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대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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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db1> 몽골 제국 제3대 대칸 귀위크 칸 | ᠭᠦᠶᠦᠭ ᠬᠠᠭᠠ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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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추존 황제 정종 | 定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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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206년 3월 19일 | ||
몽골 막북 초원 | |||
사망 | 1248년 4월 20일 (향년 42세) | ||
몽골 제국 쿰 셍기르 (現 중화인민공화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칭허 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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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기간 | 몽골 제국 대칸 | ||
1246년
8월 24일 ~
1248년
4월 20일 (1년 8개월)[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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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db1> 성 |
보르지긴(Боржигин) 孛兒只斤(패아지근) ᠪᠣᠷᠵᠢᠭᠢ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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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귀위크(Гүюг) 貴由(귀유) ᠭᠦᠶᠦ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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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
부황 태종
오고타이 칸 모후 소자황후 나이만 퇴레게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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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텡그리교 | ||
묘호 | 정종(定宗) | ||
시호 | 간평황제(簡平皇帝) | ||
칸호 |
귀위크 칸 貴由汗(귀유한) ᠭᠦᠶᠦᠭ ᠬᠠᠭᠠ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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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몽골 제국의 제3대 카간. 묘호는 정종(定宗), 시호는 간평황제(簡平皇帝). 휘는 귀위크. 오고타이 칸의 맏아들이다.2. 언어별 표기
언어별 표기 | |
한국어 | 귀위크 칸 |
중국어 | 貴由汗 |
일본어 | グユク・カン |
몽골어 |
ᠭᠦᠶᠦᠭ ᠬᠠᠭᠠᠨ Гүюг хаан |
영어 | Güyük Khan |
3. 생애
할아버지 칭기즈 칸 시절부터 몽골의 원정에 참전하면서 경험를 쌓았고, 아버지 오고타이 칸의 집권기에는 포선만노(蒲鮮万奴)[2] 정벌과 서방 원정[3]에 참전했다. 서방 원정의 지휘권은 이원화되어 있었는데, 오고타이 칸의 형 주치의 아들인 바투는 주치인 울루스의 군대를 지휘했고 귀위크는 중앙 울루스에서 파견된 군대를 지휘했다. 이 때문에 명목상으로는 원정대의 총사령관은 바투였으나, 실제로도 강력한 지휘권을 행사했냐는 것에는 회의적인 학자들이 존재한다. 바투의 부친 주치는 칭기즈칸의 첫째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후계 경쟁에서 밀리는 와중에 목숨도 부친보다 먼저 잃어서 집안 자체가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치의 동생이자 오고타이의 형인 차가타이는 주치를 친형으로 인정 못한다고[4] 대놓고 모욕한 적이 있다.서방 원정에서 귀위크는 바투와 갈등을 빚은 끝에 오고타이의 호출을 받아 몽골 고원으로 귀환했다.[5] 어찌 되었든 소환당한 귀위크는 아버지 오고타이에게 개발살이 나고 원정군에 귀환하려 했는데, 그 사이 오고타이가 죽었다. 오고타이가 죽을 당시에 몽골 고원에는 뒤를 이을 자격이 있는 왕공들이 없었던 터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귀위크가 그 중 가장 먼저 도착하여 대칸에 오르는 데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오고타이가 죽은 뒤에 정권을 장악한 것은 귀위크의 친모, 오고타이의 6번째 아내이자 나이만족 출신인 퇴레게네 카툰이었다. 퇴레게네는 자신이 특히 사랑한 아들 귀위크의 즉위[6]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생각해보면 오고타이가 오르두 말고 바투를 유럽 원정군의 사령관으로 삼은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7] 또한 귀유크와 바투 사이에 대립은 상황적으로 봤을 때에 폭발 직전이었다.[8][9] 귀위크는 모든 몽골 왕공들의 지지를 받아 1246년 대칸에 즉위했다. 바투와 귀위크는 서로를 싫어했지만 바투는 최소한 귀위크를 대칸으로 존중해 주었다.
이때 귀위크는 몽골 왕공들에게 대칸은 이후로 그 자신의 후손들에게만 전해져야 한다는 맹세를 요구했고,[10] 왕공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대칸으로는 고작 2년만 집권했지만, 그동안 급진적으로 대칸의 왕권 강화 정책과 중앙 집권 정책을 추진한 결과 몽골 귀족들의 지지를 잃었다. 비록 생전에는 그에게 대항한[11] 몽골 귀족들이 없었으나, 그의 사후 바투를 주축으로한 몽골인들은 오고타이의 후손이 아닌 툴루이 칸의 장남 몽케를 대칸으로 옹립한다. 이 과정에서 오고타이계 왕공들은 귀위크 즉위 시의 다짐을 환기시키며 이를 반대하였다. 몽케 지지파는 이에 대한 논리적인 답변을 내놓지는 못했으나, 힘으로 반대파의 주장을 뭉갰다.
