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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기오날리가 참가 구단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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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리가 참가 구단 |
NOFV-오버리가 참가 구단 · |
1. FC 로코모티베 라이프치히 | |
1. FC Lokomotive Leipzig | |
<colbgcolor=#fc0><colcolor=#004899> 정식 명칭 | 1. Fußballclub Lokomotive Leipzig e.V. |
별칭 | Loksche |
창단 | 1893년 11월 11일 ([age(1893-11-11)]주년)[1][2] |
소속 리그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 (Regionalliga Nordost) |
연고지 |
작센주
라이프치히-프롭스타이다 (Leipzig-Probstheida, Sachsen) |
홈구장 |
브루노 플라헤 슈타디온 (Bruno-Plache-Stadion) (12,500명 수용) |
라이벌 |
BSG 헤미 라이프치히 -
라이프치히 더비 RB 라이프치히[3] LFV 작센 라이프치히 |
회장 | 토마스 뢰베 (Thomas Löwe) |
감독 | 요헨 자이츠 (Jochen Seitz) |
역대 한국인 선수 |
공은수 (2022~2024) 강민기 (2024~) |
공식 웹사이트 | |
우승 기록 | |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 (4부) (1회) |
2019-20 |
오버리가 노르트오스트 쥐트 (5부) (1회) |
2015-16 |
DFB-포칼 (1회) |
1935-36 |
FDGB-포칼 (4회) |
1975-76, 1980-81, 1985-86, 1986-87 |
★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3회) |
1902-03, 1905-06, 1912-13 |
VMBV 축구 선수권 대회[4] (11회 / 최다 우승) |
1902-03, 1903-04, 1905-06, 1906-07, 1909-10, 1910-11, 1912-13, 1917-18, 1919-20, 1924-25 1926-27 |
클럽기록 | |
최다 출장 | 마티아스 리버스 (Matthias Liebers) - 385경기 (1977-1996 / 2004-2005) |
최다 득점 | 디터 퀸 (Dieter Kühn) - 120골 (1974-19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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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FC 로코모티베 라이프치히는 1893년에 창단된 독일 작센 주의 라이프치히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이다. 현재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에 속해 있다.줄여서 Lok. 라이프치히라고도 부르며 독일 챔피언십 초대 우승팀이자, 동독시절 리그의 강호중 한팀으로 꼽혔다.
현재의 팀은 2003년 12월 10일 파산된 VfB 라이프치히를 대신해 팬들에 의해 창단된 클럽이었으나 2021년 10월 파산한 상태로 남아있던 VfB 라이프치히의 부채를 모두 대신 청산하며 합병처리했고, 정식으로 1893년부터의 역사를 계승한다.
2. 역사
~1945 |
VfB 라이프치히 로고 |
1845년 창단된 라이프치히 체육클럽 알게마이네 TV에서 1896년 축구부에서 VfB 라이프치히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고. 1898년에 1893년에 창단된 SC 슈포르트브뤼더 라이프치히와 합병했다.[5] 이후 VfB 슈포르트브뤼더 1893 라이프치히라는 이름으로 독일축구협회의 창단 멤버로 참가했고, 1900년 다시 슈포르트브뤼더 라이프치히와 분리되며 VfB 라이프치히라는 이름으로 돌아왔다.
1903년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전에서 DFC 프라하에 7대 2로 우승하며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 초대 우승팀이 되었다. 그러나 다음해엔 1라운드 경기를 치르러 갈 돈이 부족해 경쟁에서 제외되기도 했다.[6] 하지만 중부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선 1902-03, 1903-04, 1905-06, 1906-07, 1909-10, 1910-11, 1912-13, 1917-18, 1919-20, 1924-25, 1926-27 열한차례 우승하며 1900~20년대까지 독일의 최강자 자리를 가지고 있었고, 최종 대회인 독일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1906년과 1913년에 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시절에는 2부리그로 강등되기도 했다.
