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02:24:31

후지나미 타츠미


파일:Fujinami_Tatsumi.jpg
<[ruby(炎, ruby=ほのう)]の[ruby(飛龍, ruby=ひりゅう)] / Dragon>
[ruby(藤波, ruby=ふじなみ)] [ruby(辰爾, ruby=たつ み)] / Tatsumi Fujinami
파일:후지나미타츠미프로필.webp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DRADITION
<colcolor=#ffffff><colbgcolor=#245C8D> 링네임 후지나미 타츠미 (藤波 辰巳)
후지나미 타츠미 ([ruby(藤波, ruby=ふじなみ)] [ruby(辰爾, ruby=たつ み)])[1]
본명 후지나미 타츠미
[ruby(藤波, ruby=ふじなみ)] [ruby(辰巳, ruby=たつ み)]
생년월일 1953. 12. 28 ([age(1953-12-28)]세)
신장 183cm
체중 105kg
혈액형 O형
출생지
[[일본|]][[틀:국기|]][[틀:국기|]] 오오이타현 쿠니사키시[2]
가족 관계 장남 LEONA (1993년생)[3]
피니시 무브 _ 드래곤 슬리퍼_
_드래곤 수플렉스_[4]
_드래곤 백브레이커_[5]
별명 Dragon
화염의 비룡([ruby(炎, ruby=ほのう)]の[ruby(飛龍), ruby=ひりゅう)]
테마곡 マッチョ・ドラゴン[6]
Rock Me Dragon - 마츠오카 나오야 (1987)[7]
[ruby(超飛龍, ruby=ちょう ひ りゅう)] (1990년대 후반기)
RISING (1990년대 전반기 - )[8]
ドラゴン・スープレックス - JOE[9]
(1978 - 1985; 1987 - 1989; 2001 -)
데뷔 1971년 5월 9일 (17세)
기후현 기후 시민센터
일본[10] 제 13회 월드 리그전
vs 키타자와 모토유키[11]
주요 커리어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6회
IWGP 태그팀 챔피언십 5회[12]
WWF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WWF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F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 1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인터내셔널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제3회 G1 클라이맥스 우승

1. 개요2. 커리어3. 여담4. 둘러보기

1. 개요

"Never give up(ネバーギブアップ)!"
현 드라디션 소속의 프로레슬러.

신일본 프로레슬링 WWF를 넘나들며 세계적인 활약을 펼쳤으며, 드래곤 슬리퍼, 드래곤 스크류, 드래곤 수플렉스 등 "드래곤" 이름이 들어간 여러 프로레슬링 기술들을 만들어낸 혁신자.

2. 커리어

중학교 졸업 후 정비공장에서 일하다 프로레슬러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17세인 1971년에 벳푸 온천에 와있던 동향의 키타자와 모토유키에게 직접 입단을 요청하여 안토니오 이노키를 처음 만났고 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했다. 1972년에 안토니오 이노키가 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축출되고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설립하자 안토니오 이노키를 따라 신일본으로 이적하며 창단 멤버 중 한 명이 되었다.

해외 무사수행 중 1978년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WWWF 세계 주니어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전에서 드래곤 스플렉스로 승리하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주니어 헤비급을 개척함으로써 타이거 마스크가 등장할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후 헤비급으로 전향하여 헐크 호건, 밥 백런드, 초슈 리키, 후지와라 요시아키, 마에다 아키라, 안토니오 이노키 등과의 전설적인 대립을 이어나가 그 다음 세대인 투혼삼총사에게 바톤을 넘겨주었다. 이때 릭 플레어를 이기고 IWGP 헤비웨이트 챔피언 &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서 더블 타이틀 홀더가 되는 기록을 남겼다.

이후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사장으로 근무하였으며, 2006년 6월에 신일본을 탈단한 이후 프로레슬링 단체 드라디션을 운영하고 있다.[13]

간간히 신일본 태그팀 경기에 출전하여 젊은 선수들과 좋은 경기를 펼쳤다. 2022년 5월 1일 레슬링 돈타쿠 2022에서 태그팀 경기매치에도 마찬가지로 참석하려 했으나 코로나가 확진되어 대신에 코시나카 시로가 나온다.

