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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방 가디언스 2023 시즌 외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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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린저쉬안 28 가오궈후이 # 양야오쉰 | |
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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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방 가디언즈 No.28 | |
가오궈후이 高國輝 / Kuo-Hui Ka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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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14c90><colcolor=#ffffff> 출생 | <colbgcolor=#ffffff> 1985년 9월 26일 ([age(1985-09-26)]세) |
화롄현 | |
국적 |
[[대만| ]][[틀:국기| ]][[틀:국기| ]] |
투타 | 우투우타 |
신체 | 187cm / 106kg |
포지션 | 좌익수 |
프로입단 | 2006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 SEA) |
소속팀 |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마이너 (2006~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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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 푸방 가디언즈 2군 타격코치 (2024~) |
응원가 | Funky Monkey Babys - あとひとつ[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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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만 국적의 푸방 가디언스 소속 야구선수. 소수민족인 아미족( 대만 원주민 민족 중 하나) 혼혈이라고 한다.2. 선수 경력
2.1. 마이너리그 시절
2006년, 가오궈후이는 계약금 18만 달러라는 헐값으로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을 맺는다. 첫 해 클래스 A에서 타율 .243을 기록하며 좀 부진하였고, 쇼트시즌 A에서는 그래도 OPS 8할을 기록하며 꽤 잘 했다. 2007년 다시 클래스 A로 승격된 그는 .288/.368/.419에 OPS .787로 선전하였고, 다음 해 클래스 A 어드밴스드로 올라간 첫 해에는, 다시 2할 5푼대의 타율과 .712의 좋지 않은 기록을 남겼지만, 2009년에는 OPS 8할 1푼 2리로 실력이 늘며 더블 A로 올라갔다. 하지만, 더블 A부터는 최소 KBO급 이상의 투수들이 등장하는 레벨로, 브레이킹볼 수준이 차원이 달라진다. 그는 2010년 더블 A에서 .237/.302/.329의 좋지 않은 기록을 남겼고, 슬럼프가 찾아와 클래스 A 어드밴스드에서도 6할대 OPS를 찍어버렸다. 그래도 2011년에는 더블 A에서 OPS 7할 5푼대를 기록하며 나아지던 중, 대만에서 열린 올스타전에 대만 대표로 참가했다가 불의의 다리 골절상을 당하고 클래스 A로 떨어진 후, 폼을 되찾지 못하고 대만으로 유턴하였다. 마이너리그 시절 모습은 디에고마 마크웰, 커트 스미스, 다셴코 리카르도, 애덤 부시니,
2.2. 대만 시절
2013년 대만프로야구 복귀 이후, 첫 해인 2013년에는 102경기에서 14홈런, 2014년에는 52경기에서 18홈런을 쳤을 정도로[4]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슬러거로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커리어하이는 2015년으로 이해에는 전 경기에 개근하여 타/출/장 .323/.387/.629에 OPS 1.016에 39홈런 110타점을 기록하며 2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하였다.[5]
2016년에는 장즈셴과 린즈성과의 홈런 경쟁 끝에 34홈런 104타점으로 린즈성과 공동 홈런왕에 올랐다. 그러나 타고투저가 끝판왕에 달한 이 시즌에[6] 타/출/장 .286/.368/.617로 작년보다는 스탯이 좀 떨어졌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WBC나 프리미어 12 등에도 국대로 뽑혔으나, 2017년 시즌은 5월 이후로 경기에 나가지도 못하고 있다. 부상 같은게 있는 듯. 현재 타율도 2할 1푼대고, 15경기에서 3홈런을 친 것이 전부라 이 시즌이 커리어로우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9월 23일 복귀했으나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25경기 타율 .204 3홈런 13타점으로 2017 시즌을 마감했다.
2018시즌에도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9월 13일 기준 50경기 출장에 타율 .241, 8홈런에 그치고 있다.
최종성적은 타율 .253 9홈런 38타점.
2017년부터 완전히 플래툰, 대타 수준밖에 안 되며 무너졌지만 2020년에는 규정타석 3할에 25홈런을 치면서 부활했다. 그러나 회광반조로 마지막 힘을 쩌내서 1년간 반짝한 것이었고, 2021년부터는 다시 주전 자리를 잃었다.[7]
1군에서 대타 자리도 제대로 받지 못한 2023년 시즌 막판에는 구단을 통해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고 구단은 은퇴경기를 2차례 열어 공식 작별인사를 했다.