2.1. 동독 시절
SC 로타치온 라이프치히 로고 | SC 라이프치히 로고 |
전쟁이 끝난뒤 다른팀들이 그랬듯 잠시 해산됐다가 1946년 VfB 라이프치히의 선수들이 모여 SG 프롭스타이다 라는 이름의 팀을 창단했다. 이후 SC 로타치온 라이프치히라는 팀과 합병하여 DDR 오버리가로 승격해 중위권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다 1964년 축구수준을 높인다는 이유로 각 도시의 여러 클럽들이 합병되기 시작했고, 라이프치히 시의 대표 클럽으로 선정되는데 성공, 다른 라이프치히 클럽들과 합병되어 SC 라이프치히라는 이름으로 재창단했다. 창단직후에 오히려 생각보다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라이프치히의 대표격으로 합병 및 재창단되었으나 같은 라이프치히를 연고로 하지만 합병되지 않은 BSG 헤미 라이프치히에게 우승을 빼앗겼다.
이후 1966년 1월 20일 동독 국가 철도기관인 도이체 라이히스반(Deutsche Reichsbahn)과 협력을 시작하며 구단명에 독일어로 기차를 뜻하는 로코모티베를 집어넣어 1. FC 로코모티베 라이프치히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1968-69시즌 잠시 강등되기도 했지만 이때부터 클럽의 전성기는 시작되었다. 후원에 힘입어 계속해서 상위권으로 시즌을 마쳤으나 동독의 다른 큰 권력의 후원을 받던 SG 디나모 드레스덴, BFC 디나모 등에게 밀려 리가우승은 없었지만 FDGB-포칼에서는 1976, 1981, 1986, 1987년에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1966년에 UEFA 인터토토컵에서 우승하여 UEFA 컵위너스컵에까지 출전했으나 요한 크루이프의 아약스에게 무너지고 말았다.
동독 시절 로코모티베 라이프치히는 강력한 역습 축구로 유명했고, 기복이 심한 시즌별 팀의 순위 또한 유명했다. 리가에서 좋은 성적으로 유럽대항전에 진출해 유럽대항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면 그다음 시즌 리가에서 성적이 안좋은 식.
2.2. 통일 이후
1991~2004 |
VfB 라이프치히 로고 |
1990년 통일 뒤 리그가 합병되며 분데스리가 참가권을 쥐고 싸워 리그에선 7위를 거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2. 분데스리가에 참가하게 된다. 이 시기동안 BSG 헤미 라이프치히와의 합병논의도 오갔으나 양팀의 서포터즈의 격렬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최종적으로 1991년 VfB 라이프치히라는 이름으로 재창단했다.
1991-92시즌 당시 노르트, 쥐트 각각 12클럽이 참가해 진행되던 2. 분데스리가에서 쥐트에 소속되었다. 지난시즌까지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던 다미안 할라타와 로날트 크레어 두 선수의 부상이 겹치며 전반기동안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하는 부진을 겪었다. 다행히 겨울 이적시장에서 당시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이던 디디에 식스를 반년간 영입하는데 성공, 강등권에서 겨우 탈출했다.
1992-93시즌 시즌 시작전부터 구단 재정문제로 라이센스를 발급받지 못할뻔하며 휘청였다. 다행히 시즌시작 직전에 발급에 성공했다. 이번시즌부터 두개 지구로 나눠져있던 2. 분데스리가가 한개의 지구로 통합, 총 46라운드의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시즌 시작전 디터 헤킹 등의 선수를 영입했고, 전반기를 승격권에서 마무리하는 돌풍을 보여줬다. 전반기가 끝나고 전반기에만 15골을 넣은 주전 골잡이 베른트 홉슈를 SV 베르더 브레멘에 빼앗겼고, 한스위르겐 준더만 감독이 같은 리가의 SV 발트호프 만하임으로 떠났다. 이러한 빈 구멍들을 겨울이적시장동안에 메꿔야 했는데, 프랭클린 비텡쿠르[7]의 영입으로 홉슈의 빈자리를 채웠고, 감독직엔 전직 동독 대표팀 감독 베른트 슈탕게를 선임했다. 시즌 막판까지 피튀기는 경쟁 끝에 3위로 분데스리가 승격에 성공했다. 이는 동독출신 클럽이 최초로 승강제를 통해 분데스리가로 승격한 것이다.
