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00:32:21

교향곡 제1번(브루크너)

브루크너의 교향곡
00번 1번 0번 2번 3번
4번
(낭만적)
5번 6번 7번 8번 9번
(미완성)



파보 야르비,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 2013년 2월 7일 실황.(1877년 린츠판)


리카르도 샤이,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1987년 2월 녹음.(1891년 빈판)

정식 명칭: 교향곡 제1번 c단조
(Sinfonie Nr.1 c-moll/Symphony no.1 in C minor)

1. 개요2. 곡의 형태3. 초연4. 출판 및 판본

1. 개요

안톤 브루크너의 두 번째 교향곡. 후속작인 0번의 작곡시기 추정 문제로 세 번째 교향곡이라고 언급하는 문헌도 있다. 전작인 00번 버로우탄 관계로, 1번의 영예는 이 곡에 돌아갔다.

작곡 시기는 자필보나 기타 자료를 참고하면 1865년 1월부터 이듬해인 1866년 4월 14일까지. 00번보다는 훨씬 진일보한 모습이지만, 초연 때 크게 실패한 적도 있어서 브루크너 자신은 이 곡을 오히려 다소 비판적인 입장이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 고지 독일어로 'Das kecke Beserl' 이라고 했다는데, 의역하자면 '경박한 아색히' 정도.

말은 그렇게 했다지만 아예 없는 작품 취급하지는 않고 말년에까지 개정을 했던 것으로 봐서는, 나름대로 가치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곡에서는 브루크너만의 독특한 스킬인 '브루크너 시퀀스', '브루크너 휴지' 라든가 금관악기의 강조 같은 면이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어서, 최초라는 역사적 의의 외에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00번보다는 훨씬 높게 평가되고 있다.

2. 곡의 형태

브루크너의 여타 교향곡들과 마찬가지로 4악장 구성이다. 각 악장의 형식도 00번과 대동소이한데, 주제나 악상을 내놓거나 그것을 주물러 발전시키는 스킬은 훨씬 세련된 모습이다. 다만 이 곡도 크게 보면 이후 내놓은 교향곡들과 비교했을 때 다소 튀다 못해 단순, 유치한(...) 인상이 강한데, 브루크너의 자아비판도 이런 점에서 나온 것이다.

음의 움직임이 그리 많지 않은 대다수의 브루크너 작품들과 달리 16분음표나 32분음표 등 짧은 음가의 음표들을 주루룩 쏟아내고 있는데, 특히 '힘차게, 불같이(Bewegt, feurig)' 라고 표기된 4악장에서는 브루크너답잖을 정도로 열혈 모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열정적인 면모 때문에, 후기 브루크너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도 이 곡은 그럭저럭 듣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초연 때는 악단의 연주력 부족 등 이러저러한 요인 때문에 영 좋지않은 평가만 받았고, 이 때문에 크게 두 차례 직접 개정을 해서 만년에 재공연해 호평을 받았다. 다만 지금 와서는 마지막 개정 작업이 '초기 작품의 격렬함을 노년기의 원숙함으로 억지로 억눌렀다'는 혹평이 대세인 실정인데,[1] 말년에 개정해서 좋은 소리를 못듣는 거의 유일한 브루크너 교향곡이다.

관현악 편성은 플루트 3/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팀파니/현 5부(제1 바이올린-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00번과는 다르게 플루트를 한 대 더 써서 세 대로 만들고 있다.

3. 초연

제1차 전곡 초연: 1868년 5월 9일에 브루크너 자신의 지휘로 린츠 오페라극장 관현악단이 린츠에서 초연.

하지만 이 초연은 위에 예시한 대로 대실패로 끝났다. 이러저러한 뮤지션들로 임시 증편한 악단이 좋지 않은 연주력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고, 브루크너 자신도 합창 지휘만 잘 했지 관현악 지휘는 어설펐던 탓에 연주자들에게 자신의 곡을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 게다가 청중들도 곡을 이해하지 못했다. 음악 외적인 문제도 있었는데, 공연 직전 린츠 시내를 가로지르는 도나우강의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도 간접적인 초연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되기도 한다.

