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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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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

姜尙仁
? ~ 1418년( 세종 즉위년)

조선 관료. 본관은 진주. 태종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 중에서도 가장 억울한 사람일 것이다. 태종의 비정함을 얘기할때 항상 거론되는 사람이다.

2. 생애

태종이 왕이 되기 전부터 섬겼고 1400년에 태종이 즉위하자 원종공신이 되었으며, 상의원 제조가 되었다가 1402년 4월 16일에 명나라의 동녕위 천호 임팔라실리가 조선에 들어오자 태종의 명으로 강계로 가서 그들을 받아들였다.

1409년 2월 17일에는 순금사 대호군으로 있었다. 부사직 최금강이 사촌누이 수미가 부사직 송현우와 간통한다고 고발했는데, 박은, 성엄 등이 사헌부에서 송사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자 강상인은 태종의 명으로 사헌부와 형조의 문서 초안을 가지고 시비를 가렸다.

1418년( 세종 즉위년)에 병조참판에 임명되었고 병조판서 박습과 함께 상아패와 오매패를 태종에게 보고 없이 세종에게 전달했다. 이에 태종은 원종공신이라고 해서 박습과 함께 용서해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는데, 이 때 강상인은 태종을 30년간 따라 지내 오늘에 와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 했다고 한다. 죄를 용서받았음에도 계속해서 상소가 올라가자 관노가 되었다.

그 후 심온의 옥사에 연루되었는데, 태종은 세종의 장인 심온이 강상인과 함께 반역을 꾀하고 있다 생각하여 강상인을 다시 잡아다 국문했다. 처음엔 강상인은 부인하였으나 압슬형을 네 차례나 받은 끝에 결국 반역을 꾀했다고 자백하고 거열형으로 처형됐다. 이때 강상인은 " 나는 죄가 없는데 매를 견디지 못해 죽는다!"라는 말을 남겼다.

3. 대중매체

  • 용의 눈물에서 등장한다. 박칠용분.
  • 대왕 세종에서 등장한다. 정흥채분.
  • 태종 이방원에서 등장한다. 이병훈분.
  •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세종, 문종실록에서 등장한다. 병조판서 박습과 함께 첫 등장한다. 그러나 박습은 강상인의 눈치만 보는 사람이었기에 실질적인 병조판서는 강상인이었다. 얼마 안 있어 태종이 강상인을 불러서 “요번에 만든 상아패와 오매패는 어디서 쓰는 것이냐?”라고 묻자 강상인은 “아, 그거요? 대신들을 부를 때 쓰는 물건입니다.”라고 하자 태종은 “그래? 그럼 내게는 필요없는 물건이구나. 주상께 전하거라.”라며 그냥 넘어간다. 세종에게 가는데 이때 세종이 상아패와 오매패를 보고는 “이건 어디에 쓰는 물건이오?”라고 세종이 질문하자 강상인은 “예, 전하! 밖에 있는 장수들을 부를 때 쓰는 물건입니다.”라고 답하자 세종이 “그럼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물건이군요. 상왕 전하께 가져다 드리도록 하세요.”라고 답하며 다시 강상인에게 건네고 그 물건을 태종에게 다시 전하자 태종이 극대노해서는 “내 군사와 관련된 일은 내가 직접 챙기겠다 하였거늘! 여봐라, 의금부를 불러라! 당장 강상인을 하옥하고 국문하도록 하라!”라며 강상인을 고문할 것을 명한다. 이 사건 하나로 강상인은 하루 아침에 병조참판에서 관노로 몰락하고 박습은 경상도로 유배 보내진다. 이때 강상인이 “ㄱ, 공신인 내가 평민도 아니고 천민 출신 관노라니 으허헝.”이라 하는 것이 압권이다. 이후 태종이 심온을 명으로 보내자 아무래도 강상인과 심온이 태종과 세종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 생각해 다시 강상인 사건을 끄집어내더니 다시 강상인을 고문한다. 이 얘기를 듣자 “30년 원종공신 입니다. 제가 어찌 그런 마음을 품었겠습니까?”라며 부정했지만 류정현이 더 고문을 가했고 결국 네 차례의 압슬형을 못 이긴 강상인은 관련자들을 실토했고 이때 심온도 거론되자 태종은 할 일이 다 끝났는지 강상인을 처형시키는데, 유언으로 “나는 죄가 없는데 매를 견디지 못해 죽는다아!”라고 절규하며 처형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