하지만 분데스리가에서 맞은 첫 시즌은 순탄치 않았다. 선수들이 또한번 서독 클럽으로 대거 이적한것. 또한 당시 라이프치히 시민들이 가장 좋아했던 클럽은 로코모티베가 아닌 FC 작센 라이프치히였기에 관중수 또한 적었다. 이 모든 문제가 겹치며 한시즌동안 겨우 3승을 거두는 최악의 성적으로 강등되었다.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되자 클럽은 막대한 돈을 투자해 1부리그로 다시 승격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투자에 비해 순위는 좋지 않았고, 계속되는 감독 교체와 시즌마다 영입되는 여러 선수들의 불협화음이 더해지며 강등 4시즌만에 이번엔 3부리그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로 강등되고 만다. 레기오날리가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끊어지지 않았다. 강등 두시즌만에 한계단 더 내려가게 된것. 그리고 이제는 클럽의 부채가 돌이킬수 없을 만큼 쌓여버렸다. 2003년부터 파산절차가 시작되며 리가에서 퇴출, 거의 해체되었다.
2003년 말, 한창 파산절차가 진행중일때 팬들에 의해 전성기인 동독시절의 이름을 딴 1. FC 로코모티베 라이프치히가 창단되었다. 창단후 FC 작센 라이프치히와의 합병 논의가 오갔으나 두팀 팬들사이의 완강한 저항으로 무상되었다. 창단된 클럽은 당시 라이프치히의 최하위 리그인 11부리그에서 시작해야했다. 100명의 팬들이 로코모티베의 선수가 되기를 자원했으며, 당시 7부리그의 SSV 52 토르가우와 합병에 성공, 단번에 7부리그까지 뛰어올랐다. 11부리그에서의 성적은 316골 13실점이는 엄청난 득실차를 보여주며 전승 우승.[8] 최하위리그에서 재창단된 로코모티베는 동독시절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사람들이 다시한번 경기장을 찾게 만들었다. 최하위리그 경기에 만명이 넘는 관중이 보러오기도 했다.
계속해서 승격을 이어가다 2008-09시즌 드디어 클럽이 파산당시에 참가했던 리가인 NOFV-오버리가로 승격에 성공, 2011-12시즌에는 레기오날리가 노르트오스트 승격에 성공했다. 2013-14시즌 강등되었지만 두시즌만에 다시 승격했다. 2019-20시즌에는 레기오날리가에서도 우승했으나 SC 페를에게 승강플레이오프에서 밀렸다.
2021년 10월 VfB 라이프치히의 부채를 모두 청산하고 합병되며 정식으로 역사를 계승하는 클럽이 되었다.
2.3. 요약
- 1부/ 분데스리가: 1993-1994 (1시즌)
3. 최근 시즌
3.1. 2018-19 시즌
14승 8무 12패로 6위를 기록했다.3.2. 2019-20 시즌
15라운드 기준 9승 5무 1패로 2위를 기록중이다 현재 1위인 VSG 알트글리니케와 승점차가 2점밖에 나지 않지만 3위인 FC 에네르기 코트부스와도 승점차가 2점밖에 나지 않는다.16라운드 알트글리니케와 2대2로 비겼고 17라운드 헤르타 BSC II전 승리했다. 하지만 코트부스가 알트글리니케에게 이기며 1위로 올라섰다.
현재 알트글리니케와 코트부스와 승점이 똑같으나 득실차로 밀려 3위를 기록 중이다. 이후 알트글리니케가 미끄러지며 승점이 동률이나 경기를 1경기 덜 치른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럽을 덮치며 리그가 불투명해졌다.
2020년 6월 6일 NOFV(독일 북동부 축구 협회)에서 시즌을 종료하고 로코모티베를 우승팀으로 지목했다. # 이제 3. 리가 승격을 위해선 레기오날리가 베스트 우승팀과의 플레이오프만 남았다. 플레이오프에선 SC 페를을 만나게 된다. 1차전은 홈에서 2대2 무승부를 거뒀고, 2차전은 쉬코아레나에서 1대1로 비기며 원정다득점에 의거, 승격에 실패했다.
3.3. 2020-21 시즌
지난 시즌에 비해 좋지 못한 시작을 끊었다. 7라운드가 끝난 현재 3승 3무 1패로 7위에 올라있다.COVID-19로 인해 시즌이 조기종료 되었다. 최종 순위는 5승 4무 3패로 6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작센포칼 4강에서 3. 리가 1위 SG 디나모 드레스덴에게 0대4 승리를 거뒀다.
3.4. 2021-22 시즌
2003년 재창단 이후 처음으로 DFB-포칼에 참가했다. 하지만 1라운드에서 분데스리가의 바이어 04 레버쿠젠을 만나 0대3으로 패했다.개막전에 BFC 디나모를 상대로 4:1 완패를 당하게 되며 시즌 출발이 불안해질 위기에 처해졌다. 다행히 2라운드에는 FSV 옵티크 라테노를 상대로 3:0 대승을 거뒀다.
