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8 20:58:28

김영현(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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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영현(金永賢)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출생 1976년 2월 4일([age(1976-02-04)]세), 경상남도 진주시
학력 주례초등학교
한영중학교
한영고등학교
단국대학교 학사
종목 씨름
소속 태웅회관
신체 217cm, 156kg[1]
데뷔 1995년 LG증권 입단
1. 개요2. 선수 경력
2.1. 씨름2.2. 씨름 우승 목록2.3. K-1
3.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씨름 선수. 前 킥복싱 선수.

2. 선수 경력

2.1. 씨름

217cm의 장신 씨름 선수였으며, 최홍만 이전에 골리앗으로 불리며 씨름판을 풍미했던 장사다.[2][3]

1996년 6월에 열린 강릉장사 대회를 통해 민속씨름에 첫 선을 보였으며, 2005년 소속팀 신창건설[4]이 해체되고 민속씨름이 파행으로 접어들면서 씨름을 그만두게 되었다. 천하장사 3회(1998, 1999, 2004), 지역장사 13회, 백두장사 13회 등을 포함하여 공식 대회에서 총 35회의 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통산 전적은 463경기 355승 108패( 승률 76.7%)를 기록했다. 특히 1998년에는 천하장사를 비롯하여 지역장사 3회, 백두장사 3회, 설날장사 등 총 8관왕에 올랐고, 승률이 85.4%(47승 8패)에 달했을 만큼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1998년과 1999년 2년 연속으로 민속씨름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다.

신체 밸런스[5]와 테크닉, 유연성, 반응 속도가 떨어지긴 했으나, 큰 신장의 우위를 앞세워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을 제외하곤 적수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면모를 과시했다. 다만, 밀어치기 외에는 이렇다 할 기술이 없어서 단조로운 씨름을 구사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 밀어치기로 말미암아 상대 선수 신봉민과 이태현 등이 장외로 나가떨어져 부상을 당하는 일이 허다했고, 이 때문에 반칙장사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 결국 이로 인해 2001년 3개 대회 출전 정지를 당한 적도 있었다. 2003년 218cm의 최홍만이 민속씨름에 데뷔하면서 '신구 골리앗'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었는데, 비슷한 스타일을 지닌 둘의 맞대결은 항상 지루한 양상으로 전개되어 관중들의 빈축을 사곤 했다.[6]

2.2. 씨름 우승 목록

천하장사 (3회)
구분 대회 날짜 장소
1 36대 1998년 11월 29일 영천 실내체육관
2 37대 1999년 12월 12일 인천전문대 체육관
3 42대 2004년 12월 5일 구미 박정희체육관

백두장사 (13회)
구분 대회 날짜 장소
1 95대 1997년 6월 13일 남원 학생체육관
2 98대 1998년 4월 17일 창원 실내체육관
3 99대 1998년 5월 3일 여수 진남체육관
4 100대 1998년 9월 4일 경주 실내체육관
5 105대 1999년 9월 25일 포항체육관
6 109대 2000년 6월 23일 거창체육관
7 110대 2000년 9월 12일 동해체육관
8 113대 2001년 4월 13일 보령 대천체육관
9 115대 2001년 6월 15일 광양 실내체육관
10 116대 2001년 9월 7일 천안 유관순체육관
11 122대 2002년 7월 4일 서산 문화체육관
12 133대 2004년 6월 13일 의정부 실내체육관
13 134대 2004년 10월 23일 구리체육관

지역장사 (13회)
구분 대회 날짜 장소
1 16회(양평장사) 1998년 3월 9일 양평체육관
2 19회(경주장사) 1998년 9월 6일 경주 실내체육관
3 20회(대구장사) 1998년 10월 8일 대구 실내체육관
4 23회(구미장사) 1999년 6월 21일 구미 코오롱우정관
5 25회(산청장사) 1999년 10월 31일 산청 실내체육관
6 28회(거창장사) 2000년 6월 25일 거창체육관
7 29회(동해장사) 2000년 9월 14일 동해체육관
8 31회(양산장사) 2000년 11월 19일 양산체육관
9 33회(거제장사) 2001년 5월 6일 거제체육관
10 35회(천안장사) 2001년 9월 9일 천안 유관순체육관
11 40회(강진장사) 2002년 5월 11일 강진 스포츠센터
12 41회(서산장사) 2002년 7월 6일 서산 문화체육관
13 43회(안동장사) 2002년 10월 19일 안동 실내체육관

기타 장사 (6회)
구분 대회 날짜 장소
1 98 설날장사 1998년 1월 29일 서울 장충체육관
2 99 올스타전 1999년 8월 1일 목포 KBS홀
3 2002 단오장사 2002년 6월 16일 경산체육관
4 2003 단오장사 2003년 6월 5일 경산 계정숲 야외경기장
5 2003 추석장사 2003년 9월 12일 부천 실내체육관
6 APEC부산 유치기념 대회 2004년 5월 26일 부산 BEXCO 특설씨름장

2.3. K-1

전적 4전 2승 2패

프로 씨름이 몰락하고, 후배인 최홍만이 먼저 K-1으로 전향해 한창 주가를 내고 나서 김영현도 K-1에 뛰어들었다. 이미 김영현이 뛰어들기 전부터 최홍만의 성공으로 인해 씨름 출신 거인 파이터에 대한 기대감이 적지 않았으며, 마침 김영현은 씨름 시절에도 최홍만과 피지컬 세트로 엮이던 선수였던 만큼 기대감이 있었다. 큰 체격에도 불구하고 최홍만에 비해 기본기는 오히려 탄탄해 보였지만, 그러나 적성에 맞지 않았던지,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하고 곧 은퇴했다.