포악했으나[12] 정치적으로는 감각이 있었다. 어머니이자 섭정이었던 퇴레게네 카툰의 정책 중에 몽골인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은 과감히 철폐하기도 했고, 몽골 제국의 변방에서 벌어지는 여러 부족들의 분쟁에 적절하게 대처했다.
기존에는 폭군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그의 행적에 비해 지나치게 과소평가 받고 있다는 의견이 최근 학계에서 힘을 얻고 있다. 유난히 귀위크 칸이 당대 이슬람계, 그리고 몽골계에서도 대단히 악평을 받았다는 것. 귀위크 칸은 친족이 권력을 이용하여 지나친 행위를 일삼자 이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쳤다. 따라서 정적들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혀 후대의 칸들이 툴루이 계열의 후손으로 추대되면서 악평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몽케의 시대 이후로 몽골 제국의 서부는 차가타이 계통, 동부는 쿠빌라이 계통이 다스렸음을 생각하면, 왜 몽골계 사료와 이슬람계 사료들이 귀위크에 적대적인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다만 차가타이 계통이나[13] 기독교계 기록들은 그나마 귀위크에게 적대적이지 않은데, 차가타이 계통은 본디 오고타이 계통과 관계가 좋았기 때문일 것이고, 기독교계 기록들은 툴루이계 왕공들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1248년, 귀위크 칸은 바투를 몽골로 소환했다. 대칸이 불렀다고 수행원들만 데리고 쫄래쫄래 갔다가는 험한 꼴을 당할 것을 잘 알고 있는 바투는 대군을 이끌고 왔다. 귀위크도 군대를 이끌고 서진하였다. 내전이 벌어질 뻔 했지만, 귀위크가 행군 도중 사망하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죽음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지나친 음주에 의한 건강 악화라는 것이 정설이다.
또 다른 설은 암살설인데 툴루이의 처였던 소르칵타니 베키가 미리 바투에게 경고를 하여 그가 미리 자객을 보내 죽였다는 이야기다. 훗날 몽케가 칸 자리에 오르는 데 바투가 지대한 지원을 해주었던 것을 생각하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귀위크는 유럽 원정을 재개하기를 원했지만 대칸에 오른 지 2년 만에 죽으면서 이루지 못했다.
4.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보낸 서신
영원한 하늘의 힘에 기대어 (지상의) 모든 위대한 울루스(를 지배하는) 사해의 군주의 칙령.
이것은 대(大)파파(Papa-i kalan; 교황)에게 보내는 명령이다. 알고 깨달을지어다.
짐은 협의한 연후에 캐랠(Karal; 왕)들의 지방에 복속의 요청을 보냈노라. 만약 짐의 말이 도달하거든 교황인 그대는 왕들과 함께, 그대 스스로 짐의 어전에 와야 할 것이다. 그때에 야사(yasa; 법령)의 모든 명을 그대에게 들려줄 것이다.
또 한 가지.
그대는 내가 세례를 받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너희들 자신을 알리고 요청을 보냈다. 이러한 그대의 요청을 짐은 이해하지 못하겠노라.
또 한 가지.
그대는 전갈을 내게 보내기를 "(당신은) 마자르(Majar)와 키리스탄(Kiristan)의 모든 땅을 정복하였는데, 영문을 알지 못하겠다. 그들의 죄가 무엇이었는지 말해 달라."라고 했다. 이 또한 짐은 이해하지 못하겠노라. 칭기스 칸과 카안(Qu'an; 우구데이 칸)은 두 지방에 온 세상이 복종해야 한다는 영원한 주의 부름(farman-i khuda; 신, 하느님)을 듣도록 전달하였다. (그러나) 부름을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자만심을 품고 복종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전령과 일치(Ilchi; 사신)를 죽였다. (그래서) 영원한 주께서는 그 자신의 뜻으로 지방과 주민을 절멸시켰다. 주의 명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자신의 힘만으로 (적을) 죽이고 정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마찬가지로 그대가 말하기를 "나는 기독교도(tarsa)이다. 주를 숭배하고 눈물을 흘린다."라고 한다면, 주께서 진실로 누구를 징계하고 누구에게 은총을 내리실지, 그대가 말하는 것을 (그 뜻대로 되리라고) 그대가 어찌 아느냐? 주의 힘이, 해가 뜨는 곳에서부터 지는 곳까지 모든 지방들을 짐에게 복종케 하였노라. 짐이 생각건대 주의 명령이 아니라면 누가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제 그대는 진실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복속(il)하겠습니다. 힘을 다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그대 스스로 왕들을 인솔하여 함께 경의를 표하고 짐을 섬기러 어전으로 오도록 하라. 그대의 복속은 그때 짐이 알리라. 만약 주의 명을 듣지 않고 짐의 명령을 어긴다면, 짐은 너희를 반역자(yaghi; 원수)로 알 것이고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너희들에게도 알려주리라.
