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22:43:14

교향곡 제5번(브루크너)

브루크너의 교향곡
00번 1번 0번 2번 3번
4번
(낭만적)
5번 6번 7번 8번 9번
(미완성)


정식 명칭: 교향곡 제5번 B플랫장조
(Sinfonie Nr.5 B-dur/Symphony no.5 in B flat major)
오이겐 요훔 지휘,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연주, 1986년 12월 3~4일 암스테르담 실황[1]

1. 개요2. 곡의 형태3. 초연과 출판4. 판본
4.1. 1876년 미개정판4.2. 1878년 개정판4.3. 1896년 초판(샬크판)
5. 기타

1. 개요

안톤 브루크너의 일곱 번째 교향곡. 브루크너 중기 교향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걸작으로, 규모만 따져보면 후기의 대작인 8번과 맞먹을 정도다. 거기에 빗대서 '고딕' 이니 '중세풍' 이니 '장엄' 이니 하는 부제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리 상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작곡 시기는 1875년 2월 14일부터 1876년 5월 16일까지. 하지만 버릇처럼(?) 자신이 완성한 교향곡이 마음이 들지 않던 브루크너는 곡 완성으로부터 정확히 1년 후인 1877년 5월 16일부터 1878년 1월 4일까지 다시 개정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고치고 나서도 초연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렇게 얻은 초연도 3번과는 다른 의미의 대참사였다.

2. 곡의 형태

고전적인 4악장 형식을 취한 것은 여타 교향곡들과 마찬가지인데, 그 규모는 개요 란에도 잠깐 언급한 것처럼 굉장히 크게 확대되어 있다. 특히 1악장과 4악장에는 느린 템포의 서주가 붙고, 4악장에서는 기존 소나타 형식에 대위법 최고의 경지인 2중/3중 푸가와 금관악기 주도로 연주되는 장중한 코랄까지 더해져 굉장히 압도적인 중량감과 종교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다. 특히 4악장의 장엄하기 그지없는 종결부는 천주교 등 특정 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낀다고 한다.

반면 중간에 끼인 두 개 악장은 비교적 간소한 형식으로 작곡되었다. ABA'B'A" 복합 3부 형식의 2악장은 브루크너 교향곡의 느린 악장 중 절품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전곡에서 가장 세속적인 분위기인 3악장은 ABA의 전통적인 3부 형식 스케르초인데, 이전의 브루크너 스케르초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시골 춤곡인 렌틀러풍이지만 템포를 빠르게 잡아 춤곡 리듬보다는 해학성을 강조하고 있다.

1악장과 4악장의 서주가 완전히 똑같은 선율로 시작하고, 2악장과 3악장은 완전히 똑같은 음형으로 시작하여, 어떻게 보면 아치 형식의 원조격(?)인 작품이 되었다.[2]

전술한 것처럼 4악장 초반에서는 1악장의 서주와 주요 주제부, 2악장의 첫 주제가 차례대로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것은 명백히 베토벤 9번 교향곡 4악장에서 따온 아이디어다. 그리고 곡 곳곳에서 금관악기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특히 4악장 종결부에서 거의 주도적인 역할을 할 정도다.

관현악 편성은 전작인 4번과 마찬가지로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3]/ 팀파니/현 5부(제1 바이올린-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3. 초연과 출판

완성과 개정 후에도 브루크너는 이 곡의 초연 기회를 좀처럼 못잡고 있었는데, 1887년 4월 20일 빈에서 브루크너의 제자인 요제프 샬크가 피아노 듀엣용 편곡을 만들어 공연한 것이 최초 연주였다. 브루크너는 이 연주 계획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했지만, 다행히도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원본 관현악 편성으로의 연주는 브루크너가 죽기 2년 전이었던 1894년 4월 9일 브루크너의 제자인 프란츠 샬크가 그라츠에서 그라츠 시립극장 관현악단을 지휘하면서 겨우 이루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초연도 브루크너의 뜻을 많이 거스른 공연이었는데, 특히 이 공연에는 샬크가 청중들의 이해력과 호응도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곡에 엄청난 양의 무단 개정을 가해 만든 악보가 사용되었다. 게다가 브루크너는 빈에서 그라츠까지도 못 갈 정도로 건강이 안좋았던 상태라, 초연 무대에 입회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1895년 12월 18일 부다페스트에서도 다른 제자인 페르디난트 뢰베[4]가 5번 교향곡을 연주한 적이 있는데, 이전보다 더 건강이 악화되었던 브루크너는 이 공연에도 참석할 수 없었고, 반응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4. 판본

4.1. 1876년 미개정판

캐나다 음악학자 윌리엄 캐러건이 1997년 편집했다고는 하지만, 캐러건의 편집본은 2023년 현재까지 출판되지 않았고, 대신 일본 음악학자 카와사키 타카노부가 빈 국립 도서관 문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브루크너의 자필보를 바탕으로 편집한 악보가 2008년 공개되었다. 다만 이 카와사키판 역시 공식 출판은 되고 있지 않다.

