털 끝에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금속 펜촉이 달렸다. 실사용이 아니라 장식용 혹은 선물용이다. 일부 문구점에서는 깃털에 볼펜을 부착한 제품도 간혹 나오는데 해리 포터 실사영화 시리즈 이후 많아진 듯.

3. 설명

깃털을 보면 가운데에 있는 심(깃대)의 내부는 텅 비어 있는데, 깃대 안팎의 표면은 생체 섬유 조직이 덮고 있다. 따라서 심 끝을 깎아내어 만든 뾰족한 촉에 잉크를 적시면 빈 관으로 잉크가 타고 올라간 후 이 조직이 잉크를 머금게 되는데, 이 상태로 종이에 대고 적절한 압력을 가하면 촉이 살짝 압력을 받으면서 이 잉크가 흘러나와 글씨를 쓰게 되고, 다시 떼면 탄력에 의해 압력이 사라지고 잉크가 멈춘다.[2]

따라서 낡은 깃털펜으로 글씨를 쓰다보면 탄력이 죽어 잉크를 제대로 머금지 못해 마구 흘러내릴 수 있고, 따라서 수명이 짧아 관리도 꽤 까다로운 편이다.

아무 새의 깃털로나 만들 수는 없다. 새의 깃털은 비행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져 있기에 새의 종류마다 모습이 다르며, 같은 새여도 부위마다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상술했듯 적절한 탄성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동네 비둘기의 깃털과 까마귀의 깃털은 너무 가늘어 깃털펜을 만들 수 없다. 중세 시대에는 주로 거위의 깃털을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거위 날개의 맨 바깥쪽 깃털들은 거위가 날아다닐 수 있을 만큼 크고 강하다. 따라서 집에서 기르는 거위는 이걸 다 잘라내기 때문에, 자연히 깃펜에 쓸 깃털도 많아진다.[3]

제작을 위해선 깨끗한 모래와 냄비가 필요하다. 모래를 뜨겁게 달군 후 깃털을 담가 깃털 끝을 경화시켜야 한다.열기에 의해 단단하게 굳은 깃털 끝을 작고 예리한 칼을 사용해 만년필촉과 흡사한 모양으로 깎고, 깃대 내부의 성긴 조직을 파내서 버리면 완성된다.

깃털펜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아주 쉽지는 않다. 초심자가 일반 볼펜 쓰듯이 하면 압력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서 잉크가 왕창 흘러나오거나, 혹은 반대로 전혀 써지지 않을 수도 있어서 약간의 연습이 필요하다.

4. 왼손잡이용/오른손잡이용

새의 날개깃은 오른쪽이냐 왼쪽이냐에 따라 깃대의 휨이 다르다. 따라서 깃펜으로 사용할 때 시야를 가리는 등의 문제가 없도록 펜끝을 깎으면 왼손잡이용과 오른손잡이용 깃펜이 따로 있게 된다.[4]

문제는 깃펜용 깃털의 수량이 기본적으로 한정적이며, 오른손용/왼손용 깃펜의 공급은 좌우 1:1인데, 사람의 오른손잡이/왼손잡이 수요는 오른손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이때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해 오른손용 깃펜은 비싸지고 왼손용은 떨이가 된다. 실제로 돈이 없는 오른손잡이는 왼손잡이용을 써야만 했다.

5. 모양

파일:harry_potter_quill_pen.gif
현대에는 깃펜이라고 하면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나오는 처럼 멋들어진 털이 달린 커다란 깃털로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로 중세 시대에는 깃대를 제외한 깃털은 다 밀어버리고, 깃대 자체도 현대의 모나미 볼펜만한 길이로 짧게 잘라 사용하였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깃펜은 어차피 글을 쓰는 목적의 실용적인 필기구였기 때문에 멋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으며 풍성한 털이 달려 있어 봤자 손으로 잡을 때 걸리적거리기만 했기 때문이다.

시대에 따른 깃털펜의 제작방법의 변천사를 소개한 글. 중간중간에 펜대를 짧게 자른 실제 깃털펜의 사진과 당시 사람들이 그린 그림이 있다.

오히려 19~20세기 들어 만년필, 볼펜 등 현대적인 문구류가 나오면서부터는 깃펜의 모양이 깃털을 제거하지 않게 되었다. 모양으로 따지면 해리 포터 영화처럼 깃털이 살아있는 게 더 멋져 보여서 그런 듯. 현재도 구글에 quill pen이라고 쳐보면 깃대 펜보다는 압도적으로 깃털이 달려있는 제품들의 사진이 나온다.

6. 언어별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한국어 깃털펜, 깃펜
에스페란토 plumo
영어 quill pen()
일본어 羽根ペン
중국어 鵝毛筆


[1] 한편, 같은 갈대펜을 사용하던 아라비아에서는 대나무로 소재를 바꾸었다. [2] 이를 깃털의 생체조직 대신 금속 재질 촉에 핀홀을 뚫고 슬릿(틈)으로 쪼개서 구현한 게 현재의 금속 펜촉이다. [3] 닐스의 모험에서도 동네 아낙이 거위 모르텐을 포획해서 집에서 기르려고 깃털을 잘라내려다 난장이가 된 닐스를 보고 깜짝 놀라 가위를 떨어뜨리는데, 그 사이에 모르텐과 닐스가 허겁지겁 탈출하는 스토리가 있다. [4] 털이 시야를 가리는 것만이 문제라면 털을 깎아버리면 된다. 그러나 대가 휘어진 굴곡은 생각보다 복잡해서 오른쪽 날개깃의 털을 깎는다고 오른손의 사용성이 나아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