만약 (너희들이 이 명령을) 어긴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이 어찌 알겠는가? 오직 주께서만 안다.
귀위크 칸이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보낸 친서( 원본 이미지 보기)
1246년 11월 사절 카르피니를 통해 전달되어 교황청 서고에 보관됨.
(김호동 교수 역 # 일부 수정 후 인용)
이것은 대(大)파파(Papa-i kalan; 교황)에게 보내는 명령이다. 알고 깨달을지어다.
짐은 협의한 연후에 캐랠(Karal; 왕)들의 지방에 복속의 요청을 보냈노라. 만약 짐의 말이 도달하거든 교황인 그대는 왕들과 함께, 그대 스스로 짐의 어전에 와야 할 것이다. 그때에 야사(yasa; 법령)의 모든 명을 그대에게 들려줄 것이다.
또 한 가지.
그대는 내가 세례를 받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너희들 자신을 알리고 요청을 보냈다. 이러한 그대의 요청을 짐은 이해하지 못하겠노라.
또 한 가지.
그대는 전갈을 내게 보내기를 "(당신은) 마자르(Majar)와 키리스탄(Kiristan)의 모든 땅을 정복하였는데, 영문을 알지 못하겠다. 그들의 죄가 무엇이었는지 말해 달라."라고 했다. 이 또한 짐은 이해하지 못하겠노라. 칭기스 칸과 카안(Qu'an; 우구데이 칸)은 두 지방에 온 세상이 복종해야 한다는 영원한 주의 부름(farman-i khuda; 신, 하느님)을 듣도록 전달하였다. (그러나) 부름을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들은 자만심을 품고 복종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전령과 일치(Ilchi; 사신)를 죽였다. (그래서) 영원한 주께서는 그 자신의 뜻으로 지방과 주민을 절멸시켰다. 주의 명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자신의 힘만으로 (적을) 죽이고 정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마찬가지로 그대가 말하기를 "나는 기독교도(tarsa)이다. 주를 숭배하고 눈물을 흘린다."라고 한다면, 주께서 진실로 누구를 징계하고 누구에게 은총을 내리실지, 그대가 말하는 것을 (그 뜻대로 되리라고) 그대가 어찌 아느냐? 주의 힘이, 해가 뜨는 곳에서부터 지는 곳까지 모든 지방들을 짐에게 복종케 하였노라. 짐이 생각건대 주의 명령이 아니라면 누가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제 그대는 진실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해야 한다. "복속(il)하겠습니다. 힘을 다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그대 스스로 왕들을 인솔하여 함께 경의를 표하고 짐을 섬기러 어전으로 오도록 하라. 그대의 복속은 그때 짐이 알리라. 만약 주의 명을 듣지 않고 짐의 명령을 어긴다면, 짐은 너희를 반역자(yaghi; 원수)로 알 것이고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너희들에게도 알려주리라.
만약 (너희들이 이 명령을) 어긴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이 어찌 알겠는가? 오직 주께서만 안다.
귀위크 칸이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 보낸 친서( 원본 이미지 보기)
1246년 11월 사절 카르피니를 통해 전달되어 교황청 서고에 보관됨.
(김호동 교수 역 # 일부 수정 후 인용)
교황은 이전에 서신을 보내 '침략행위를 그만두고 기독교로 개종할 것'과 ' 헝가리 왕국을 침략한 이유를 설명할 것'을 요구했고, 귀위크는 이에 대한 답장에서 "네 요구를 둘 다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반박하며, " 헝가리인들은 칸에게 복종하라는 신의 명령을 믿지 않고 오히려 우리가 보낸 사신들을 죽였다. 신의 도움 없이 인간의 힘만으로 전쟁에서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모든 땅이 우리에게 정복되었으므로 이것이야말로 신의 뜻이다. 너희는 어째서 신의 뜻에 반항하느냐. 당장 몽골 제국에 항복하고 교황을 비롯한 모든 왕공들은 나에게 친조하라"는 요지의 내용을 펼쳤다. 이는 몽골에서 평화가 의미하는 것은 강자의 평정 아래에 분쟁을 유발할 적대자가 물리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상황으로 해석했기 때문.