2008년 11월 17일 나이토 아키라 지휘의 도쿄 뉴 시티 오케스트라가 초연했고, 공연 실황이 일본 음반사 델타 클래식스에서 CD로 출반되었다. 상술했듯이 튜바가 빠져 있고, 관악기보다 현악기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무엇보다 양끝악장의 서주와 2악장의 템포를 매우 느리게(Sehr langsam)가 아니라 알라 브레베(Alla breve)[5]라고 지정해 훨씬 빠르게 연주하도록 하는 등 기존 판본과 차이가 상당하다.

4.2. 1878년 개정판

1935년과 1951년 각각 브루크너 전문 연구가인 음악학자 로베르트 하스와 레오폴트 노바크의 편집으로 출판되었는데, 현재 이 곡의 연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판본들이다. 하스판 출판과 비슷한 시기인 1935년 10월 20일 뮌헨에서 지그문트 폰 하우제거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하스판과 노바크판 사이에 큰 차이점은 없고, 노바크판은 하스판에 있던 약간의 오류를 손본 정도다. 약칭 '1878년판'.[6]

4.3. 1896년 초판(샬크판)

1959년 3월 19일, 한스 크나퍼츠부슈 지휘,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1894년 5번 교향곡을 초연한 프란츠 샬크는 자신이 편집한 동곡의 악보를 초연 2년 뒤인 1896년 빈의 음악출판사 루트비히 도블링어에서 출판했다. 샬크는 이 편집 과정에서 전곡에 걸쳐 전면적인 첨삭과 재편곡을 행했는데, 악기 편성에 있어서는 플루트를 세 대로 늘리고 4악장 종결부에 별도의 금관악기 주자들[7] 피콜로, 트라이앵글, 심벌즈를 첨가했으며, 관현악법에도 엄청난 양의 개정을 가해 현만이 연주하던 파트에 목관의 더블링을 첨가한 것은 기본일 정도에 일부 현의 악구를 목관으로 옮기거나 팀파니의 연속적인 트레몰로의 리듬을 바꾸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개정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 제1악장: 제1주제가 투티로 다시 한 번 제시될 때의 음향 대폭 변경, 목관으로만 연주되던 제3주제에 제1바이올린 더블링, 발전부 중초반의 음향도 대폭 변경, 코다 초반의 현 파트를 피치카토에서 아르코[8]로 변경
  • 제2악장: 뚜렷하게 주목할 만한 수정이 없다.
  • 제3악장: 주부 중후반에서 현과 목관이 중점적으로 연주하는 선율의 악기법을 서로 뒤바꿈, 주부 코다의 목관의 연타음을 트릴로 변경, 트리오에서 주부로 돌아갈 때 주부의 후반부만 재현되게 함[9]
  • 제4악장: 제시부 말미의 코랄 주제의 오케스트레이션 변경, 원전판 기준으로 발전부 중후반인 322~353마디까지의 총 32마디를 삭제.[10] 재현부에서는 제3주제만 재현되게 바꿈.[11] 제3주제군 도입 부분의 현 파트 재작곡, 코다의 코랄 파트의 악기법 대폭 수정[12], 코다 끄트머리의 622~625마디까지의 총 4마디를 삭제[13] -> 원곡의 634마디 중 총 3부분에서 122마디(32+86+4) 삭제.[14]

이 곡도 교향곡 9번과 마찬가지로 1896년 이후로는 거의 샬크 편집의 초판만으로 연주되었지만, 원전판이 1935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샬크판은 삽시간에 매장되었다. 그나마 국제 브루크너 협회의 공인 개정판이 나왔음에도 끝까지 초판을 사용한 한스 크나퍼츠부슈 정도가 이런 흐름의 반대편에 서 있었고, 그 외에는 레온 보트스타인이나 노구치 타케오같이 이 판본의 가치(?)를 강조하며 재평가를 시도하는 극소수의 지휘자들 정도만이 이 판본을 사용해 공연하거나 녹음하고 있을 뿐이다.[15] 임헌정의 지휘로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개최한 브루크너 교향곡 연속 연주회에서도 이 곡의 연주에서 샬크판이 채택되었다.

음악학자 벤자민 코스트베트[16]는 1998년 녹음된 보트스타인반 CD의 속지에다가 새로운 주장을 제기했다. 바로 통설과는 달리 샬크의 편집을 브루크너가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 편집에 직접 개입까지 했다는 것이다. 코스트베트에 의하면 브루크너는 샬크의 5번 교향곡 개정을 기대하고 있었는지 프란츠 샬크의 동생인 요제프 샬크에게 편곡이 늦는다며 걱정하는 편지까지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2악장 종결부의 일부 오케스트레이션 변경은 브루크너 자신의 아이디어였으며, 4악장 코다의 금관군 추가도 브루크너가 승낙한 아이디어라고 한다.