은퇴 후에는 푸방의 2군 타격코치를 맡는다.
3. 플레이 스타일
통산 17.58타석마다 홈런을 쳤을 정도로 파워가 어마어마했지만 선구안과 컨택은 그에 따라주지 못했던 선수. 그래도 대만프로야구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서 통산 볼삼비도 1:2에 통산타율 .290을 기록할 정도로 대만에서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선수는 메이저리그를 노리고 미국에 직행한 선수였고, 덕분에 A+ 정도가 최대임을 보여주며 미국에서는 처참히 실패했다. 수비 역시 대만에서 코너 외야와 지명타자를 오갈 정도로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여담으로 만 28세에 돌아온 복귀 해외파임에도 불구하고 통산 홈런 7위, CPBL로 바로 가지 않고 해외 야구에 직행했다 리턴한 선수 중에서는 통산 1위를 기록하며 뒤늦게 입단한 선수치고는 꽤 상당한 누적기록을 쌓았다. 미국 직행을 노리지 않고 바로 대만에서 입단했으면 린즈셩과 대만 통산 홈런 1위를 다툴수도 있었겠지만 미국에 직행했다가 실패하면서 누적 기록에선 한참 손해를 봤던 선수. 상술했듯이 마이너리그 성적을 보면 딱 대만리그 홈런왕 정도가 한계였기 때문에 해외에 직행해서 꽤나 누적기록 손해를 봤다는 점이 안타까운 선수.
4. 여담
- 4형제 중 맏형으로 4형제가 모두 야구선수이며 프로까지 밟았다. 하지만 모계 성을 따를 시 학비를 감면해주는 원주민 지원 정책 때문에[8] 형제 두 명은 뤄(羅)씨로 성을 바꿔서 얼핏 보면 구별이 안 간다. 사실 전원이 뤄 씨를 쓰다가 가오궈후이와 막내동생 가오궈린(高國麟)만 아버지의 성으로 되돌아온 것. 큰동생인 뤄궈화(羅國華)는 퉁이와 중신에서 그냥 그런 추격조 위주의 투수로 뛰다 2017년 31세로 은퇴하였고, 둘째동생 뤄궈롱(羅國龍)은 외야수로 퉁이에서 뛰었으며 전성기에는 5툴 플레이어로 활약하여 골든글러브 수상과 2017년 WBC 국가대표 승선까지 해냈지만 전성기는 딱 2년에 그치며 그 후에 빠른 하락세를 타다 2022년 33세로 은퇴하였다. 막내인 가오궈린은 형이랑 동일하게 이다-푸방에서 뛰고 있으며 센터 내야수를 보다 외야수로 전업했으며 맏형만큼은 아녀도 두자릿수 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히터이다. 하지만 전성기가 역시 빠르게 끝나 2023년 겨우 30세임에도 불구하고 대타 위주로 나오고 있다. 2024년 현재는 31세인 가오궈린 혼자 현역이다. 결국 커리어만 보면 맏형 가오궈후이가 가장 대성한 셈.[9]
5. 관련 문서
[1]
히토 헤이! 히토 헤이! 안타 취엔레이다 가오궈후이! X2 근데 17시즌 개막 이후 응원가가 바뀐 듯.
[2]
히토는 안타, 취엔레이다는 본루타(홈런)을 말하는 것이다. 대만도 일본처럼 안타라는 단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보다 히토를 즐겨 사용하고 있다.
[3]
KBO 리그는 A+보다는 위라고 봐야 한다.
[4]
참고로 이래놓고 홈런왕 먹었다. 이 해는 대만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홈런 기근이 온 해였다. 그런데 그 전 해인 2013년 홈런왕도 18홈런 친
린이취안이였다.
[5]
39홈런은 대만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 홈런이다.
[6]
4할 타자만 두명이나 있었다.
[7]
그 와중에 2022년에는 뜬금없이 2군에서 홈런왕을 차지했다(…).
[8]
아버지는 객가인이고(한족 외성인이라는 말도 있다.) 어머니만 아미족이다.
[9]
참고로 이들 중 가오궈후이만 해외 도전을 했으며 나머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자국 리그에 도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래프트 지명 순위도 가오궈후이가 2라운드로 제일 높았다. 뤄궈롱은 4라운드, 가오궈린은 8라운드, 뤄궈화는 9라운드로 프로에 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