한때 한국 인터넷상에 떠돌던 엉터리 번역본 때문에 세간에 "칸이 교황에게 서신을 보내서 종교를 강요하는 기독교를 비판하며 종교의 자유를 주장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 해당 번역본은 내용에 많은 왜곡이 가해졌다. 기독교의 하느님과 탱그리를 동일시하고 있는 원문과 달리, '너희 신'과 '우리 신'을 구분하는 내용을 날조해서 '서양'과 '동양'의 대립구도를 과하게 강조하는 동시에 귀위크가 " 동유럽 침략은 신의 뜻이었다"며 강짜를 부리는 부분은 삭제하고, 오히려 기독교 세력을 종교를 강요한 가해자일 뿐인 것처럼 조명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우월한 몽골인들에게 당해도 싼 열등한 문명으로 묘사하는 등 옥시덴탈리즘에 기초하여 왜곡되어 있다.[14] 전문을 읽어 보면 그러한 내용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는 교황이 말하는 신을 자신들의 텡그리 신앙의 천신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고 "나야말로 니가 믿는 그 절대적인 신의 간택을 받은 게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나와 내 조상(돌아가신 할아버지 칭기즈칸과 아버지 우구데이칸)이 어떻게 이런 업적을 세웠겠는가?"라고 대답하고 있는 것이라서 기독교도 입장에서 봐도 자신들의 신이나 종교를 부정당했다고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굳이 아귀를 맞춰 보자면 교황을 비롯한 서양 기독교인 입장에서야 얼굴도 본 적 없는 '이교도 야만족 두목'에 불과할 몽골인이 기독교 국가에 대한 침공을 벌이고, 그걸 비판하며 기독교의 최고신 여호와를 운운하며 개종을 요구하는 인노첸시오 4세에게 "뭐, 신의 뜻에 따라서 침략 중지하고 니들 종교로 개종하라고? 니들이 말하는 그 신[15]이 도우셔서 지금 우리가 니들한테 이기고 있는데? 니들 입으로 말한 그 신이라는 게 지금 누구를 가호하고 있는지 답 안 나오냐? ㅋㅋ 그럼 니들은 기독교 믿는다면서 왜 기독교로 개종도 안 한 내가 이기고 기독교 믿는 니들은 졌냐?"라고 해서, 지네들끼리 신이라고 받드는 '우상'을 기독교의 창조주 '여호와'와 똑같이 놓고 언급했다는 것이나, 기독교 믿지도 않는 '이교도'들이 기독교 국가를 상대로 신나게 침략해대고 그걸 또 승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가 이기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니들이 말하는 그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말에 불쾌함을 느낀다면 느낄 수도 있다. [16]
5. 가계
- 황비: 원비 멸아걸씨(元妃 蔑兒乞氏)
- 황후: 불명
- 황후: 불명
- 황후: 흠숙황후 알올립씨(欽淑皇后 斡兀立氏)
- 장남: 홀찰 태자(忽察 太子)
- 차남: 뇌홀 태자(腦忽 太子)
- 황후: 내만진 황후 내마진씨(乃蠻眞 皇后 乃馬眞氏)
- 3남: 남평왕 화홀(南平王 禾忽)
- 황비: 불명
- 장녀: 고창공주 파파합이(高昌公主 巴巴哈爾) - 역도호화적합아적근(亦都護火赤哈兒的斤)에게 하가.
- 차녀: 조국대장공주 엽리미실(趙國大長公主 葉里迷失) - 조충양왕 군불화(趙忠襄王 君不花)에게 하가.