한때 중하위권까지 쳐졌으나 5연승을 거두며 어느새 우승경쟁권으로 치고 올라왔다.
3.5. 2022-23 시즌
이번시즌 역시 승격에는 실패했다.시즌이 끝나고 신임회장 토르스텐 크라흐트(Torsten Kracht)가 선임되었다. 목표는 레기오날리가 탈출 및 경기장 리노베이션.
3.6. 2023-24 시즌
DFB-포칼 1라운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홈으로 불러들여 0대7 대패를 당하는 과정에서 홍염을 터뜨리고, 조명탄을 발사해 경기가 15분가량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25,000유로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 거기다가 17라운드 FSV 츠비카우 원정에서 극장골을 먹으며 패배한 이후 팬들이 폭동을 일으켜 20,000유로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입혔다.지난 시즌까지는 그래도 중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이번시즌에는 중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다. 거기다가 가뜩이나 잘 풀리지 않는 시즌에 팬들의 트롤짓으로 인해 구단에 금전적 부담까지 더해져버렸다. 2024년 2월에는 선임 반년만에 토르스텐 크라흐트 회장이 사임했다. 그리고 감독 알메딘 치바 역시 사임했다.
시즌은 10위로 마무리했다.
3.7. 2024-25 시즌
이번시즌은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시즌 전반기를 1위로 마무리했다 2위 할레셔와 승점차는 9점으로 안정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다. 다만 2020년에도 리가 우승을 달성해놓고 플레이오프에서 떨어진 전적이 있기에 마냥 안심할수는 없는 노릇.4. 울트라스
이 팀 역시 구 동독출신 팀 답게 네오나치로 이루어진 서포터즈들이 존재하며, 또한 서포터즈들이 강경하다. 심지어는 나치식 경례로 사진을 찍은 2명의 코치를 해고하는 일도 발생했다. 물론 클럽 회장이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인터뷰를 했지만...2023-24시즌 DFB-포칼 1라운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전 큰 점수차로 경기가 벌어지자 홍염을 터뜨리고, 조명탄을 발사해 경기를 지연시키고, FSV 츠비카우 원정에서 극장골을 먹으며 패하게 되자 원정구장을 파손하는 등 20,000유로에 달하는 재산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5. 여담
2006-07시즌에 로코모티베처럼 팬들이 창단한 클럽인 FC 유나이티드 오브 맨체스터와 친선경기를 한적이 있다. 이는 재창단 후 처음으로 치러진 국제경기였다.2005년 작센포칼 경기에 로타어 마테우스가 은퇴 4년만에 다시 선수로 뛴적이 있다.
6. 출신 선수
7. 같이보기
1990-91 시즌 참가 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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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6년
1월 20일 - 1. FC 로코모티베 라이프치히로 구단명 변경
1991년 1월 20일 Vfb 라이프치히로 복귀
2003년 12월 10일 재창단 [2] # [3] 마지막 경기는 2013년 10월 12일 작센포칼 3라운드에서 만난 경기이다. RB 라이프치히의 0대2 승리. [4]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 [5] 이때문에 클럽 정식 창단연도를 1893년으로 보고있다. [6] 대회가 시작된 초창기다보니 이렇게 비정상적인 일이 많이 일어났다. [7] 레오나르두 비텡쿠르의 아버지이다. [8] 이때 로타어 마테우스가 팀에 합류해 한경기를 뛰기도 했다.
1991년 1월 20일 Vfb 라이프치히로 복귀
2003년 12월 10일 재창단 [2] # [3] 마지막 경기는 2013년 10월 12일 작센포칼 3라운드에서 만난 경기이다. RB 라이프치히의 0대2 승리. [4] 분데스리가 출범 이전의 리그로 이 리그에서 우승한뒤 다른 지역 리그에서 우승한 팀과 붙는 방식이었다. [5] 이때문에 클럽 정식 창단연도를 1893년으로 보고있다. [6] 대회가 시작된 초창기다보니 이렇게 비정상적인 일이 많이 일어났다. [7] 레오나르두 비텡쿠르의 아버지이다. [8] 이때 로타어 마테우스가 팀에 합류해 한경기를 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