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5 03:12:30

고카쿠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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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일본 제119대 천황
고카쿠 덴노
光格天皇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10px-Emperor_K%C5%8Dkaku.jpg
출생 1771년 9월 23일
야마시로국 교토
(現 교토부 교토시)
사망 1840년 12월 11일 (향년 69세)
야마시로국 교토 교토 어소
(現 교토부 교토시)
능묘 노치노츠키노와능([ruby(後月輪陵, ruby=후월륜릉)])
재위기간 제119대 천황
1780년 1월 1일 ~ 1817년 5월 17일
일본 상황
인세이
1817년 5월 17일 ~ 1840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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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d0029><colcolor=#dca600> 모로히토([ruby(師仁, ruby=사인)]) → 도모히토([ruby(兼仁, ruby=겸인)])
부모 친부 간인노미야 스케히토 친왕
모친 여방 하스우에인
양부 고모모조노 덴노
양모 여어 세에카몬인
형제자매 10남 2녀 중 6남
배우자 중궁 요시코 내친왕
전시 도쿄쿠인
자녀 8남 9녀
종교 신토, 불교
아명 사치노미야([ruby(祐宮, ruby=우궁)])
시호 고카쿠 덴노([ruby(光格天皇, ruby=광격천황)])
연호 안에이([ruby(安永, ruby=안영)], 1779년 ~ 1781년)[1]
덴메이([ruby(天明, ruby=천명)], 1781년 ~ 1789년)
간세이([ruby(寬政, ruby=관정)], 1789년 ~ 1801년)
교와([ruby(享和, ruby=향화)], 1801년 ~ 1804년)
분카([ruby(文化, ruby=문화)], 1804년 ~ 1817년)
}}}}}}}}}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제119대 천황.

제113대 군주인 히가시야마 덴노의 증손자(4세손)로, 방계 황족인 간인노미야 스케히토 친왕의 6남으로 태어났다. 이름은 본래 모로히토(師仁)였으나 '師仁'이라는 한자가 '死人'과 같은 발음으로 읽힐 수 있다는 이유로, 즉위한 뒤 토모히토(兼仁)로 개명했다.

고카쿠 덴노의 곤손인 나루히토[2]까지 계속 부자 세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에 현 일본 황실의 직계를 연 천황이다.

2. 생애

중환에 시달리던 고모모조노 덴노는 후계를 정할 틈도 없이 갑작스레 급사하고 말았다. 고모모조노 덴노에게는 황자가 없고 황녀인 요시코(欣子) 내친왕 한 명만 있었다. 이에 급히 4대 세습친왕가 간인노미야에서 간인노미야 스케히토 친왕의 6남이었던 모로히토 친왕을 사후 양자를 들였는데 그가 바로 고카쿠 덴노였다. 고카쿠 덴노는 고모모조노 덴노의 7촌 아저씨(재종숙부)가 되니, '7촌 아저씨가 조카의 양자가 된 셈'이었다.[3] 고카쿠 덴노는 1780년에 즉위했으며, 요시코 내친왕을 황후로 삼았다.

재위 중에 텐메이 대기근이 발생하자 고카쿠 덴노는 에도 막부에게 백성들을 구제하도록 명령했다. 또한 1811년 치시마 섬의 측량을 위해 일본에 온 러시아 군함 디아나호가 일본에 억류되는 이른바 고로닌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교섭의 내용을 전부 보고하도록 하는 등 교토 조정의 권위 회복에 노력했다.

막부와 조정 사이의 힘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가 존호 사건이다. 고카쿠 덴노는 친아버지인 스케히토 친왕에게 태상황의 존호를 부여하고자 했다.[4] 그러나 에도 막부
'황위에 오른 적이 없는 인물이 상황의 칭호를 받은 전례가 없다.'
라는 논리로 반대하여 성사되지 못했고, 이 사건은 후에 존왕 사상을 낳는 계기가 되었다.[5]

고카쿠 덴노는 학문에 열심이었으며, 시와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박학다식하고 다재다능했다. 또한 400여 년간 단절되었던 교토의 이와시미즈 하치만 궁(石清水八幡宮)이나 가모 신사(賀茂神社)의 임시제를 재개하고, 조정의 의례를 부활시키는 등 노력했다. 또한, 대학료를 대신하는 조정의 공식교육기관 설치를 구상했으나 재위 중 실현하지는 못했다. 아들 닌코 덴노대에 와서야 조정의 공식교육기관인 가쿠슈인[6]이 설치되었다.

