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Helen Patricia Sharman OBE FRSC는 영국 최초의 우주인이자, 미르 우주정거장에 탑승한 최초의 여성이다.2. 어린 시절
1963년 셰필드에서 태어난 헬렌 셔먼은 과자를 너무도 좋아했다. 그렇게 과자를 너무도 좋아했던 소녀는 셰필드 대학교(University of Sheffield)에 진학하여 화학 학위를 따고 버크벡 런던 대학교(Birkbeck, University of London)에서 박사 학위를 땄다. 이후 제너럴 일렉트릭 컴퍼니[1]에서 일한 뒤 마즈[2]에 들어가서 식품공학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이 시절에는, 쉽게 말해 어떻게 하면 초콜릿을 더욱 맛있게 만들까 하는 연구를 했다.3. 프로젝트 주노
그러던 셔먼은, 어느날 신문에서 이런 광고를 본다.우주인 구함. 경력 무관. (Astronaut wanted. No experience necessary.)
이것이 바로 사설 투자 컨소시엄 '주노'가 발족하며 "영국 우주인을 배출해보자!"며 시작된 프로젝트 주노(Project Juno)였다.[3] 이 광고를 보고 1300명 이상의 영국인이 바글바글 달려들었고, 주노는 최종 4인의 후보를 선발했다. 이들은 영국 해군 군의관 고든 브룩스(Gordon Brooks), 영국 육군 헬리콥터 조종사 티모시 메이스(Timothy Mace) 소령, 킹스턴 대학교 강사 클라이브 스미스(Clive Smith), 그리고 홍일점인 식품공학자 헬렌 셔먼. 이 4인 중에서 다시 2인을 추려서 메이스 소령과 셔먼이 남았고, 최종적으로 소련군이 꺼릴만한 영국군 관계자인 메이스가 예비 승무원이 되고 셔먼이 정규 승무원으로 선발되어 소련 스타 시티로 향했다.
이 프로젝트가 사실 굉장한 것이, 국가적인 지원이 없이 오로지 대중 홍보와 그에 낚인 대인배 스폰서들의 십시일반 투자, 그리고 ITV에 방송권 판매를 하는 등 비용을 충당했다. 사실 영국 정부도 투자하려 했다가 투자를 철회한 것이다. 영국 정부의 지원 거부로 최종 모금액은 전체 비용에 못 미쳤고, 셔먼은 아쉽게 훈련을 포기해야 했는줄 알았는데, 당시 개혁개방 가도를 이끌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통크게 지원금을 쏴줬다. 그 덕에 일부 실험이 취소되거나 축소되는 난관 속에서도 셔먼은 18개월간 스타 시티에서 고강도 훈련을 견뎌내고 인테르코스모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소유즈에 탑승할 수 있었다. 셔먼이 탑승한 소유즈 TM-12의 발사일은 1991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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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먼의 옆에는 아나톨리 아르체바르스키(Анатолий Павлович Арцебарский, Anatoly Pavlovich Artsebarsky, 소유즈 사령관), 세르게이 크리칼료프.[4]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의 성공적인 발사와 미르에 도킹으로 영국 최초의 우주인이 역사에 기록되었고, 미르의 역사에서도 최초의 여성 탑승자가 배출되었다.[5] 이렇게 8일 동안 미르에서 영국의 학교와도 무선 교신을 하고 이런저런 실험, 사진 촬영을 하며 영국 우주 개발사에 이정표를 세운 뒤 소유즈 TM-11에 탑승하여 귀환[6]했다.
미르에서 승무원들과 함께... 사진에서 크리칼료프를 제외한 두 사람은 무사 마나로프(Муса Хираманович Манаров, Musa Manarov)와 빅토르 아파나시예프(Виктор Михайлович Афанасьев, Viktor Mikhailovich Afanasyev)로, 소유즈 TM-11로 셔먼과 함께 돌아왔다.
돌아온 뒤 셔먼은 영국의 슈퍼스타가 되었고, 왕실에서 작위를 받고 대학 교수가 되었다. 이후 ESA의 우주비행사 후보로 지원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탈락한 뒤 우주비행사의 커리어를 접고 통신회사에 취직했다. 한편 셔먼의 백업이었던 메이스도 셔먼과 함께 ESA 우주비행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졌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가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전속 헬기 조종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또한 스타 시티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러시아 우주인 비탈리 졸로보프(Виталий Михайлович Жолобов, Vitaly Mikhaylovich Zholobov)가 사위가 되었다.
