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10 00:36:58

Ki-12

파일:nakajima_ki-12.jpg
나카지마 키-12 (中島 キ12)

1. 제원2. 중전투기에 도전한 일본3. 나카지마의 도전4. 압도적인 속력

1. 제원

형식 : 단발 단좌 시제 전투기
개발 : 나카지마 비행기
초도비행 :
승무원 : 1명
전장 / 전폭 / 전고 : 8.30 m / 11.00 m / 3.30 m
익면적 : 17.0 m2
중량 : 1,400 kg ~ 1,900 kg
동력 : 이스파노-수이자 12Xcrs 수랭 V형 12기통 엔진 (690 hp) 1기
최대속도 : 480 km/h
항속거리 : 800 km
무장 : 7.7mm 기관총 2정 / 20mm 기관포 1문 (모터캐논)

2. 중전투기에 도전한 일본

1930년대 중반부터 세계 각국에서 저익 단엽 전투기가 등장해 항공업계와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처음에 이런 시도는 실험적인 것으로 여겨졌으나 곧 얼마 안가 거대한 설계 조류로 바뀌었고, 그 기세는 1933년 미국 보잉 P-26에 이어 1935년에는 프랑스에서는 드보아틴 D.500 시리즈, 그리고 1938년에는 독일 하인켈 He 112가 등장하게 만들었다.

항공 선진국들의 동태 파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일본도 이런 영향을 받아들이게 되는데, 가장 먼저 흥미를 느낀 업체는 미츠비시(三菱)였다. 일본 육군항공대는 1935년 9월에 프랑스로부터 1대의 드보아틴 D.510J을 수입해 정밀한 분석에 나섰고, 그 중에서도 엔진 실린더 사이에 대구경 기관포를 설치하는 모터캐논이라는 신개념의 무장에 주목을 하게 된다. 이 무기는 위력이 크면서 화기가 기체의 중심선에 위치하게 되어 조준선과 일치되어 명중률이 높았고, 동조기어 같은 복잡한 장치도 필요없는 등 장점만 있는 신병기로 여겨졌다.

3. 나카지마의 도전

경쟁사인 미츠비시의 연구에 관한 대략적인 정보를 손에 넣은 라이벌 기업 나카지마 비행기(中島飛行機)는 당시 공랭 엔진을 갖춘 저익 단엽 전투기인 키-11(キ-11)의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채용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다. 이에 사장 나카지마 치쿠헤이가 프랑스에서 드보아틴(Dewoitine) 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로제 로베르(Roger Robert)와 쟝 베죠(Jean Beziaud)라는 두 엔지니어를 초빙해와 그들로부터 기술 협력을 얻어 1930년에 입사해서 95식 함상전투기(九五式艦上戦闘機)를 개발한 경험이 있던 모리 시게노부(森重信) 기사를 책임자로 임명해 수랭 엔진을 장착하고 모터캐논을 탑재한 신형 전투기 개발에 나서 이듬해인 1936년 10월에 시제기인 키-12(キ-12)를 완성시켰다.
엔진도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제품으로, D.510의 것과 같은 이스파노-수이자 12Xcrs 수랭 V형 12기통 엔진을 채용했다. 이 기체는 나카지마제 항공기로서는 처음으로 개폐식 착륙장치를 채용했으며, 전금속제 응력 외피 구조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진보적인 시도에 힘입어 꽤 진보적이고 스마트한 중전투기가 되었다. 물론, 날개를 지탱하는 케이블 따위도 없어졌음은 당연한 일이다. 주날개는 포물선을 그리는 테이퍼형으로 분할식 플랩을 채용했다. 냉각장치(래디에이터)는 이스파노-수이자 엔진의 앞에 장착하고 프로펠러 축에서 20mm 모터캐논의 포신이 엿보이고 있다. 랜딩기어는 유압으로 움직이며 꼬리 바퀴 구실을 하는 꼬리 썰매도 인입식으로 만들어졌다.

4. 압도적인 속력

이처럼 참신하고 첨단 설계를 다방면으로 도입한 키-12는 육군항공대에 넘겨져 항공심사부를 통하여 다양한 테스트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속도 성능은 그때까지 일본제 전투기를 압도하는 수준을 보여줬지만, 그 무렵 중시되던 급선회 같은 기동성이 약간 떨어졌다. 키-12의 기동성은 전부 기관총으로만 무장된 미츠비시 키-18(キ-18)[1]과 키-33(キ-33)[2], 가와사키 키-28(キ-28)[3], 심지어는 나카지마 자신들의 재래식 기종인 키-27(キ-27)[4] 같은 경량 전투기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했다. 또한 수랭 12기통 엔진은 구조가 복잡하고 제작이 어려워 국산 실용화에 관한 전망이 서지 않고 있어서 이 신형기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결국 키-12는 진보된 설계에도 불구하고 프로토타입 1대의 제작으로 끝나버렸다 .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후의 항공 전사를 통해 증명된 일격 이탈 전술이 중심이 되는 중전투기의 효용성과 용병 사상이 바로 이 키-12가 군에 채용되었다면 일찌감치 깨우쳤을 것이라고 평가하지만, 이미 일본 육군은 공랭 전투기를 주력으로 이용하기로 가닥을 잡은 이상 죽은 자식 헤아리기였다.




[1] 기관총 2정에 444 km/h [2] 기관총 2정에 475 km/h [3] 기관총 2정에 485 km/h [4] 97식 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