1817년 5월 7일, 고카쿠 덴노는 닌코 덴노에게 양위하고 물러나 이듬해 5월 9일에 퇴위함에 따라 태상황이 되었다.

1840년 12월 11일, 향년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능은 교토시 히가시야마(東山)구에 있는 센뉴지(泉涌寺, 천용사)에 있다.

사후 '고레이겐인(後靈元院)'이라는 추호(追號)와 원호(院號)가 올려질 예정이었으나 교토 조정에서 900여년만에 한풍 시호와 천황 호칭을 다시 사용하기로 하면서 최종적으로 '고카쿠 덴노(光格天皇)'이라는 시호(諡號)와 천황호(天皇號)가 올려졌다.

3. 여담

  • 고카쿠 덴노는 현재 황실의 직계 조상으로, 부계 기준으로 따져서 지금의 황실 구성원 이외에 신적강하하여 별도의 가문을 창시한 후손은 없다. 애초에 고카쿠 덴노의 자손은 닌코 덴노부터 다이쇼 덴노에 이르기까지 직계 남계 혈통은 전원 후계자 한 명을 제외하면 요절했기 때문에 따로 세습친왕가를 만들거나 할 여유가 없었다. 사실상 현재 일본 황실의 남계 혈통 부족의 시작이 고카쿠 덴노부터 비롯되었다. 그나마 당시에는 친형인 하루히토의 혈통인 간인노미야가 있었지만 간인노미야 직계도 나루히토(愛仁)로 단절되어 후시미노미야에서 양자 입적으로 이은 지경이었고, 결국 단절되었다.[7]
  • 1817년 고카쿠 덴노가 퇴위한 이후 태상황이 된 천황은 이후 202년 동안 없었다. 그러다가 아키히토 천황이 2019년 4월 30일부로 생전 퇴위하고, 익일인 5월 1일에 나루히토 황태자가 즉위함에 따라 고카쿠 덴노의 사례가 새롭게 언론에게 주목받았다.

[1] 선황이자 재당조카아들인 고모모조노 덴노의 연호 습용. [2] 나루히토 입장에서 그는 태조할아버지이다. [3] 조선의 경우는 후사가 끊겨 즉위한 방계 왕족이 선왕의 아랫 항렬이 아닌 경우에는 더 선대의 왕들 중 자신의 윗 항렬에 해당하는 왕의 양자로 들어가 왕위를 이었으나, 일본은 이러한 형태의 예법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조선식 예법을 따른다고 가정한다면, 모모조노 덴노와 같은 항렬이므로 사쿠라마치 덴노의 양자로 들어가야 했다. [4] 그 이유는 막부가 제정한 《 금중병공가제법도》에 따르면 아버지 스케히토 친왕이 고카쿠 덴노의 신하들보다 서열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5] 고카쿠 덴노가 이루지 못한 소원은 메이지 유신 이후, 증손자인 메이지 덴노가 스케이토 친왕을 천황으로 추존하면서 비로소 이뤄지게 되었다. [6] 훗날 일본제국 시기, 이 교육기관은 일본 황족 및 화족 자제 전용의 교육기관이 되었다. [7] 더 올라가서 현 직황족의 가장 가까운 남계 혈통을 따라 올라가 히가시야마 덴노의 후손으로 압축해도 남계에서 가장 가까운 궁가였던 아리스가와노미야와 가츠라노미야가 이미 단절되었고, 공가로 입적된 다카츠카사 스케히라의 혈통밖에 없다. 이들조차도 현 직황족과는 20촌이 넘게 차이난다. 흔히 구황족이라 불리는 자들은 700년 전에 분가된 가문이고, 300년 전 가문에서 분가된 혈통에서 따져도 이것밖에 없다는 것이 얼마나 일본 황족의 후손 부족이 심각했는가를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