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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도키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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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여담4. 대중매체에서

1. 개요

北条 時行
1325년 ~ 1353년

남북조시대의 남조 측 무장으로, 가마쿠라 막부의 제14대 싯켄이었던 호조 다카토키의 차남이자 호조 가문의 종가인 도쿠소의 최후의 생존자였다.[1]

2. 생애

1325년에 싯켄 호조 다카토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형 구니토키의 어머니는 호조 가문을 모시던 고다이인 가문의 딸로 측실이었으며, 도키유키의 어머니는 대를 이어 호조 종가와 통혼하며 싯켄의 부인이자 어머니를 배출해온 아다치 가문 출신의 여성이었다. 당대에는 출생 순서보다 좋은 집안 출신의 어머니의 소생이 후계자로 여겨졌고, 호조 가문에 시집을 온 아다치 가문의 부인이 낳은 아들이 대대로 싯켄을 역임했기에 도키유키가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형 구니토키가 측실 소생이라는 약점을 무릅쓰고도 후계자로 선정되었다.

1333년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할 당시 닛타 요시사다에 의해 가마쿠라가 함락되자 스와 요리시게에게 의지해 스와 대사로 피신했다.[2]

1335년에는 호조 가문의 잔당과 스와 가문을 따르는 세력 등을 규합해 나카센다이의 난을 일으켜 시나노국의 슈고였던 오가사와라 사다무네와 싸워 이겼고, 겐무 신정의 세력이 임명한 지방관인 고쿠시(국사)를 살해한 뒤, 토벌군과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동생으로 가마쿠라를 지키고 있었던 아시카가 다다요시의 병력도 대파하여 겐무 신정 세력으로부터 가마쿠라를 탈환했다. 그러나 이후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토벌군에 패배하고, 불운한 사고로 인해 수백 명의 병사를 잃는 등 운마저 따라주지 않아 나카센다이의 난은 진압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스와 요리시게 등은 할복했고, 호조 도키유키는 가마쿠라를 탈출해 달아났다.

나카센다이의 난 진압 과정에서 고다이고 덴노와 다카우지는 갈등을 겪게 되어 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고, 고다이고 덴노가 요시노로 탈출하여 남조를 세우면서 남북조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에 호조 도키유키는 남조 측으로 귀순하여 사면을 받게 되었다.

1337년 남조 측에 속한 오슈( 무츠국)의 진수부장군이었던 키타바타케 아키이에가 교토 탈환을 위해 거병하자, 호조 도키유키도 이에 가담해 이즈 반도[3]에서 궐기했고, 적장 시바 이에나가를 전사시킨 뒤 가마쿠라를 재탈환했다. 이후로도 아키이에를 따라 아오노가하라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아키이에는 이후 이어진 이시즈 전투에서 패배한 후 전사해버려 도키유키는 또다시 탈출하게 되었다.

1352년 남조 측에 선 과거의 원수 닛타 요시사다의 아들들인 닛타 요시오키, 닛타 요시무네 형제 및 무네요시 친왕 등과 함께 거병해 스와 가문을 회유하고, 미우라 가문의 지원을 받아 세번째로 가마쿠라를 되찾았으나, 금방 다시 북조군에게 빼앗겼고 이후 아시카가군에 잡혀 가신들과 함께 처형당했다.[4]

3. 여담

센고쿠 시대 후호조씨 에도 시대 말기 구마모토의 번사(藩士)이자 메이지 시대의 정치가였던 요코이 쇼난(横井小楠)이 호조 도키유키의 후손을 자칭했다. 후호조씨의 경우에는 2대조 호조 우지쓰나의 정실이자 호조 우지야스의 어머니였던 요주인 도노(養珠院殿)가 도키유키의 후손이라 일컬어지는 요코이 가문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니 어떻게 보면 후호조씨도 아예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 내에서도 그다지 인지도가 있는 인물은 아니라서 교과서에서 잠깐 나오고 잊히는 쪽에 가깝다. 베테랑 만화가 마츠이 유세이가《 소년 점프》에《 도망을 잘 치는 도련님》을 연재하여 주목을 끈 뒤에야 인지도가 폭등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이 문서도《도망을 잘 치는 도련님》의 정발 이후에 생성되었다. 당장 해당 만화의 1화에서 작가 내레이션으로
'호조 도키유키의 이름은 역사 교과서에 한 번쯤 나올까 말까 하며, 그나마도 시험이 끝나면 대부분 잊어버릴 것이다.'
라며 소개하고 있다.

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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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파일:호죠 토키유키.jpg
마츠이 유세이의 만화《 도망을 잘 치는 도련님》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일본의 역사적 인명 표기의 경우 외래어 표기법/일본어를 따르는 경우가 많으나, 이 만화 및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경우, 통용 표기인 '호죠 토키유키'로 알려져 있다.


[1] 호조 도키쓰라라고 읽어야 한다는 설이 있다. [2] 호조 다카토키의 장남이자 도키유키의 이복형이었던 호조 구니토키는 외삼촌인 고다인 무네시게의 배신으로 닛타군에 사로잡혀 죽었다. [3] 호조씨의 옛 근거지였다. [4] 도키유키의 생존설이 민간전승에 존재하기는 하나 일본에서 이런 소재는 거의 단골손님격으로 나오기 때문에 신뢰도는 제로에 가깝다. 가장 유명한 설로는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대륙에 건너가 칭기즈칸이 되었다는 것이고(...) 이외에도 도요토미 히데요리 오사카 전투에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