5. 기타

  • 현실적인 문제로, 금관이 하도 강조되다 보니 실제 연주에서 금관 삑사리가 가장 튀는 오점으로 남는 곡이기도 하다. 금관 주자들은 (물론 밸브와 슬라이드라는 천금같은 옵션이 있기는 하지만) 입술과 호흡의 압력을 이용해 음과 강약을 조절하는데, 이렇게 대곡에서 오랫동안 시달리다 보면 마지막에 힘이 딸려서 오히려 대미 장식에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샬크가 4악장 종결부에서 금관악기 주자들을 두 배로 증편한 까닭이 여기에 있는데, 물론 무단 개정 작업 자체가 큰 잘못이긴 해도 실제 연주에는 꽤 쓸만한 아이디어라서 지금도 종종 채택되는 대안이다. 이럴 경우 금관은 호른 8/트럼펫 6/트롬본 6/튜바 2라는 대편성이 되는데, 하스판을 택한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폴크마르 안드레에, 노바크판을 택한 오이겐 요훔 등이 4악장 후반부에서 이 발상을 연주에 차용했다.

    특히 요훔은 자신이 이 곡을 여러번 지휘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 연주에서 적용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원래 편성의 금관 주자들이 4악장의 거대한 코다에 앞서 악장 후반부에 쉬도록 하여 체력을 보충하는 동안 증원된 금관군이 대신 본곡을 연주하도록 하다가 코다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같이 연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요즘도 이렇게 금관을 완전히 더블링한 편성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다니엘 바렌보임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DVD 연주에서는 금관은 물론이고 팀파니까지 2세트로 연주하고 있다. 한국 최초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지휘한 이동호도 하스판을 택하면서도 아예 거의 모든 악장에서 이 스펙으로 연주하도록 했다. 현실적으로 이렇게 금관 전체를 더블링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지만, 일부 파트 인원을 증원하여 연주하는 경우는 매우 일반적이다.
  • 2007년 8월 16일에는 브루크너가 학생이자 교사,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했고 지금은 묘지 역할까지 하는 장크트 플로리안 수도원의 도서관 지하실에서 이 곡을 재즈로 편곡한 것이 'Bruckner V Improvised' 라는 타이틀로 공연되었다. 장크트 플로리안에서 주최한 음악제인 '제1회 브루크너의 날(Brucknertage)' 의 공식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콘서트였는데, 편곡과 색소폰, 밴드 리더는 토마스 만델이 맡았고, 퓨전 재즈 그룹인 '템포러리 아트 오케스트라' 가 공연했다. 이들은 같은 라인업으로 2009년의 3회 행사 때 교향곡 7번의 재즈 버전을 두 번째로 선보였다.


[1] 요훔이 이 공연을 지휘한 뒤인 4개월도 안 된 1987년 3월 26일 사망하면서, 이 연주는 요훔의 생애 마지막 연주회의 실황 녹음이 되었다. 물론 연주 자체도 불멸의 명연으로 평가받는다. [2] 정확히 설명하자면, 동일한 셋잇단음표 패시지가 2악장에서는 피치카토로 느리게 연주되는 반면, 3악장에서는 아르코로 빠르게 연주된다. [3] 사실 4번처럼 처음 완성할 당시에는 튜바가 없었는데, 개정하면서 추가되었다. [4] 브루크너가 죽은 후에 9번에다가 5번의 그것도 애교로 보일 정도의 엄청난 무단 개정을 가한 후 초연했다. [5] 4박 기준으로 지정된 리듬을 2박 기준으로 연주하라는 지시. 당연히 속도는 두 배가 된다. [6] 그리고 1878년판 완성 후 2년 뒤에도 개정 작업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2022년 현재까지 이 판본에 대해 아무도 손대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1880년의 개정 작업은 사실상 세부 수정 정도에만 머무른 것으로 추정된다. [7]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1 [8] Arco, 현을 활로 그어 연주하는 주법. 현악기를 일반적으로 연주하는 주법이다. [9] 정확히는 244마디부터 재현되게 수정되었다. [10] 요훔반 기준 1:11:00~1:12:02. 354마디 이후 부분은 현으로 연주하던 부분이 목관으로 옮겨져서 알아채기 쉽지 않다. [11] 이는 제1주제와 제2주제가 재현되는 374~459마디까지의 총 86마디(요훔반 기준 1:12:41~1:16:24)가 완전히 삭제되었다는 뜻이다. [12] 상술한 여분의 악기들(피콜로, 별도의 금관군, 심벌즈, 트라이앵글)은 물론이고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장식적인 악구도 첨가되었다. [13] 요훔반 기준 1:21:40~1:21:50 [14] 전체의 거의 1/5이 잘려나간 셈이다. [15] 반면 뢰베판 9번은 크나퍼츠부슈가 죽은 뒤로 녹음하는 지휘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사실 9번 뢰베판은 5번 샬크판도 애교로 보일 수준으로 심하게 원작파괴가 이루어진 판본인지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6] 뢰베가 개정한 것으로 알려진 4번 교향곡의 1889년판이 브루크너 자신이 직접적으로 개정한 것이라는 주장으로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