2022년 12월 1일, 드라디션 DRAGON EXPO 1971에서 자신의 데뷔 50주년 기념 흥행 경기 상대로 타나하시 히로시가 선정되었고 드래곤 스크류 및 고 수준의 공중기를 사용하는 등, 노익장의 모습을 보이지만 경기는 타나하시의 하이 플라이 플로우로 패배하였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타나하시의 존경을 받고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1, 2, 3 다앗~ 을 외치는 걸로 흥행을 마쳤다.

2023년 1월 4일 레슬킹덤 17에도 참석하여 스즈키 미노루, 타이거 마스크와 함께 코지마 사토시, 마카베 토우기, 나가타 유지를 상대하는데, 나이 70이 넘는 노장답지 않게 날렵한 드래곤 스크류를 시전하거나 몸을 날리는 등 좋은 활약을 보이지만 경기는 패배하였다. 경기 후 같이 싸운 동료, 상대 선수들의 존경을 받고 그들과 악수하며 퇴장한다.

그 이후에도 여러 단체에 간간히 출연하고 있다.

3. 여담

  • 본인의 아들인 후지나미 레오나도 LEONA라는 링네임으로 활약하고 있다.
  • 1978년에 한국에 방한하여 장충체육관에서 경기를 가진 적이 있다.
  • 파일:너히라타지.jpg
  • 본의 아니게 케이페이브를 지키고 있던 복면 프로레슬러 슈퍼 스트롱 머신의 정체를 TV 생방송에서 대놓고 까버린 인물이기도 하다. 일명 "너 히라타지!(お前平田だろ!)" 사건으로, 1985년 5월 17일, 쿠마모토 현립 종합 체육관에서 아이언 마이크 샤프하고 IWGP 토너먼트 1차전을 마친 직후 쇼군 KY 와카마츠에게 습격받은 후지나미를 슈퍼 스트롱 머신이 구하러 와줬는데, 후지나미가 갑자기 "히라타지? &%#@$[14] 히라타잖아 너! #$@$@%# 알고있다고 정체는!(平田だろ?平田だろ、お前! もうわかってんだ正体は!)"라고 말하며 정체를 감추고 있는 슈퍼 스트롱 머신의 본명을 대놓고 까버리는 대실수를 저질렀다. 이 발언의 가장 큰 문제는 당시 프로레슬링 인기가 좋았기 때문에 TV 생방송 중계되고 있었는데 거기에 고스란히 나갔다는 것... 머신도 당황했는지 자신의 마스크를 후지나미에게 내던지는 걸로 화답했다.[15] 머릿속이 정리가 안 됐는지 후지나미는 대기실에 돌아와서도 "내가 히라타지라고 말한 것? 팬의 99%가 히라타라고 정해놨을 것이다. 나는 반신반의했지만, 그걸 부딫혀 본 것이다. 마스크를 벗을 때 까지는, 녀석이 히라타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히라타라면 나랑 싸우는데 마스크는 필요없지 않느냐"라고 흥분 상태에서 횡설수설하며 이 사태를 더 미궁으로 끌고 갔다.
  • 후일 본인의 유튜브에서 "(마이크웤을 할) 여유가 없었으니까 머릿속에 있던게 툭 하고 튀어나와버렸어. 그게 "너 히라타지"였던거야. 지금이니까 개그로 웃어넘길 수 있지만 당시엔 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어. 가장 하면 안되는 걸[16]...(해버려서)"라고 회고했다.
  • 2012년 10월 인터뷰에서 그해 가을에 열린 일본 고교야구 고시엔 대회에서 후지나미 신타로가 주목을 받고 있었는데 우연히 TV를 보다가 일본에서도 드문 성씨였던 후지나미라는 이름을 듣고 관심을 가졌는데 자세히 보니까 본인 성씨인 후지나미(藤波)와 다른 후지나미(藤浪)라는 성씨였지만, 해외에 가면 영문도 같은 Fujinami이고, 후지나미라는 이름을 좋게 알렸으면 좋겠고, 다르빗슈 유처럼 좋은 선수가 되라는 덕담을 하였다.
  • 깔끔하고 사람좋은 외모에 안 어울리게 발음이 아주 안 좋다. 초슈 리키, 텐류 겐이치로와 더불어 발음 안 좋은 레슬러 3대장이었다. 오죽하면 용과 같이: 극 2에서 이들 셋이 특별 출연하는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알아맞추는 듣기 평가가 미션으로 있을 정도. 물론 셋 모두 혼마 토모아키보다는 발음이 낫긴 하다.(...)[17]
