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863><colcolor=#fff> 대한민국의 교수 김영재 金榮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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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9년 9월 12일 |
경상북도 봉화군 | |
사망 | 2023년 1월 10일 (향년 93세)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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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성남중학교 (졸업) 성남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정치학 / 학사) 홍익대학교 (회화과 / 석사) |
경력 |
제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심사위원 이인성 미술상 심사위원장 한국기독교 미술인협회 회장 한국미술협회 고문 신미술회 회장, 고문 배문고 미술교사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
가족 | 배우자 윤영섭, 슬하 2녀 김혜원, 김수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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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수.2. 생애
그는 1929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으며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찍이 화가를 꿈꿨지만 당시 국내에 미술대학이 없어[1] 1948년 건국대 정치학과에 들어갔다. 이후 6·25 전쟁 때 군인인 예비역 대위로 복무했으며 1956년 배문고 미술교사로 일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1960년대까지는 검은색을 주로 썼다. 당시 그가 이처럼 무겁고 어두운 작품을 그린 데에는 한국전쟁 영향이 컸다. 후에 그는 미술교사로 근무 도중 홍익대 대학원 회화과에 진학했으며 1965년 경희대 여자초급대 요업공예과를 거쳐 1969년 영남대 여자초급대 미술과 교수로 부임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강(강변)의 화가'로 불렸으며 이는 1969년 영남대 교수가 된 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면서 본 양화대교 부근의 한강 풍경, 대구 근교 낙동강변의 흰 모래사장과 비취색 강물, 수직으로 뻗은 이태리포플러 나무숲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첫 개인전을 갖기도 했다. 이러한 그가 산에 몰두한 건 1979년 스위스 알프스 등정 후 '몽블랑' 등의 장엄한 설산 스케치를 대작 유화로 제작하면서부터였다. 즉 1979년 알프스를 등반한 이후 산을 주제로 한 작품 세계를 펼치게 되면서 산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1974년에는 영남대 회화과 교수로 옮겨 1994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후학을 양성했다.3. 사망
2023년 1월 10일 오후 7시 45분쯤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
당시 국내 상황 속에서 미술의 길을 가는 방법은 일본에서 유학한 후 귀국해 국전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여 국내 미술계로 진출한 뒤 스스로 공부하면서 성장을 도모하여 활동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