6. 대중매체
징기스칸 4 PK에서는 시나리오 3에서 등장한다. 능력치는 71 / 73 / 67로 일반 장수라면 준수한 급이지만 제국의 칸이라기에는 좀 심심하다. 그 대신 일러스트는 일족에서 손꼽히는 꽃미남(…). 시나리오 3에서 몽골 제국을 컴퓨터에 맡겨 놓으면 이벤트를 통해 바투와의 대립을 보여주고, 오고타이 사후 칸에 즉위하지만 최후에는 바투가 보낸 자객에 의해 암살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몽골에서 유럽까지에서는 주인공이 바투의 편이라 서로 반대되는 위치에 있어서 그런지 찌질함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당연히 위에서 적힌 대로 귀위크 칸은 유능한 인물이었으니 명백한 고증 오류. 결국 여기서는 주인공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
몽골 황가의 망나니에서는 주인공의 아버지다. 여기서는 음험하면서도 유능한 모습을 제대로 살려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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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사(元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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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tablewidth=100%><tablebgcolor=#004db1> 114·116권 「후비전(后妃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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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길태철리 · 불홀목 · 토별연완택 · 아로휘살리 131권 「속가등전(速哥等傳)」 속가 · 낭가알 · 망올태 · 오로적 · 완자도(2) · 백첩목아 · 회도 · 역흑미실 · 배항 132권 「항홀사등전(杭忽思等傳)」 아속항홀사 · 보로합답 · 옥와실 · 맥리 · 탐마적 · 발도아 · 앙길아 · 합랄태 · 사전 · 첩목아불화 133권 「탑출등전(塔出等傳)」 탑출 · 배연 · 야한적근 · 엽선내 · 탈력세관 · 홀날출 · 중희 · 단지아 · 찰랄아태탈환 · 실리백 · 패란해 · 겁렬 · 암백 · 야속태아 · 석도아 134권 「철길사등전(撒吉思等傳)」 철길사 · 월합내 · 석반 · 철련 · 애설 · 활활 · 독홀로 · 당인조 · 타아적 · 화상 · 유용 · 가로납답사 · 활리길사 · 소운석탈홀련 · 알라사 · 타라태 · 야선불화 135권 「철가술등전(鐵哥朮等傳)」 철가술 · 탑출 · 탑리적 · 탑해첩목아 · 구아길 · 홀도 · 패아속 · 월거련적해아 · 아답적 · 명안 · 홀림실 · 실랄발도아 · 아속철리 · 갈랄 · 걸태 · 탈인납 · 내만태화상 136권 「합랄합손등전(哈剌哈孫等傳)」 137권 「백찰한등전(伯察罕等傳)」 합랄합손 · 아사불화 · 배주 백찰한 · 곡추 · 아례해아 · 혁혁저아이정 · 탈열해아 138권 「강리탈탈등전(康里脫脫等傳)」 139권 「내만태등전(乃蠻台等傳)」 강리탈탈 · 연철목아 · 멸아길태백안 · 마찰아태 · 탈탈 내만태 · 타아지 · 타이직반 · 아로도 · 뉴적해 140권 「별아겁불화등전(別兒怯不花等傳)」 141권 「태불화등전(太不花等傳)」 별아겁불화 · 하유일 · 철목아탑식 · 달식첩목이 태불화(太不花) · 찰한첩목아 142권 「답실팔도로등전(答失八都魯等傳)」 143권 「마조상등전(馬祖常等傳)」 답실팔도로 · 경동 · 야속 · 철리첩목아 · 납린 마조상 · 노노 · 자당 · 아영 · 소운석해애 · 태불화(泰不華) · 여궐 144권 「답리마등전(答里麻等傳)」 145권 「역련진반등전(亦憐真班等傳)」 답리마 · 월로첩목아 · 복안철목아 · 성길 · 복수 · 도동 역련진반 · 염혜산해아 · 월로불화 · 달례마식리 146권 「야율초재등전(耶律楚材等傳)」 147권 「장유등전(張柔等傳)」 야율초재 · 점합중산 · 양회중 장유 · 사천예 · 사천상 148권 「동준등전(董俊等傳)」 149권 「야율유가등전(耶律留哥等傳)」 동준 · 엄실 야율유가 · 유백림 · 곽보옥 · 석천응 · 야율독화 · 왕순(王珣) 150권 「석말야선등전(石抹也先等傳)」 석말야선(3) · 하백상 · 이수현 · 야율아해 · 하실 · 학화상발도 · 조진 · 석말명안 · 장영 · 유형안 151권 「설탑랄해등전(薛塔剌海等傳)」 설탑랄해 · 고요아 · 왕의(王義) · 왕옥 · 조적 · 저순 · 왕선 · 두풍 · 석말패질아 · 가타라콘 · 오돈세영 · 전웅 · 장발도 · 장영 152권 「장진형등전(張晉亨等傳)」 장진형 · 왕진 · 양걸지가 · 유통 · 악존 · 장자량 · 당경 · 제영현 · 석천록 · 유빈 · 조유 153권 「유민등전(劉敏等傳)」 유민 · 왕즙 · 왕수도 · 고선 · 왕옥여 · 초덕유 · 석천린 · 이방서 · 양환 · 가거정 154권 「홍복원등전(洪福源等傳)」 155권 「왕세현등전(汪世顯等傳)」 156권 「동문병등전(董文炳等傳)」 홍복원 · 정정 · 이진 · 석말안지 · 알지리 · 정온 왕세현 · 사천택 동문병 · 장홍범 157권 「유병충등전(劉秉忠等傳)」 158권 「요추등전(姚樞等傳)」 159권 「송자정전(宋子貞等傳)」 유병충 · 장문겸 · 학경 요추 · 허형 · 두묵 송자정 · 상정 · 조자량 · 조벽 160권 「왕반등전(王磐等傳)」 왕반 · 왕악 · 고명 · 이치 · 이창 · 유숙 · 왕사렴 · 이겸 · 서세륭 · 맹기 · 염복 161권 「양대연등전(楊大淵等傳)」 162권 「이홀란길등전(李忽蘭吉等傳)」 양대연 · 유정(劉整) 이홀란길 · 이정(李庭) · 사필 · 고흥 · 유국걸 163권 「이덕휘등전(李德輝等傳)」 이덕휘 · 장웅비 · 장덕휘 · 마형 · 정사렴 · 오고손택 · 조병 164권 「양공의등전(楊恭懿等傳)」 양공의 · 왕순(王恂) · 곽수경 · 양환 · 양과 · 왕구 · 위초 · 초양직 · 맹반린 · 상야 · 이지소 165권 「장희등전(張禧等傳)」 장희 · 가문비 · 해성 · 관여덕 · 조갑랄 · 주전 · 공원 · 주국보 · 장립 · 제병절 · 장만가노 · 곽앙 · 기공직 · 양새인불화 · 선비중길 · 완안석주 166권 「왕준등전(王綧等傳)」 왕준 · 수세창 · 나벽 · 유은 · 석고산 · 공언휘 · 채진 · 장태형 · 하지 · 제병절 · 맹덕 · 장영실 · 석말구구 · 초정 · 번즙 · 장균 · 단신저일 · 왕석랄 · 조굉일 167권 「장입도등전(張立道等傳)」 장입도 · 장정진 · 장혜 · 유호례 · 왕국창 · 강욱 · 장초 · 여질 · 담자영 · 왕운 168권 「진우등전(陳祐等傳)」 진우 · 유선 · 하영조 · 진사제 · 진장경 · 조여표 · 요천복 · 허국정 169권 「하인걸등전(賀仁傑等傳)」 하인걸 · 가석랄 · 유합라팔도로 · 석말명리 · 사중온 · 고휴 · 장구사 · 왕백승 170권 「상문등전(尙文等傳)」 상문 · 신도치원 · 뇌응 · 호지휼 · 왕이용 · 창사문 · 장소 · 원유 · 장방 · 학빈 · 고원 · 양식 · 오정 · 양덕규 171권 「유인등전(劉因等傳)」 172권 「정거부등전(程鉅夫等傳)」 유인 · 오징 정거부 · 조맹부 · 등문원 · 조원용 · 제이겸 173권 「최빈등전(崔斌等傳)」 174권 「요수등전(姚燧等傳)」 최빈 · 최욱 · 엽이 · 연공남 · 마소 요수 · 곽관 · 협곡지기 · 유갱 · 야율유상 · 학천정 · 장공손 175권 「장규등전(張珪等傳)」 장규 · 이맹 · 장양호 · 경엄 176권 「조백계등전(曹伯啟等傳)」 조백계 · 이원례 · 왕수 · 왕의(王倚) · 유정(劉正) · 사양 · 하약우 · 조사로 · 유덕온 · 울지덕성 · 진기종 177권 「장사명등전(張思明等傳)」 178권 「양증등전(梁曾等傳)」 179권 「하승등전(賀勝等傳)」 장사명 · 양원규 · 장승 · 장몽해 · 진호 양증 · 유민중 · 왕약 · 왕결 · 송도 · 장백순 하승 · 양타아지 · 소배주 180권 「야율희량등전(耶律希亮等傳)」 181권 「원명선등전(元明善等傳)」 182권 「장기암등전(張起巖等傳)」 야율희량 · 조세연 · 공사회 원명선 · 우집 · 게혜사 · 황진 장기암 · 구양현 · 허유임 · 송본 · 사단 183권 「왕수성등전(王守誠等傳)」 184권 「왕도중등전(王都中等傳)」 왕수성 · 왕사성 · 이호문 · 패출로충 · 이형 · 소천작 왕도중 · 왕극경 · 임속가 · 진사겸 · 한원선 · 최경 185권 