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23:21:43

침투 전술

후티어 전술에서 넘어옴

1. 개요2. 방법3. 실전사례

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의 군사적 전술로써 훗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 무장친위대 전격전의 모태가 되었다. 1차대전 당시 독일 제국군 대장이었던 오스카 폰 후티어의 이름을 붙인 후티어 전술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전술이 최초로 묘사되는 것은 1915년에 출간된 But et conditions d'une action offensive d'ensemble-Goals이다. 최초로 개발하고 사용한 것은 프랑스군이고 이 내용을 담은 문서가 번역되어 독일에 소개되긴 했지만 이것이 독일군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다.

2. 방법

  1. 공세를 가할 참호를 선정해서 가장 약해보이는 곳을 선정한다. 공격 목표는 전 전선이 아니라 반드시 가장 약해 보이는 일점에 집중한다. 그곳을 목표로 공격 개시 2-3시간 동안, 매우 강렬하게 집중적인 포격을 한다.
  2. 1차 포격이 끝나면 야포들을 더 후방으로 보내 포사격을 함과 동시에 돌격대를 출발시킨다.[1]
  3. 돌격대가 포격이 찢어놓은 전선의 틈새로 신속히 침투하여 적의 방어 거점(예를 들어 요새화된 기관총 진지 등)을 고립시키고, 이후 중화기로 무장한 보병이 진격하여 고립된 적의 방어 진지를 무력화시킨다.
  4. 전선이 뚫리면 선발대와 후발대, 기타 예비대는 쉬지 않고 적을 추격하여 압박한다, 잔존 적 부대는 무시하고 후방부대에 인계한다.
  5. 뚫린 적 진지로 최대한 병력을 집중하여 전과를 확대한다. 야포 사거리 밖으로 나갈 때를 대비하여 다량의 박격포 부대 지원을 위해 후속한다.
  6.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하여 적의 약점들이 하나하나 붕괴되었다 싶으면 최종적으로 적의 가장 강한 핵심 방어선을 공격한다.

3. 실전사례

대부분의 참전국들이 쓴 대가를 치른 1914년이 지나가고 나서 실제로 이런 전술을 널리 주 전술로 사용한 독일 제국군은 베르됭 전투 초반에 큰 성공을 거두며, 러시아 제국과의 전투, 그리고 1916년 루마니아 왕국과의 전투에서도 활약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17년 카포레토 전투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을 지원하러 제국군이 파병나간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침투 전술을 아주 잘 써먹어 이탈리아 왕국군을 괴멸시킨다. 그리고 1918년 3월에 전개된 루덴도르프 공세 당시에도 이 전술 덕분에 프랑스군 영국군, 미군을 몰아붙이며 마른 전투 이후 다시금 파리 인근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이론상으로는 기습적인 병력의 집중으로 적의 전선을 붕괴시킨 뒤에, 후퇴하는 적을 맹렬히 추격하여 적의 예비대가 반격할 틈을 주지 않고 적을 섬멸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적의 전선을 돌파한 뒤 전과를 확대하는 데에는 수많은 애로사항이 꽃피었다.일단 이 전술을 몇번 당해본 연합군은 빠르게 대응 교리[2]를 개발하였고, 예비대를 적절히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독일군을 저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독일군의 포격이 짧은 시간동안 이루어진다고 해도, 집중 포격은 땅에 수많은 구덩이를 만들고 도로를 파괴해버려서 후속 병력의 전진과 물자의 보급을 어렵게 만들었다. 실제로 대전 막바지에 독일이 루덴도르프 공세를 퍼부었을 때 비교적 성공적으로 병력을 후퇴시킬 수 있었던 연합군은 공세종말점에 도달한 독일군을 상대로 반격에 나서서 전쟁을 끝낼 수 있었다.
[1] 1918년 당시에는 MP18로 무장한 돌격대 A7V 전차를 선발 공격대로 적극 활용했다. [2] 얇은 방어선을 여러 개 만들어서 적이 들어오며 소모하게 냅둔 뒤, 준비해둔 예비대로 카운터치는 것. 사실 크게 특별할 것 없는 방어전술이지만 돌격대 자체가 병사중에서 고르고 고른 인원을 가혹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낸 부대인 만큼, 독일 입장에서는 (후티어 전술 자체가 돌격대의 심각한 손실이 전제되는 전술이지만)정예부대가 이런 식으로 소모되면 빠르게 충원하는 게 불가능했다. 덕분에 춘계 공세에서도 독일군이 이런 식으로 참호선을 뚫고 진격하자 연합군은 그냥 중요 거점 이외에는 포기하거나 얇은 방어선만 연속해서 배치한 뒤 이후 공세종말점에 근접한 독일군을 카운터치는 방법을 썼고, 이렇게 독일군의 참호 돌파용 정예부대가 큰 피해를 입자 그대로 공세가 돈좌되고 이후 연합군의 반격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