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04 04:44:55

강낙원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강낙원
姜洛遠[1]遠으로 새겨져 있다.] | Gang, Nak-won
파일:강낙원(1919년).png
경성감옥에서 촬영된 사진.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82년 1월 1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북후면 옹천리
(현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2])[3]
사망 1960년 4월 20일 (향년 78세)
경상북도 안동군
(現 경상북도 안동시)
본관 진주 강씨[4]
창씨명 미쓰이 라쿠엔(三井洛遠)[5]
석언(石言)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210호
상훈 1992년 건국포장 추서

1. 개요2. 생애3.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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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체육인인 강낙원(姜樂遠)과는 당연히 동명이인이다.

2. 생애

1882년 1월 1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현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예안군 서면 사천리(현 안동시 녹전면 서삼리 모란마을 478번지)로 이주하여 본적을 두었다.

1919년 무렵 녹전면 서삼동의 동장으로 재직하던 중, 전국 각지에서 3.1 운동이 발발하자 이에 호응하기로 마음 먹었다. 안동군 예안면 예안장터에서 3월 22일 장날이 열리는 걸 이용하기로 하고, 그날 오후 7시경 시장에 모인 군중을 향해 한국독립만세를 고창하여 만세시위를 벌이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 일로 재판에 회부된 그는 1919년 4월 16일[6]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7] 이에 공소를 제기하여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감되었으며[8], 5월 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원심 판결이 취소되었으나, 형기는 그대로 유지되어[9] 결국 복역하였다.

1920년 1월 31일 가출옥하였고[10], 1960년 4월 12일 경상북도 안동군에서 사망했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유해는 2017년 8월 31일 배우자 유초례의 유해와 함께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5묘역에 이장되었다.

3. 참고 문헌

  •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
  • 국가기록원 - 독립운동관련 판결문


[1] 묘소에 있는 묘비에는 [2] 진주 강씨 집성촌이다. [3] 1919년 5월 6일 수형인명부. 디지털안동문화대전에는 안동시 북후면 장기리에서 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4] 박사공파(博士公派) 26세 원(遠) 신(信) 중(中) 항렬. [5] 1919년 5월 6일 수형인명부 [6] 1919년 5월 6일 형사사건부에는 1월 16일으로 오기되어 있다. [7] 1919년 4월 16일 형사사건부. [8] 1919년 4월 19일 집행원부 [9] 1919년 5월 6일 대구복심법원 판결문 [10] 강낙원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