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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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통일신라의 과학사
자연 과학 분야, 특히 농업과 천문학 분야에서도 통일 신라 시기에 발전하여 7세기에는 첨성대(瞻星臺)가 축조되고[1], 수학· 의학이 발달하였다. 통일 신라 대에는 당과의 기술 교류가 활발해, 덕복(德福)은 당에서 가져온 기술을 이용해 역법을 만들었고, 김암(金巖) 등이 당에 유학해 천문학을 배워 신라에 보급하고, 그리고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서 전수하기도 했다. 그리고 삼국사기의 기록상으로는 718년(성덕왕 17년)에 물시계를 만들고 이것을 관리하는 관청을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이 만든 최초의 물시계가 671년 백제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삼국사기에 기록된 718년 훨씬 이전부터 물시계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수학도 크게 발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석굴암의 평면 구성이나 천장의 돔, 불국사 석가탑, 다보탑 등 여러 건축물의 균형 잡힌 비례 구성에는 모두 정밀한 수학적 지식이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고 학부인 국학에서는 수학 교육도 이뤄졌고, 717년에는 산박사(算博士) 제도를 시행했다.
또 기포가 거의 없이 완성도가 높은 성덕대왕신종을 제조하는 등 금속 공학 등의 측면에도 발전된 부분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인쇄 제지술이 발달해, 신라산 한지인 저지(楮紙, 닥나무 종이)는 색이 희고 질겨 중국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보존성이 뛰어나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며, 전란이 적었던 일본 땅에서 민정문서 등 신라 당대의 인쇄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1]
하지만 첨성대가 정말 천문대인지는 논란이 있다. 일단 형태적으로도 별을 관측하기 불편하고 관련 기록도 많지 않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