  • 어린 시절의 코바시 켄타와 만난적이 있는데, 코바시가 다이너마이트 키드에게 사인요청을 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한 충격으로 울고 있을때 와서 대신 사인을 해줬다고 한다.[18] 그리고 훗날 이 두 사람은 전일본에서 선후배 사이로 재회해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4. 둘러보기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역대 G1 클라이맥스 우승자
1991, 1992 1993 1994
쵸노 마사히로 후지나미 타츠미 쵸노 마사히로
파일:신일본 프로레슬링 로고.svg 역대 월드 태그 리그 우승자
1982,1983 1984 1985
안토니오 이노키 & 헐크 호건 안토니오 이노키 & 후지나미 타츠미 후지나미 타츠미 & 기무라 켄고
1984 1985 1986
안토니오 이노키 & 후지나미 타츠미 후지나미 타츠미 & 기무라 켄고 안토니오 이노키 & 후지와라 요시아키
1986 1987 1991
안토니오 이노키 & 후지와라 요시아키 후지나미 타츠미 & 기무라 켄고 후지나미 타츠미 & 빅 밴 베이더
1987 1991 1992
후지나미 타츠미 & 기무라 켄고 후지나미 타츠미 & 빅 밴 베이더 하시모토 신야 & 초슈 리키
파일:WWEHOF.jpg
2015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199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 가장 탁월한 레슬러
릭 플레어
(1987)
후지나미 타츠미
(1988)
릭 플레어
(1989)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최고의 테크니션
다이너마이트 키드
마사 사이토
(1984)
후지나미 타츠미
(1985, 1986)
타카다 노부히코
(1987)
타카다 노부히코
(1987)
후지나미 타츠미
(1988)
수신 선더 라이거
(1989)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MVP (최우수 선수상)
점보 츠루타
(1983, 1984)
후지나미 타츠미
(1985)
텐류 겐이치로
(1986 ~ 1988)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수훈상
아슈라 하라
(1979)
후지나미 타츠미
(1980)
텐류 겐이치로
(1981)
텐류 겐이치로
(1981)
후지나미 타츠미
(1982)
그레이트 카부키
(1983)
야츠 요시아키
(1986)
기무라 켄고
후지나미 타츠미
(1987)
후지나미 타츠미
(1988)
기무라 켄고
후지나미 타츠미
(1987)
후지나미 타츠미
(1988)
하시모토 신야
(1989)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감투상
텐류 겐이치로
(1983)
후지나미 타츠미
(1984)
타이거 마스크 II
(1985)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기능상
호시노 칸타로[19]
(1977)
후지나미 타츠미
(1979)
기무라 켄고
(1980)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신인상
설립 후지나미 타츠미
(1974)
미사와 미츠하루
(1982)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최우수 태그팀 상
사제 콤비([ruby(師弟, ruby=し てい)])コンビ
( 자이언트 바바 & 점보 츠루타)
(1978, 1980)
안토니오 이노키 & 후지나미 타츠미
(1981)
사제 콤비([ruby(師弟, ruby=し てい)])コンビ
( 자이언트 바바 & 점보 츠루타)
(1982)
파일:프로레스대상 로고.svg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연간 최고 시합상 (베스트 바웃) [★]
1983년
4월 3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WWF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_ 초슈 리키_ vs 후지나미 타츠미(C)
1986년
6월 12일
신일본 프로레슬링
'86 IWGP 챔피언 시리즈 25일차
B그룹 공식전[21]
마에다 아키라 vs 후지나미 타츠미

