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년 ~ 1882년)
1. 개요
조선 후기의 인물. 임오군란의 주도자. 김춘영의 아버지, 김종득의 아들, 김명운의 손자, 김씨 소사의 소생. 외조부는 김경희.2. 생애
서울 동부 왕심리 신촌에서 태어났다.1882년 6월 5일에 도봉소 사건으로 아들 김춘영과 유복만, 정의길, 강명준 등이 포도청에 수감되면서 6월 8일에 임오군란을 일으켜 유춘만과 함께 무위영의 군사들에게 봉기를 촉구하는 통문을 작성했다. 6월 9일에 유춘만, 허욱과 함께 민겸호의 자택을 습격해 불태웠고, 동별영의 무기고를 부수고 병장기를 탈취해 무장했으며, 6월 10일에 궁궐을 공격해 민씨 일파를 몰아냈다.
군란을 지원한 흥선대원군이 섭정이 되었지만 7월 13일에 흥선대원군이 청군에게 붙잡히고 군란이 진압되면서 체포되었으며, 8월 23일에 추국청에 심문되어 변란에서 먼저 통문을 돌렸으니 주동한 사람이 네가 아니라 누구겠냐면서 사실대로 말하라고 심문하자 김장손은 유춘만이 우두머리가 되어 한 일이라고 진술했다. 그러자 추국청에서는 포도청에서 유춘만을 따라다니고 추국청에서 따라다니지 않았다고 하는 등 진술이 다른 걸 추궁받자 유춘만과 함께 통문을 돌렸다는 것 밖에 없다고 했다.
어떻게 혼자서 유춘만의 말을 듣고 통문을 돌렸겠냐고 하자 아들을 구하고자 통문을 돌렸다고 했으며, 대궐을 침범하자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따라다니기만 했다고 진술했다. 우두머리가 된 사람들은 군총들로 이름은 자세히 모른다고 했으며, 혼자 했다면서 유춘만이 우두머리라고 계속 진술하다가 심문과 함께 12대의 매를 맞았다.
8월 24일에 다시 심문을 받았고 추국청에서 김장손에게 통문을 돌린 일이 변란을 일으킨 실마리로 분명 너와 의논했을 터인데 어떻게 우두머리 이름을 모르냐면서 늙고 병들어 뒤를 따라다녔다고 핑계대지만 바로 거느리고 이끌었다고 했으며, 매우 중요한 인물이라 벗어나려고 할 지라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하자 군총들의 이름을 알겠냐면서 진술했다.
추국청에서 어떻게 우두머리의 이름을 모를 수 있겠냐고 하거나 변란을 저지른 일이 너로부터 일어났는데 어떻게 반역의 우두머리가 아니냐고 하자 인정했으며, 심문과 함께 5대의 매를 맞았다. 결국 정의길이 재심문받으면서 김장손이 유복만과 함께 주동한 것을 진술했고, 문창갑을 재심문하면서 김장손이 통문을 전달하면서 첫머리에 이름을 적을 것을 권유한 사실을 진술했다.
김장손은 최후의 진술로 아들의 목숨을 살려낸다는 말로 핑계를 대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통문을 돌렸으며, 살아도 내가 책임지고 죽어도 자기가 책임진다면서 주동하고 큰 소리를 쳤다고 진술했다. 김장손은 정의길, 강명준, 홍천석, 유복만, 허씨동, 윤상룡, 정쌍길과 함께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