2007년 K-1 월드그랑프리 서울 슈퍼파이트에서 승리했으며 전적은 4전 2승 2패를 기록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선전한 편이다. 당시 최홍만을 따라 여러 씨름 선수들이 K-1 무대에 도전했지만, 1승도 못거두고 은퇴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2승이라도 거둔 건 사기적인 피지컬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2승을 거둔 것도 K-1 측에서 이기라고 던져준 떡밥 매치였다. 데뷔전 상대인 야나기사와 류우시는 당시 입식 전적 6전 5패 1무의 무승이였고, 사이시렉 노 시픈 선수도 무명에다가 신장이 175cm로 김영현하고 42cm, 몸무게는 70kg 가까이 차이나는 아무리 높게 쳐도 웰터급 체격으로 대략 4체급 이상은 차이나는 수준이다.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서는 이렇다 할 반격도 해보지 못하고 처참히 패했다. 무엇보다 최홍만은 뇌하수체 수술 이전에는 큰 덩치에 비해 운동 능력도 좋았고 타격에서도 그나마 스피드가 있었지만 김영현은 최홍만보다 자세나 스킬은 좋았다지만 핸드 스피드가 절망적으로 느렸던 데다가, 최홍만보다 발도 훨씬 느렸고[7] 무엇보다 상대의 타격을 너무 무서워해서 애당초 파이터 본능이 없었다.[8] 그리고 데뷔 시점에서 뇌하수체 수술을 받은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초창기 최홍만이 누렸던 생체 버프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9]

키가 37cm나 차이 나는 180cm의 니콜라스 페타스에게도 더블로우킥 위주의 다양한 킥을 무수히 얻어맞고 공수도식 올려찍기까지 얻어맞기도 했으며 루슬란 카라에프에게는 경기 시작하자마자 무지막지한 펀치러시를 안면에 허용하고 코뼈가 부서져 나가고는 눈물까지 흘리며 공포에 질린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경기는 김영현의 격투기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사실 그냥 씨름계에 남았어야 했을 김영현에게 격투기는 애당초 맞지 않는 옷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기타

  • 취미는 비디오 게임이다. '용산에서 직거래를 하러 약속을 잡았더니 김영현이 나왔더라'하는 이야기가 게임 커뮤니티에서 종종 나올 정도였다.
  • 악력은 115kg이다.[10]
  • 씨름 선수로 활동할 당시는 물론 K-1에 데뷔했을 때까지만 해도 매체에 자주 나오는 편이었는데 킥복서를 그만두고 나서는 신기하리만치 소식이 끊겼다.
  • 2023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키가 네번째로 큰 사람이다.[11]


[1] K-1 시절 프로필 [2] 사실 최홍만이 '테크노 골리앗'인 이유가 그 이전에 '그냥 골리앗'인 김영현이 있었기 때문에 구분을 위해 테크노라는 수식어가 더 붙은 것이다. [3] 이후 김영현은 원조 골리앗, 최홍만은 테크노 골리앗이라고 불렸다. [4] LG투자증권 씨름단에서 데뷔하여 활약하다가 최홍만이 입단하면서 2003년에 이적했다. [5] 키가 큰 만큼 중심이 높다. [6] 상대 전적은 김영현이 최홍만에 8승 5패로 우세했다. [7] 스텝 자체는 최홍만보다 더 빠르고 경쾌했지만 니킥이나 킥 속도가 느려서 상대방이 쉽게 피할 수 있었다. [8] 상대의 견제성 잽에조차 움찔움찔 할 정도로 겁을 내는게 보인다. [9] 수술 이후 드라마틱하게 기량이 준데다 안면 공포증이 생겨 많이 잊혀진 사실이지만 천연스테로이드 시절 최홍만은 그야말로 야수였다. 당시 K-1판에서 밥 샙은 기술은 떨어져도 그야말로 압도적인 피지컬로 몰고 가던, 그야말로 야수였는데 그 밥샙이 양 주먹을 휘두르며 멧돼지처럼 덤벼드는데 아랑곳 하지 않고 맞서서 난타전을 벌이거나 이외에도 레미 본야스키, 세미 슐트, 제롬 르 밴너와도 같은 강자들과도 피지컬로 몰아부친 최홍만이다. [10] 출처 기사 [11] 1위는 221cm의 하승진이며 2위는 220cm의 김병오, 3위는 218cm의 최홍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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