[1] 본명과 발음은 "후지나미 타츠미"로 같으며, 마지막 글자가 본명은 '뱀 사', 링네임은 '너 이'자라는 차이점이 있다. [2] 태어날 때는 히가시쿠니사키군(東国東郡) 무사시마치(武蔵町)였으나 2006년 다른 마치들과 합병되어 쿠니사키시가 되었다. [3] 일본의 프로레슬러. 본명은 후지나미 레오나([ruby(藤波, ruby=ふじなみ)] [ruby(怜於南, ruby=れ お な)]). 릿쿄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버지의 단체 드라디션에서 프로레슬러로 데뷔하여 활동하고 있다. [4] 본인의 허리 문제(추간판 헤르니아)로 사실상 봉인. [5] 풀 넬슨 백브레이커 [6] 마초 드래곤. 일렉트로닉 레게의 선구자 에디 그랜트의 Boys in the Street를 일본의 시인이자 작사가인 모리 유키노죠(森 雪之丞)가 일본어로 개사해서 후지나미 스스로가 커버한 곡. 들을수록 당황스러운 가창력에 질겁하게 되는 곡이지만, 본인 스스로 본인의 가창력이 결코 능숙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서도 팬서비스로 심혈을 다해 부른 노래(...)라고. 일본 시티팝의 아버지이자 타케우치 마리야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야마시타 타츠로 FM 도쿄에서 진행하던 본인의 라디오에서 이게 흘러나오자 "연주는 묘하게 잘하는데, 보컬은...이건 결코 웃기려고 하는건 아닐거예요"라고 냉정하게 후벼판 적이 있다. [7] 마초 드래곤보다 덜 유명해서 그렇지, 마초 드래곤보다 몇배는 더한 두번다시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할 괴작으로 평가받는 입장곡. 2분 30초부터 나오는 후지나미의 랩이 충격 그 자체를 선사한다. [8] 레전드 프로레슬러답지 않은 느긋한 곡을 테마곡으로 많이 써온 후지나미의 테마곡 중에서는 가장 웅장한 곡. 그래서인지 이 쪽을 가장 좋아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현재도 간혹 쓰인다. [9] 드래곤 수플렉스. 후지나미 타츠미의 상징곡. 현재도 가장 높은 빈도로 등장할 때 나오는 테마곡이다. [10] 일본 프로레슬링. [11] 카이 쇼지라는 링네임으로 더 유명하다. [12] 초대 챔피언 [13] 창설 당시의 단체명은 무가 월드 프로레슬링이며 신일본 후배인 니시무라 오사무와 공동 창립하였고 이듬해인 2007년 10월 니시무라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으로 소속을 옮기며 무가라는 상표명을 니시무라가 소유하고 있어서 2008년 1월 1일부터 단체명을 드라디션으로 변경하였다. [14] 후지나미의 발음이 워낙 안 좋은데다 당시 방송 음질의 한계로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15] 직후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으며, 버스에 탈 때 인터뷰에서 "와카마츠의 난입으로 뒤죽박죽이 돼서 마스크를 벗어버렸다. 히라타? 노 코멘트다."라고 말했다. 슈퍼 스트롱 머신은 이후 모든 걸 포기했는지 5월 30일에 도쿄 스포츠에 슈퍼 스트롱 머신 가면을 벗고 가면을 한 손에 든 채로 연습하는 사진을 내보내는 것으로 대응을 마무리했다. [16] 프로레슬링계에서 마스크맨의 정체를 밝히는건 웬만한 경우가 아닌 이상 금기다. [17] 물론 이쪽은 경기중 래리어트에 성대가 터져서 어쩔수 없다. 본인도 그냥 수술 안하고 사는게 편하다고 생각하는거 같고... [18] 참고로 코바시는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은 절대 팬들의 사인요청을 거절하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하며, 실제로도 코바시는 가장 팬들에게 사인을 잘해주는 레슬러중 한 명으로 유명하다. [19] 재일교포로 한국명은 여건부. 한국에서는 김일 밑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했고 일본에서는 호시노 칸타로라는 이름으로 신일본 마계클럽의 수장으로 활동했다. 특기는 꿀밤 때리기. [★] 밑줄이 승리자. 다자간 매치의 경우 이름 옆 (O)가 핀폴자, (X)가 피핀폴자. [21] 더블 KO 무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