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커티스 사의 VTOL 연구
커티스-라이트 사는 라이트 형제가 창립한 업체가 합병하여 이어져온 역사적인 항공기 메이커로, 혁신적인 설계에 능했으나 2차 대전 중에 정부와 군이 주 고객인 항공산업계에서 굵직한 계약을 따내지는 못했다. 커티스-라이트 사는 회전익기의 로터 개념을 응용하여 4개의 전후좌우 프로펠러로 양력과 추진력을 모두 얻는 대칭 양력(Radial Lift) 개념을 도입해 군이 요구하는 수직이착륙기를 개발하고자 시도했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VTOL기라면 저속에서도 날개의 크기에 영향을 받지 않고 이착륙에 필요한 조건에 유연하게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에 군용 뿐만 아니라 민수용까지 획기적인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개발되었다.한때 북미 항공기 시장을 쥐고 흔들던 커티스(Curtiss-Wright) 사에서 주도하여 개발한 틸트 프롭(Tilt Prop) 형태의 수직 이착륙 4인승 실험기 커티스-라이트 X-19(Curtiss-Wright X-19)는 사내에서는 M-200이라고 불렀다. 이 VTOL기는 개발진들이 앞서 실험해 보았던 커티스 X-100으로 얻은 틸트 프롭기 실험 자료를 바탕으로 많은 부분을 보완했고, 2개의 로터를 이용하던 설계를 4개의 프롭 로터(Prop Rotor)로 개량하였다. 그리고 작지만 수평 비행을 할 때 양력을 보태줄 스터브 윙이 있었다.
2. 기본 구조와 비행 원리
C-130 같은 다발기나, 일반적인 프로펠러 항공기도 모두 프로펠러는 비행 방향의 수직으로 정렬되어있다. 하지만 X-19는 수직으로 프롭 로터를 세워서 이륙한 다음 앞으로 천천히 숙여서 전진을 하게 된다. 프롭 로터의 회전면적은 헬리콥터의 일반적인 로터보다 상대적으로 적어서 양력을 만들어주는 면적이 작다. 그 대신에 대부분의 속도 영역에서 양력을 크게 생성하기 위해 X-19는 프로펠러 블레이드에 뒤틀림 각도(피치각)를 크게 주었다. 비스듬하게 숙여진 프롭 로터의 추력중 일부는 양력이 되고, 일부는 전진하는 추력이 된다.처음으로 만들어진 프롭 로터를 채용한 대칭 양력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먼저 X-100이라는 실험기를 시제기로 만들어 개념을 테스트했었다. X-100을 통해 성공할 자신감이 붙은 개발진들은 좀 더 크기를 키운 M-200을 자사 비용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처음에 개발 스탭들은 2대의 시제기를 만들기 원했지만, 커티스 경영진들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추가 개발을 일단 중지시킨 다음, 현재까지 개발된 자료를 육해공군이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던 Tri-Service VTOL 연구소로 보내 자신들의 성과를 구매해 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이 연구소는 수직이착륙 실험기로 XC-142와 X-22를 개발하고 있었지만 성공에 대한 확신은 없던 상태였다.
3. 군에 판매
먼저 미 공군 심사단이 커티스-라이트 M-200의 도면을 검토하고는 기체를 구매할 것을 결정하였다. 당시 2대의 원형기 제작은 각각 55%와 35%정도 완성되어 있었고, 조립되지 않은 많은 부품까지 고려한다면 상당히 제작이 진행되어 있었다. 미 공군은 이 기체의 명칭을 새롭게 X-19로 지정했다.처음에 공군이 X-19을 구입한 주된 목적은 임무 성능을 충족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 뿐이었다. 설계상 제시된 성능으로는 전천후 비행 능력을 갖추고 항속거리 1,700 Km에 최대속도 740 Km/h, 순항고도는 4,880 m였다. 무엇보다 이 실험기는 당시 기술로 충분히 제작이 가능한 현실적인 설게였던 것이 더욱 공군의 구미를 당기게 한 것이다.
