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가톨릭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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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그리스 가톨릭
Russian Greek Catholic Church | Российская греко-католическая церковь[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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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무염시태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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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c224> 교황 | 프란치스코 | |
대주교 | 요제프 베르트[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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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어 사용 신도들을 대상으로 비잔틴 예법을 준수하되 교황 수위권을 인정하는 동방 가톨릭의 일파. 오늘날 기준으로 사실상 사멸한 교회이다.[3]2. 역사
폴란드 분할 이후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신도들이 러시아 제국, 합스부르크 제국의 신민으로 흡수되면서 생긴 교회 명칭이다. 자세한 기원이나 역사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문서 참조.원래는 라틴어로 러시아를 원래 루테니아라고 부르고, 동유럽의 동방 가톨릭 신도들은 우니아트 교회 신도라고 부르곤 했다. 참조 그러나 근대 오스트리아 제국 시대 우크라이나어로 예배를 보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회가 따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면서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을 별개의 교회로 구분하기 시작했으며, 결정적으로 슬로바키아 등등 지역의 루신인들의 교회를 루테니아 그리스 가톨릭 교회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러시아 내 그리스 가톨릭 교구를 별개의 명칭으로 부를 필요가 생겼다. 이러한 과정에서 러시아 내 그리스 가톨릭 신도들이 극소수임에도 불구하고 별개의 러시아 그리스 가톨릭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
러시아 그리스 가톨릭 교구는 러시아 본토에서 실질적으로 운영된 역사가 없다. 1917년 2월 혁명 이후 러시아 그리스 가톨릭 교구가 들어서 몇 달 동안 유지되었으나 10월 혁명 이후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그리스 가톨릭 교구가 실질적으로 운영되었던 곳은 하얼빈을 중심으로 한 러시아계 중국인 사회였다.
러시아 혁명 직후 러시아 제국에서 하얼빈으로 망명했던 사람들 중에는 러시아인만 있던 것이 아니라 독일계 러시아인, 폴란드계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유대인 등등 다양했다. 그야말로 러시아 제국 각지의 난민들이 하얼빈으로 몰려들었던 셈이었고 이들 중에는 수십여 명 규모의 동방 가톨릭 교회 신도들도 있었다. 이들을 중심으로 1928년부로 독자적인 러시아 가톨릭 하얼빈 대리교구(Apostolic Exarchate)가 들어섰다. 하얼빈시 내 동방 가톨릭 신도 수는 40여 명 정도의 규모였으나, 명목상 해당 교구는 베이징과 상하이 내 동방 가톨릭 신도들까지 관할하는 자뭇 큰 규모였다. 교황청에서는 벨라루스 그리스 가톨릭 교회 사제를 주교로 파견하였으나, 주교들이 하얼빈으로 이동 중 NKVD에게 붙잡혀 처형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하얼빈 대주교가 폴란드 제2공화국 동부의 벨라루스 지역에 머무르면서 사무를 처리해야 했다.
다소 엉성하게나마 유지되던 러시아 그리스 가톨릭 하얼빈 대교구는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면서 폴란드를 침공한 소련군이 벨라루스 가톨릭 주교를 납치해서 고문 살해하고, 하얼빈의 러시아-우크라이나인 공동체가 일제의 박해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사멸하게 되었다. 1952년 이후 러시아 가톨릭 하얼빈 대주교는 더이상 임명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