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백문(伯文) |
본관 | 부림 홍씨(缶林)[1] |
출생 | 1894년 1월 22일 |
경상도 의흥현 부남면 대율동 (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2] 862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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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60년 11월 30일[3] |
경상북도 칠곡군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198호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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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홍영우는 그의 9촌 삼종숙(三從叔)이다.
2. 생애
1894년 1월 22일 경상도 의흥현 부남면 대율동(현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에서 아버지 홍승우(洪承佑, 1874 ~ 1920)와 어머니 문화 류씨(1873 ~ 1895)[4]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20년 음력 7월경, 군위군 부계면 동산동에 있던 28촌 지간의 족조(族祖) 홍정수(洪定修, 1872 ~ 1970)[5]의 집에서 홍영우 등과 함께 일심동체를 서약하고, 흠치교에 8인조의 교도로 가입해 치성비 50원을 납부하고 신도를 모집한 혐의를 받아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6월 4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 이송되었으며, 7월 8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즉 정치범 처벌령 위반 및 사기 혐의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 형사제2부에서 다만 미결 구류일수 중 120일이 본형에 산입되었을 뿐 공소가 기각되었다.
이에 홍창흠은 상고하였으나 11월 30일 상고를 취하하고 결국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2년 5월 14일 출옥한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60년 11월 30일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별세하였다.
2008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2010년 4월 11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4묘역에 이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