길이 6.1 m의 작은 날개가 동체 전방에 붙고, 길이 6.4 m의 후방 날개가 붙은 이 비행기는 4장의 작은 주날개를 가진 비행체였다. 물론 계획의 성패를 쥔 프롭 로터는 4개의 날개 끝에 설치되었다. 각각의 프롭 로터는 기어박스가 내장된 나셀에 연결되었고, 나셀은 조종사가 전진이나 호버링 비행을 조작하면 그에 따라 양력 각도를 바꿀 수 있다. 작은 스터브 윙에는 전진 비행에 사용할 조종면만이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이들 날개는 프로펠러에서 발생하는 추력과 후류를 방해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약 7~9%의 추력 손실을 감당해야만 했다. 2개의 터보샤프트 엔진은 동체 후방에 장착되고, 샤프트를 통해 4개의 프롭 로터를 구동시켰다. 대칭 양력 개념을 최적화하기 위해 프롭 로터의 블레이드 크기는 직경 4 m였는데, 이 크기와 빠른 회전 속도 때문에 블레이드 끝의 회전 속도는 순항시에는 250 m/sec에 경우에 따라서는 거의 음속에 달했다.
4. 개량인가 개악인가
3군이 합동해 운영하는 Tri-Service Program은 커티스-라이트 M-200을 수령하여 X-19로 바꾸면서 공군측의 강력한 주장으로 사출좌석을 추가했고, 미 육군의 요구에 따라 4인승을 6인승으로 개조하면서 길이는 13.5 m로 길어지고 더 무거워졌다. 또한 계기는 모두 군용으로 대체되고, 공중 급유가 가능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급유용 프로브도 추가로 장착되었는데, 이러면서 점점 더 북잡해지고 무거워지고 있었지만, 동력 계통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조종사는 수직으로 이륙하여 호버링 상태에서 프롭 로터 나셀을 전방으로 숙이게 되는데, 이때 파워를 점진적으로 증가시켜야만 한다. 양력만 담당하던 엔진 동력이 이제는 추력과 양력 모두에 사용되어야 하므로 고도를 잃지 않고 전진 비행하려면 추력을 더욱 높여야만 하는 것이다.첫 기체의 시험비행은 1963년 6월 23일에 커티스-라이트 사에서 X-100의 비행을 책임졌던 경험이 있는 테스트 파일럿인 빌 퍼릭(Bill Furlich)에 의해 커티스 본사의 시험장에서 시도되었다. 이때 육해공군의 시험비행 조종사들이 동승하였고, 이후부터는 주로 육군이 시험비행을 했다. 시험 결과 조종사들의 평가는 역시 기체 조종이 매우 어렵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당시에는 FBW나 컴퓨터가 조종을 보조해주는 기술이 전혀 없었으므로 수직에서 수평으로 그리고 다시 수직으로 전환하면서 시시각각 바뀌는 기체의 균형을 잡는 조작을 사람이 제때에 해내기에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렇지만 당시의 최신 기술들이 총동원되어 기계식 안전장치들이 장착되었다.
5. 서광이 비치다
1964년 12월과 1965년 1월의 프롭 로터 손상 사고로 인해 비행이 한동안 중지되었다가 8월에 재개된 비행에서는 공군이 투입되었다. 공군은 몇 회의 시험비행을 해보고선 기체의 문제점을 찾아냈다. 각 날개의 조종면들이 한번 움직인 다음에는 제자리로 정확히 돌아오지 않는 오작동을 확인한 것이다. 이런 결점을 발견하지 못한 채 너무 프롭 로터의 성능만으로 비행을 제어하려 했던 데다 이처럼 조종 계통은 등한시했던 탓에 문제를 밝혀내지 못했던 것이다. 공군은 조종 계통의 작동에 필요한 유압을 높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재차 시험해보니 안정성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6. 추락사고와 개발 중지
이렇게 대규모 개조가 이루어진 후 1965년 8월 25일부터 성능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기어박스의 고장으로 이륙 후 7분 만에 프롭 로터가 떨어져나가고 조종사는 즉각 사출하였으며, 기체는 추락하면서 늪지대에 충돌해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부서지고 말았다. 공군의 주도로 커티스 공장에서 거의 완성된 2호기를 인수하여 연구를 속개하려 했으나, 커티스 사가 재계약에 실패하면서 공군은 1965년 12월에 X-19의 공식적인 연구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결국 2호기는 비행도 하지 못하고 분해되어 버렸다.이후 대칭 양력에 관한 연구는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좀 더 보완된 효율적인 덕트 타입(Duct Type)의 추력 발생 장치를 선호하게 되면서 X-22로 발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