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12-12 00:48:54

경주 인용사지 출토 목간

파일:경주 인용사지 출토 목간2.png 파일:경주 인용사지 출토 목간1.jpg
2008년에 발굴된 목간 # 2010년에 발굴된 목간 #, #

1. 개요2. 내용3.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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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 월성 남쪽에 위치한 옛 인용사(仁容寺) 터에서 발굴된 7세기 중반~8세기 경 신라시대 목간 2점. 2010년에 발견된 목간의 경우 현대 한국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의 사초(史草)로 유명하다. 현재 2점 모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옛 신라시대 절터인 인용사지에서 발견된 목간 2점으로, 용왕(龍王)명 목간은 2008년, 인재천거 목간은 2010년 5월에 각각 발견되었다.
파일:경주 인용사지 출토 목간3.png 파일:경주 인용사지 출토 목간4.png
사진 출처 사진 출처

2008년에 인용사지 우물 안에서 발견된 목간에는 용왕 관련 내용이 있어 당시 신라인들이 우물에서 용왕신에 대한 제례를 올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목간 발견 당시 원반형 토제품 및 인화문 토기, 동곳(銅串), 복숭아씨 및 각종 동물 뼈 등 제사 관련 유물들이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 역시 용왕에게 바치는 제례품이었다고 추정한다. 이후 본 인용사지 우물 바로 옆 다른 우물에서도 동일하게 용왕신 제례를 바쳤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

이에 대하여 일본 학계의 야마가타대학(山形大学) 미카미 요시타카(三上喜孝) 교수는 고대 한일 양국의 '용왕(龍王)' 새김 목간을 분석해 이들이 기우제와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해당 인용사지 목간이 칼 모양으로 가공됐으며 글자를 앞뒤로 거꾸로 쓴 것으로 보아 일종의 주술용 목간이라고 추정하였다. # 한국의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도 본 인용사지 우물을 포함해 신라 왕경 지역에서 발견되는 고대 신라 우물 200여 곳 주변에서 물을 주관하는 수신(水神)으로 여긴 용왕신에게 기우(祈雨)나 기청(祈請), 치병(治病) 등을 기원하였음을 증명하는 자료로 파악하였다. #

2010년 5월에 발견된 목간은 8세기에 대룡(大龍)이란 인물이 어떤 사람을 왕에게 천거한 사실을 기록한 일종의 사초이다. 목간의 형태는 세장방형(細長方形 긴 네모꼴)으로 길이 15.8 cm, 너비 1.38 cm, 두께 0.77 cm이고 수종은 소나무이다.

본 목간 앞뒤 양면에는 묵서(墨書) 약 40여 자가 확인되었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 #
大龍王中白主民渙次心阿多乎去亦在…
대룡이 왕께 사뢰기를 "왕과 백성들이 흩어지던 차에 마음에 많이 걸리는 바가 있습니다.…

名者所貴公歲卅金(候)公歲卅五
천거할 사람은 소귀공(所貴公)으로 그 나이가 서른이고, 김후공(金候公)은 서른 다섯입니다.

是二人者歲▩中人亦在如契与▩右如...
이 두 사람은 나이에 (적당함이) 있습니다. 약속은 앞과 같습니다."
여기 나오는 대룡(大龍)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8세기 말 원성왕의 딸 대룡부인으로 추정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고대 서체 전공 손환일 박사, 이두 전공 이승재 서울대 교수 등은 본 목간에 기록된 묵서의 형식과 내용을 감안하면 이것이 해당 사실을 기록한 자료로서 정식 역사서로 정리하기 전 단계의 기록, 즉 사초일 가능성이 높다고 파악하였다. 즉 이 목간은 대룡부인이 왕에게 두 인물을 천거하는 내용을 왕 곁에 있던 사관(史官)이 제3자의 입장에서 기록한 기록물이다.

해당 목간으로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신라시대 당시에는 비록 왕족의 신분이기는 하나 여성이 왕에게까지 관리를 공식적으로 천거할 권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천거된 인물 중 김후공은 김씨 성을 가진 귀족이 확실하나 소귀공은 성을 가지지 못한 신분 낮은 평민임에도 불구하고 왕에게 천거받아 고위 관리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앞서 말한대로 한국은 조선보다 훨씬 이전인 신라 때부터 역사서 저술을 위한 철저한 기록문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경주 인용사지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목간들로, 당시 신라의 시대상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3.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