4. 근황
지금은 여러 우주개발 홍보나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50대까지도 곱게 늙었다. 영국이 우주인 배출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도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기에 셔먼의 우주 비행을 계기로 90년대에 유인 우주 프로그램에 활발히 나서지 못하며 명맥이 끊기긴 했지만 그래도 영국인들은 셔먼의 족적을 인정하는 편. 이따금씩 ESA나 NASA, 로스코스모스 우주비행사들과 행사에 다니며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은 없었지만 영국 최초의 우주인이라는 기록은 상당한 명예였기에 이후 영국에서는 셔먼의 족적을 크게 기리며 박물관에 셔먼의 소콜 우주복을 전시하는등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5. 기타
한편, 셔먼 이후의 영국 우주인들은 모두 복수국적자들이다. NASA에서 활동하며 영국인 최초로 EVA를 수행한 천체물리학 전공 우주비행사 마이클 폴(Michael Foale)[7]이라던지 사비 들여서 우주에 진출한 관광객 마크 셔틀워스나 리처드 개리엇 역시 남아프리카 태생, 미국 우주비행사 오웬 개리엇의 영국에서 태어난 아들이라는 점에서 유니언 잭 달고 우주 나간 영국 우주인은 아니다. 뭐 그래도 마이클 폴 등 NASA에서 활동한 영국인들은 NASA에서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영국 출신임에도 미국 국적을 일부러 취득하거나 애시당초 태어날 때부터 이중국적이었던 경우인지라 영국 우주비행사로 인정받는데에 이의는 없다. 국제적인 협력이 당연시되는 오늘날의 유인 우주개발 프로젝트에서 순수혈통 따위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기도 하다. 그래도 2015년 12월 시작된 ISS 엑스퍼디션 46 임무에서 영국군 헬리콥터 조종사 출신의 ESA 우주비행사 팀 피크(Timothy Peake)가 합류하며 오랜만에 영국 우주인의 계보를 이어가게 되었다.영국 최초의 우주인이면서 영국 최초의 여성 우주인이기도 한데 국가별 최초의 우주인이 여성인 경우는 영국의 헬렌 셔먼과 한국의 이소연 오직 둘 뿐이다. 그러나 헬렌 셔먼은 우주에 다녀온 뒤 영국의 영웅이 되어 국민적 사랑을 받고 잘 지내고 있는 반면 이소연은 논란에 휩싸여 국민적 욕을 먹거나, 잘 봐줘야 전시 행정의 희생양이었다는 평을 받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완전히 흑역사가 되었다는 큰 차이가 있다.
[1]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과는 다른 회사.
[2]
화성 탐사나
우주 식량 같은 것과 전혀 무관한 미국 회사. 그냥 창업주와 경영주 가문이 Mars인데 그것 갖고
은하수 초코바, 화성 초코바 같이 상표를 만들었다. 스니커즈,
스키틀즈도 이 회사의 효자상품이며, 이 회사 과자나 초콜릿들은 한국에도 수입되어 꽤 잘 팔린다.
[3]
영국은 1986년 6월에 STS-61-H 미션으로 공군 군인이던 나이젤 우드를 미국 우주왕복선에 태울 예정이었지만
챌린저 참사로 취소되었다. 이 시기 소련은 일본의 기자인 아키야마 토요히로를 미르에 탑승할 우주인 후보자로 훈련시키고 있었다.
[4]
이 비행으로 시작된 크리칼료프의 통산 2번째 미르 체류 기간에 소련이 해체되었다.
[5]
여성 장기 체류자로는 옐레나 콘다코바와 섀넌 루시드 두 명이 있다.
[6]
이런 우주비행 참가자들은 대개 소유즈를 타고 올라가서 잠깐 지낸 뒤 이전 팀이 귀환할 때 타는 소유즈에 같이 탑승하여 돌아왔다.
[7]
대학원까지도 다 영국에서 나왔다. 어머니가 미국인이라 미국 복수국적이 있었던 덕에 어릴 적 미국에서 우주에 눈을 떴고 에세이로 사정사정한 끝에 NASA에 합격. 이후 무려 6차례의
우주왕복선 미션과 큰 고장이 많이 발생하던
미르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ISS에서도 체류하는 등 많은 기록을 남기며 영국인 우주비행사로서 가장 강렬한 기록을 남겼고, 영국에서도 그에게 셔먼보다도 높은 CBE 작위를 내리고 여러 곳에 이름을 붙이는 등 높이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