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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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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주요 판결

1. 개요

金聖一

1935년 1월 1일 ~ 1995년 10월 31일

서울고등법원 법원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전직 법조인이다. 재직 중 과로로 순직하여 법원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2. 생애

1935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본관 김해 김씨. 경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1962년 제14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였고, 1963년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부임하면서 법관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민사지방법원을 거쳐 1977년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였고, 사법연수원 교수 및 언론중재위원회의 위원을 역임한 뒤, 1982년 광주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하였고 1984년에는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었다.

1988년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장, 1991년 제주지방법원장, 1992년 법원행정처 차장을 맡았고, 1995년 서울고등법원장으로 재직하던 중 과로로 쓰러졌고 10월 31일 순직했다. 판사 재직 중, <<민법연습>>이라는 수험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3. 주요 판결

  • 1979년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군용차에 치여 근로능력을 상실한 21세 여성 공장 근로자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일반제조업체 여자공원들의 근로연한은 55세로 본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1980년대 초반까지는 법원에서 여성의 정년은 평균 결혼적령기인 25-26세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판례를 자주 내놓아 많은 규탄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판결인 것.
  • 1985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인터폴 조서의 증거능력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 1985년 역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시절, 내연녀의 오빠를 살해하고 돈을 빼앗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윤도영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된 원심을 파기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무기징역을 사형으로 올려친 첫 사례.
  • 1988년 재판장으로서 행정소송을 진행하던 중 판사에게 고성을 지르며 항의하던 방청객을 3일간 직권으로 감치한 바 있다. 행정소송 진행중 재판장에 의한 감치명령이 떨어진 것은 국내 최초의 사례였다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