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29 02:28:10

Ro.51

IMAM Ro.51

1. 제원2. 요약3. 설계4. 개발과 개량5. 수상기로 개조


1. 제원

형식 : 단발 단좌 전투기
개발 : IMAM
설계 : 지오반니 갈라소
초도비행 : 1937년
승무원 : 1명
전장 / 전폭 / 전고 : 7.46 m / 9.78 m / 2.71 m
익면적 : 16.40 m²
중량 : 1,663 ~ 2,092 kg
동력 : 피아트 A.74 R.C.38 공랭 엔진 (828 hp) 1기
최대속도 : 489 km/h
순항속도 : 444 km/h
항승고도 : 8,200 m
항속거리 : 1,200 km
상승류 : 6,000 m 까지 7분
무장 : 12.7mm 브레다-SAFAT 중기관총 2정

2. 요약

전간기 막바지인 1937년에 첫 비행에 성공을 거둔 이탈리아의 시제 전투기이다. 이 전투기는 1936년에 이탈리아 공군이 차기 전투기 프로젝트를 발표하자 국내의 메이저급 항공기 제작사 거의 모두가 참가한 가운데, 이맘(IMAM : Industrie Meccaniche e Aeronautiche Meridionali) 사에서 개발되고 원형기가 제작된 단좌 전투기였다.

3. 설계

이맘의 수석 설계자인 지오반니 갈라소(Giovanni Galasso : 1897~1984)가 개발을 이끈 Ro.51의 컨셉은 간단명료했다. 대량 생산에 용이하도록 동체 프레임과 날개의 지주인 스파만 크로몰리 강관을 용접해 짠 다음, 나머지 프레임과 외피는 전부 나무와 합판으로 만들고 고정식 랜딩기어를 갖추고 있었다. 에일러론이나 러더 같은 가동부는 캔버스천을 덮어서 중량을 줄이고 있던 것은 전간기 항공기에서 가장 흔하게 쓰인 제작 공법이었고, 당대의 기술자와 직공들의 손에도 익은 방식이어서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수량의 전투기를 조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돋보였다.

엔진은 그 무렵 이탈리아 공군성이 차세대 전투기 표준 제품으로 지정한 출력 840마력의 피아트 A.74 R.C.38 공랭식 성형 엔진을 장착했는데, 금속제 3엽 가변피치 프로펠러를 구동시켜 추진력을 얻었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은 낮추도록 고정식 랜딩기어를 채용하고 있었으나, 당시 전투기의 표준 구조로 자리잡아가던 저익 단엽기로 설계된 점은 새로운 설계 트렌드를 따르고 있어 과거와 현재를 조화시켰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런 재래식 구조로는 항력을 억제하는데 한계가 커서 Ro.51의 최대속도는 467 km/h에 그치고 있어 그 무렵 진화의 정점에 달한 복엽 전투기보다 그다지 빠르지 않았고, 저속에서의 기동성은 오히려 뒤처지고 있었다. 기수에는 카울링 안에 2자루의 12.7mm 브레다-SAFAT 중기관총을 수납하고 있었으며, 이 무기에는 동조기어가 딸려 있었다.

4. 개발과 개량

개발 주임인 갈라소 또한 Ro.51의 어정쩡한 구조로는 속도를 올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는 인입식 랜딩기어 같은 신기술을 도입하지 않고 기체의 사이즈를 최대한 작고 중량을 줄이는 것에 촛점을 맞추었다. 원형 1호기의 중량은 1.6톤이 넘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으며 기체 표면은 가능한 동출물이 없게끔 매끈하게 마감하고, 꼬리날개도 거의 한계까지 면적을 줄여 작게 만들어서 항력 절감에 집중했다. 프로토타입은 그런대로 잘 날았지만 우려했던대로 방향 안정성에 문제가 있어서 기총 플랫폼으로는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이 원형기는 일단 공군 평가에 그대로 제출되어 귀도니아 실험비행센터(Centro Sperimentale Aeronautico di Guidonia)에서 1938년 6월까지 테스트를 받았지만, 역시나 심사단은 안정성 문제를 꼬집어냈고, 인입식 착륙장치를 쓴 마키 MC. 200 사에타와 피아트 G.50 프레시아에게 성능면에서 밀리고 있었다. 이맘 공장으로 되돌려진 원형기는 갈라소에 의해 새롭게 재설계된 주익과 미익, 그리고 여태까지 미루고 있던 인인식 랜딩기어를 붙이도록 수정되었지만, 이런 대규모 개조 작업을 하느라 인도 시기를 놓쳐 주문을 받지 못했다.

5. 수상기로 개조

시제 2호기인 Ro.51/1은 Ro.44처럼 동체 아래에 큼지막한 플로트를 달고 좌우의 날개 아래에 보조 플로트를 붙여 수상 전투기로 개조되었다. 항력이 훨씬 더 커지고 무거워진 2호기는 430 km/h로 속도가 더 느려졌으나, 플로트에 증설된 연료탱크 덕분에 항속거리는 1,200 km로 늘어났다. 불행하게도 2호기는 브라치아노 호수에 있는 비냐 디 발레 (Vinna di Valle) 실험센터로 옮겨져 테스트 도중에 갑자기 한쪽 날개가 바다에 닿으면서 곧바로 뒤집히면서 가라앉아버렸다. 프로토타입을 잃고 테스트 파일럿 알도 리가보(Aldo Ligabò)의 사망한 참사는 개발 계획이 종지부를 찍게 만들기에 충분한 타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