제2차 전곡 초연: 1891년 12월 13일에 한스 리히터의 지휘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초연.

뼈아픈 실패 후 브루크너는 1877년과 1891년에 두 차례 곡을 뜯어고쳤는데, 2차 초연에서는 1891년 개정판을 사용해 공연했다. 이 때쯤이면 브루크너는 작곡가로서도 나름대로 명망있는 인물이었고, 악단과 지휘자도 수준급이어서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4. 출판 및 판본

1번의 악보는 크게 세 단계로 분류되는데, 1866년에 막 완성한 것과 1877년 개정을 거친 것, 그리고 1891년에 2차 개정을 거친 것으로 나뉜다. 1866년판이 1998년에야 나왔기 때문에 이전에는 1877년판과 1891년판 두 가지 밖에 없었다. 1877년판은 '린츠 판(Linzer Fassung/Linz Version)', 1891년판은 '빈 판(Wiener Fassung/Vienna Version)' 으로 불렸다. 사실 1877년에 개정할 때 브루크너는 린츠가 아닌 빈에 있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린츠 판으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다. 1866년판이 가세한 이후 현재는 린츠판, 빈판이라는 표기보다 연도로 판본을 구별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출판본으로 가장 먼저 나온 것은 1893년에 나온 악보지만, 이후 1877년판이 간행되면서 판본 선택의 대세가 린츠 판으로 옮겨가 버렸다. 개정 순서에 따른 자세한 출판 목록은 다음과 같다.

1866년 미개정판 : 노바크의 후임으로 국제브루크너협회에 들어온 캐나다 음악학자 윌리엄 캐러건이 1998년에 편집한 악보. 로베르트 하스가 1877년판을 교정하면서 1866년판과의 차이점들을 정리해놓은 자료들에 의거해 복원한 것이지만, 아직 국제브루크너협회에서 공인한 판본은 아니다. 게오르크 틴트너가 이 판본으로 녹음을 남겼다.

1868년 초연판 : 독일 음악학자 토마스 뢰더가 1868년 세계 초연 당시 판본을 복원한 것으로, 2014년 국제브루크너협회 공인을 받아 출간되었다.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이 판본으로 녹음하였다.

1877년 개정판: 1935년과 1953년에 각각 브루크너 전문 연구가들인 음악학자 로베르트 하스와 레오폴트 노바크의 편집으로 국제브루크너협회의 공인을 받아 출간되었다. 약칭 '1877년 린츠판' 혹은 '1877년판'이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빈 필하모닉), 파보 얘르비, 오이겐 요훔 등의 지휘자들이 이 판본을 선택하였다. 교향곡 1번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현재까지도 계속 이 판본이 압도적으로 많은 선택을 받고 있다.

1891년 개정판: 1980년에 음악학자 귄터 브로셰의 편집으로 국제브루크너협회 공인을 받아 출판된 것으로. 약칭 '1891년 빈판' 또는 '1891년판'. 브루크너 초기 교향곡들의 1890년 이후 재개정 작업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애호가들의 비판이 있음에도, 리카르도 샤이, 크리스티안 틸레만(빈 필하모닉), 클라우디오 아바도(루체른 페스티벌 관현악단) 등 많은 지휘자들이 이 판본으로 녹음하였다.

1893년 초판: ''브루크너의 제자 시릴 히나이스의 편집으로 출판되었다. 1891년판과 크게 다른 점 없다.

그 외 단편: 2악장의 미발표 단편과 3악장의 별도 버전이 볼프강 그랑장의 편집으로 1995년 출판되었다.

[1] 특히 4악장, 그 중에서도 코다는 악상 기호처럼 '불같이' 치열한 원판과 비교하면 거의 종교적 장엄함까지 느껴지는 수준으로 바뀌었을 정도. 사실 샤이 녹음이 유독 4악장 템포를 느리게 잡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