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에이사기레의 감독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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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 ||
21대, 28대 |
스페인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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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
기예르모 에이사기레 Guillermo Eizaguir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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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기예르모 에이사기레 올모스 Guillermo Eizaguirre Olm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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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9년 5월 17일 | |
스페인 왕국 세비야 | ||
사망 | 1986년 10월 25일 (향년 77세) | |
스페인 마드리드 | ||
국적 |
[[스페인|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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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션 | 골키퍼 | |
신체조건 | 175cm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 세비야 FC (1924~1936) |
감독 |
스페인 대표팀 (1948~1950) 스페인 대표팀 (1955~1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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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3경기 ( 스페인 / 1935~19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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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전 축구 감독.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에이사기레는 세비야 FC의 감독이었던 아버지 에우헤니오에 의해 세비야의 유스팀에 들어갔고 15살이던 1924년에 1군팀에 등록되었다. 그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화려한 플레이와 개방적이고 쾌활한 성격으로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세비야는 1929년,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우승했지만 라싱 산탄데르에 밀려 승격에 실패했고 1934년에 결국 라리가에 진출하게 되었다. 1935년에 세비야가 코파 델 레이에서 우승함으로써 세비야는 첫 메이저 타이틀을, 에이사기레는 유일한 메이저 우승 커리어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1936년에 스페인 내전이 터지면서 에이사기레도 선수 커리어에 마침표가 찍히게 되었다.
2.1.2. 국가대표
에이사기레가 스페인 대표팀에서 뛴 경기는 3경기인데 이는 리카르도 사모라의 존재때문이었다. 여기에 에이사기레 본인도 다소 운이 없는 편이었는데 1934년 월드컵에 에이사기레도 사모라의 백업 골키퍼로 검토되었지만 대회를 앞두고 팔이 부러지면서 대회 참가가 무산되었다.2.2. 감독
에이사기레는 1948년부터 1956년까지 두차례에 걸쳐 스페인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그중 최고의 성과는 단연 1950년 월드컵 4위로 이는 2010년 월드컵 우승 이전에 스페인의 최고 성과였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에이사기레는 우아하고 화려한 스타일의 골키퍼였다. 가장 막기 어려운 코스로 날아오는 공을 방어하기 위해 몸을 쭉 뻗는 그의 고양이같은 몸동작은 그를 나는 천사(Ángel Volador)로 불리게 했다.4. 뒷이야기
- 에이사기레의 선수 시절에 그를 주목하는 다른 클럽들이 있었지만 세비야 FC는 그에게 자동차를 사줘서 팀에 잔류시켰다. 그러나 이때 에이사기레가 실제로 원한 것은 할리데이비슨이었기 때문에 세비야 구단은 에이사기레가 혹시 변심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했다고 한다.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2]
- 코파 델 레이 우승 1회: 1935
- 세군다 디비시온 우승 1회: 1929, 1933-34
- 캄페오나토 레지오날 수르[3] 우승 8회: 1924-25, 1925-26, 1926-27, 1928-29, 1929-30, 1930-31, 1931-32, 193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