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 노베야마 에이소(延山永祚) |
본관 | 연주 현씨[2] |
출생 | 1910년 5월 7일 |
경상북도
하양군 중림면 죽림동 (현 경상북도 경산시 진량읍 상림리 중림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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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3년 10월 29일 (향년 73세) |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 |
상훈 | 건국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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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4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독립유공자 현용주는 그의 형이다.
2. 생애
1910년 5월 7일 경상북도 하양군 중림면 죽림동(현 경산시 진량읍 상림리 중림마을)에서 아버지 현기근(玄基根)과 어머니 경주 최씨 사이의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그는 일제강점기 말 경상북도 경산군 진량면 상림리에서 상림교회(上林敎會) 집사로 활동하던 중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43년 6월 18일 밀보를 받은 일본 경찰들이 당시 봉회교회 장로 김종철(金鍾徹)의 집을 수색했는데, 이때 봉회교회·상림교회·평사교회 등에서 시무하던 교역자 강만조 장로가 출애굽기 20장을 본문으로 하여 '민족주의자 모세를 본받자'라는 제목으로 " 2차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할 것이며 머지않아 한국도 독립이 된다"는 요지로 쓴 설교 메모가 발견되었다.
일본 경찰들은 이를 빌미로 현영조를 비롯한 세 교회의 장로·집사 등 14명을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모두 체포하였다. 그는 미결수로 1년 4개월간 옥고를 치르다가 1944년 11월 11일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혐의없음 판결을 받고서야 출옥할 수 있었다. #
이후 고향 경산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83년 10월 2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1]
1944년 형사사건부에는
[2]
사평공파 26세 종(鍾) 항렬. 족보명은 현종후(玄鍾厚).