「여사성등전(呂思誠等傳)」 186권 「장정등전(張楨等傳)」 여사성 · 왕택민 · 간문전 · 한용 · 이직 · 개묘 장정 · 귀양 · 진조인 · 성준 · 조감 · 장저 187권 「오고손양정등전(烏古孫良楨等傳)」 188권 「동단소등전(董摶霄等傳)」 오고손양정 · 가로 · 녹로증 · 공사태 · 주백기 · 오당 동단소 · 유합랄불화 · 왕영 · 석말의손 189·190권 「유학전(儒學傳)」 조복 · 장수 · 김이상 · 허겸 · 진력 · 호일계 · 황택 · 한택 · 동서 · 안희 · 호장유 · 웅붕래 · 대표원 · 모응룡 · 정저손 · 진부 · 동박 · 양재 · 유선 · 한성 · 오사도 · 주문규 · 주인영 · 진려 · 이효광 · 우문공량 · 합랄로백안 · 섬사 191·192권 「양리전(良吏傳)」 담징 · 허유정 · 허즙 · 전자 · 복천장 · 야율백견 · 단직 · 암도랄 · 양경행 · 임흥조 · 관음노 · 주자강 · 백경량 · 왕간 · 노기 · 추백안 · 유병직 · 허의부 193·194·195·196권 「충의전(忠義傳)」 이백온 · 석규 · 유합랄발도 · 임지 · 야율특말 · 보바르 · 합랄보화 · 유천부 · 소경무 · 장환 · 이보 · 이제 · 곽가 · 저불화 · 주희동 · 변침 · 교이 · 안유 · 왕사원 · 양박 · 조련 · 손총 · 석보 · 성소 · 양승 · 납속랄정 · 백안불화적근 · 번집경 · 전보암철리 · 주당 · 섭병 · 유경손 · 유술조 · 계완택 · 추려 · 패라첩목아 · 팽정견 · 왕백안 · 유준 · 타리불화 · 조야준대 · 진군용 · 복리아돈 · 조해 · 위중립 · 보안불화 · 민본 · 배주 · 조홍의 · 정옥 · 황후 · 백첩목이 · 질리미실 · 박새인불화 · 정호례 197·198권 「효우전(孝友傳)」 왕윤 · 곽도경 · 소도수 · 곽구구 · 장윤 · 전개주 · 영저구 · 필야속답립 · 번연 · 유덕천 · 곽회 · 공전 · 장자기 · 진걸아 · 양일 · 장본 · 장경 · 원선 · 조육 · 호광원 · 진소손 · 조일덕 · 왕사총 · 철철 · 왕응초 · 정문사 · 왕천 · 곽전 · 양호 · 정문충 · 소경조 · 호탁 · 손수실 · 이자경 · 종기 · 조영 · 오호직 · 여병 · 서옥 · 윤신 · 유정양 · 유통 · 장왕구 · 장사효 · 두우 · 장수 · 손근 · 장공 · 자여도 · 왕용 · 황윤 · 석명삼 · 유기 · 유원 · 축공영 · 진사효 · 강겸 · 호반려 · 왕사홍 · 하종의 · 합도적 · 고필달 · 증덕 · 근병 · 황도현 · 사언빈 · 장소조 · 이명덕 · 장집 · 위경익 · 탕림 · 손억 · 석영 · 왕극기 · 유사경 · 여우 · 주락 199권 「은일전(隱逸傳)」 두영 · 장특립 · 두본 · 손철 · 하중 · 무각 200·201권 「열녀전(列女傳)」 왕추추 · 진로화진 · 마영 · 조옥아 · 풍숙안 · 조왜아 · 주숙신 · 갈묘진 · 장의귀 · 이동아 · 탈탈니 · 주면가 · 귀가 · 이지정 · 채삼옥 · 범묘원 · 서채란 · 우숙정 · 진숙진 · 야산홀도 · 여언능 · 반묘원 · 유취가 · 나묘안 · 이새아 · 도종원 · 안정동 202권 「석로전(釋老傳)」 203권 「방기전(方伎傳)」 팔사파 · 구처기 · 전절 전충량 · 근덕진 · 장강 · 이호 · 손위 · 아로와정 · 역사마인 · 아니가 204권 「환자전(宦者傳)」 205권 「간신전(奸臣傳)」 이방녕 · 박불화 아합마 · 노세영 · 상가 · 철목질아 · 합마 · 삭사감 206권 「반신전(叛臣傳)」 207권 「역신전(逆臣傳)」 이단 · 왕문통 · 아로휘첩목아 철실 · 패라첩목아 208·209·210권 「외이전(外夷傳)」 고려 · 탐라 · 일본 · 안남( 진조) · 면국 · 점성 · 섬국 · 유구 · 삼서 (1) 121권의 속불태(速不台)와 122권의 설불태(雪不台)는 동일인물이므로 122권에서는 생략한다.
(2) 131권의 완자도(完者都)와 133권의 완자도발도(完者都拔都)는 동일인물이므로 133권에서는 생략한다.
(3) 150권의 석말야선(石抹也先)과 152권의 석말아신(石抹阿辛)은 동일인물이므로 152권에서는 생략한다.||<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04db1><tablebgcolor=#004db1> ||
[1]
오고타이 칸은 1241년에 사망했는데 즉위한 연도가 1246년인 것은 귀위크 칸의 어머니인 퇴레게네 카툰이 1246년까지 섭정했기 때문이다.
