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23:05:14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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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보물 寶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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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1.jpg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보물 제634호

1. 개요

慶州 皇南洞 象嵌琉璃玉. 경주 황남동 미추왕릉 C지구 제4호묘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상감 유리구슬 목걸이.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었고 보물 제634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파일: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2.jpg
파일: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3.jpg



길이 24 cm, 상감유리옥 지름 1.8 cm.

1973년 경주 황남동의 미추왕릉 C지구 제4호묘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목걸이로, 제작 연대는 대략 5세기경(서기 400년대)로 확인되고 있다. 당시 적석 목곽분에서 피장자가 착장한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푸른색 유리 28점, 붉은색 마노 16점, 벽옥 1점 등이 원을 이루며, 중심 아래로 늘어뜨린 장식에는 상감 유리구슬 1점, 수정 1점, 곡옥 모양 마노 1점이 장식되었다.

구슬 안에는 사람, , 나무 등이 조화롭게 표현되었는데, 흰 얼굴에 푸른 눈과 짙은 눈썹, 빨간 입술을 지닌 사람의 모습이 다섯 곳에 있고 오리 모양 새 5마리가 사이에 배치되었다. 푸른 눈동자와 흰 피부 등으로 미루어보아 지중해 지역 서양인의 모습을 묘사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원래 색깔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도 없고 파란색 계열의 물감을 이용해 그림이 그려졌다는 이유로 서양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상감구슬에 투영된 인물 모습을 제외한 나머지 목걸이 파츠는 모두 3~5세기 신라의 고유한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이와 같은 흉상형 인물 무늬가 들어 있는 구슬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된 예가 없다고 하므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일반적인 도자기가 아닌, 매끈한 유리 구슬 상감 기법으로 문양을 넣기 위해서는 매우 정교한 제작 과정과 기술력이 필요하다. 현대의 모자이크 방식으로 필요한 부분에 미리 제작해놓은 문양을 부착하고 필요한 색상의 유리를 선택하여 서로 중첩하여 단면에 무늬가 드러나게 한 후 남색 시료액에 구슬을 담궈두었다가 마지막으로 열기를 가하여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은 것 같다. 링크

영국 런던 고고학연구소의 제임스 랭턴 박사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자바 티무르, 즉 당시 스리위자야였던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만들어진 고대 펠랑기 구슬과 동일한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주장에 따르면 적어도 4세기 이전부터 신라인들이 인도네시아 원주민들과 직접 교류했다는 증거가 된다.

미술사적 가치가 높고, 당시 광활한 스탭을 넘어 지중해 지역까지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하였던 신라의 대외 교류를 증명해 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1978년 12월 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634호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慶州 皇南洞 象嵌琉璃玉)는 경주 황남동에 있는 신라 미추왕릉에서 발견된 길이 24㎝, 상감유리옥 지름 1.8㎝의 옥 목걸이이다.

8가지 정도의 옥을 연결하여 만든 목걸이로, 대부분의 옥이 삼국시대 신라 무덤에서 자주 출토되는 편이지만 상감유리환옥은 처음 출토되었다.

작고 둥그런 유리 옥에는 녹색 물풀이 떠 있는 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오리 16마리와 두 사람의 얼굴이 지름 1.8㎝의 작은 표면에 여러 가지 색을 써서, 세밀하게 상감 되어 있다.

유리 옥의 제작지가 어느 곳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얼굴 모습이 우리나라 사람과 차이가 난다. 수공 기술이 놀랍고 색조의 조화가 아름다운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