[2]
금나라의 장군. 몽골의 공격으로 금이 허약해지자 반란을 일으켜 만주 지역에 대진국(大眞國)을 세웠다.
[3]
각 울루스의 장자들이 사령관으로 파견되었다고 하여 '장자 원정'이라고도 칭한다.
[4]
그 이유는 그들의 어머니인 징기스칸의 부인이 임신을 하기 전에 다른 부족(메르키트)에 볼모로 끌려갔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볼모에서 풀려난뒤 임신을 하여 출산을 했는데, 하필 출산 시점이 딱 풀려난지 9개월된 시점이었다. 그렇기에 몽골 부족 내에서는 풀려가기 전에 메르키트 족장에게 성폭행을 당해서 임신한게 아니냐는 썰이 돌았었다. 하지만 원래 임신기간이라는게 9개월 내외이니 남편인 징기스칸의 친아들일 가능성도 높아서, 친자식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채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징기스칸은 이런 이야기를 못하게 막고 주치를 친아들 겸 장자로 인정을 하였으나, 몽골 부족 내에서는 뒤에서 주치에 대한 안좋은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5]
원조비사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지만, 해당 구절은 후대에 더해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6]
오고타이가 후계자를 두었으나 사후에 무시당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그런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후일
쿠빌라이 칸도 오고타이가 후계자를 두지 않아 난리가 났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7]
유럽은
몽골에서 가장 먼 지역으로 깁차크 초원을 지나서 위치하는데, 이는 칭기스칸의 분배에 따르면 장남 주치 가문이 관할해야 할 곳이다.
[8]
귀위크가 죽기 직전에 바투와의 만남 시에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였는데, 만나기 직전에 귀위크가 사망하여 확실하게는 알 수는 없지만 상호 간에 내전까지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9]
또한 바투는 유럽원정군을 자신이 계속 손에 쥐고서 반환하지도 않았으며, 귀위크 사망 이후 툴루이의 아들 몽케를 대칸에 옹립하였다. 그렇다면 바투가 직접적인 반발을 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때까지 아직도 생존한 칭기스칸의 아들
차가타이가 귀위크를 지지하였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차가타이는 칭기즈 칸 생존시에도 법을 담당하면서 신망을 받던 인물이었으며, 오고타이 칸 등극시에도 적극 지지하여 많은 우대를 받았는데, 이 인물이 귀위크를 지지하였기에 바투로서는 움직일 수 없었다. 이는 귀위크 칸이 차가타이가 사망한 이후에 그가 지명한 후계자가 아닌 자기 입맛대로 후계자를 세우면서 귀위크가 사망할 때에는 오고타이 가문(
家)이 대칸의 자리를 빼앗긴 상황과도 연결 될 수 있다.
[10]
칭기스 칸이 오고타이 가문에게 영원한 왕권을 부여했다고 생각하는 학자도 존재한다.
[11]
정확히는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몽골 귀족이 없었다.
툴루이계 왕공들과 갈등을 빚었거나 바투를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고 아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귀위크의 생전에 저들은 대칸에게 대항할 수단이 없었다.
[12]
칭기스 칸이 고문을 법령으로 금지한 걸 깨고 모후 퇴레게네가 신임했던
무슬림
노예 출신의 파티마란 여인을 고문했다. 그야말로 같은
몽골인들에게도 욕먹을 짓을 한 인물. 세금을 무겁게 거두는 바람에 피지배 민족들의 증오를 받기도 했고.
[13]
당장
티무르만 해도
바예지드 1세와 서신을 교환하며 신경전을 벌일 때 몽케를 찬탈자로 격하했다.
[14]
넷상에 떠도는 번역본을 가지고 서양문명(?)에 대한 동양문명(?)의 우위를 주장하거나 기독교를 비판하는 근거로 삼는 사람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는데 자제해야 할 것이다.
[15]
귀위크 칸이 언급한 '신'은 몽골의 텡그리이고 인노첸시오 4세가 말한 '신'은 여호와이니 분명히 다른 신이다.
[16]
게다가 귀위크에게는 사촌이 되는
툴루이의 아내로 몽골 궁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소르칵타니 베키는 천 년 전에 그 로마 기독교가 '이단'으로 내몰아 탄압하고 쫓아낸
네스토리우스파 신자였다. 훗날의 일이지만 몽골인들은 서쪽 땅에 와서는 기독교와는 라이벌 관계였던
이슬람으로 개종했기도 하고. 로마 교황이나 유럽인들이 이런 것을 속속이 다 알지는 못했다 해도, 알았다면 몽골인들을 더욱 불쾌하게 생각했을 이유 역시 기독교도 입장에서는 차고도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