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아랍어 اﻹﻣﺎرة اﻟﻬﺒﺎرﻳﺔ [1]신드어 ھباري خاندان
854 ~ 1010년간 인더스 강 하류의 신드 지방을 지배한 아랍계 이슬람 왕조. 9세기 압바스 왕조의 쇠퇴를 틈타 자립하였으며, 이란과 인도 간의 중개 무역으로 번영하였다. 명목상 압바스 칼리파의 수위권을 인정하였지만 쉬아 편의 파티마 왕조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11세기 초엽 가즈나 왕조와 충돌하며 쇠퇴하다가 이라크 출신의 카피프에게 찬탈당하며 멸망하였다.
2. 역사
711년 무함마드 빈 카심 휘하의 아랍 군대가 브라흐만 왕조를 정복한 후 신드 지방은 이슬람화되기 시작되었고, 우마이야 왕조와 압바스 왕조의 지배 하에 놓였다. 이슬람 제국의 동쪽 끝에 위치한 신드 주는 오늘날의 신드 지방은 물론 마크란, 발루치스탄 동부, 펀자브 남부 등 광범위한 지역을 포함하였다.중심지인 아로르를 기점으로 그 남쪽은 불교, 북쪽은 힌두교가 우세하였다.[2] 8세기 중반엔 후에 바그다드 건설을 주도하는 바르마크 가문의 할리드는 칼리파 알 만수르를 기념한 도시 만수라를 건설하여 새로운 중심지로 삼았다. 9세기 들어 압바스 조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총독 비샤르 이븐 다우드가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곧 사면을 대가로 항복하였다. 다만 9세기 중엽 사마라의 혼란과 함께 중앙 권력이 붕괴되자 신드에는 만수라, 물탄, 쿠스다르, 마슈케이 등을 기반으로 한 자치 공국들이 할거하였다.한편 8세기의 신드 정복 후 아랍인들 중에서도 존경받던 쿠라이쉬 계열인 합바리 부족이 신드로 이주하였다. 다섯 세대가 흐르는 동안 바니야 지방을 중심으로 농업과 상업을 통해 두각을 드러낸 합바리 부족은 841-42년 신드의 아랍 이주민들이 예메니와 히자지 계열로 나뉘어 내분을 벌였을 당시 후자의 편에 섰고, 예메니에 우호적인 총독 이므란 빈 무사 바르마키를 암살하였다. 합바리 부족의 지도자 우마르 이븐 압둘 아지즈는 사실상 신드의 통치자가 되었고, 854년 칼리파 알 무타와킬은 그를 총독으로 승인하였다. 860년대 사마라의 혼란으로 압바스 조의 지배력이 붕괴하자 우마르는 금요 예배에서 칼리파를 언급하는 것 외에는 독립된 아미르로 변모하였다. 883년 그는 만수라를 수도로 삼았고, 이듬해 사망하였다. 한편 아로르 일대는 여전히 현지 힌두 라자가 아미르의 제후로서 통치하였고, 물탄에는 바누 무납비흐의 공국이 세워졌으며 바누 마아단이 마크란에서 자립하였다.
9세기 말엽엔 발루치스탄의 수장 무기라 빈 아흐마드가 키즈카난 (칼라트)를 중심으로 자립하였다. 우마르의 아들 압둘라 (884 ~ 914년), 후자의 아들 우마르 (914 ~ 943년)의 시대를 지나는 동안 신드와 수도 만수라는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다만 점차 사파르 왕조. 사만 왕조 등 이란계 국가들에 복속했던 합바리 조는 11세기 들어 가즈나 왕조의 술탄 마흐무드의 위협에 직면하였다. 압바스 조의 영향력 재정립을 명분으로 삼은 마흐무드는 우마이야 시절에 이주해 왔고 10세기 이후 파티마 왕조의 이스마일파 쉬아 선교를 허용한 합바리 일족을 구체제의 잔재로 여기고 적대하였다. 혼란이 이어지던 1010년 우마르 빈 압둘라의 손자 만비 이븐 알리가 압바스 칼리파에 의해 파견된 이라크인 카피프에 의해 대체당하며 합바리 조는 멸망하였다. 다만 카피프는 이내 파티마 조에 충성하였다가 1026년 마흐무드의 공격을 받아 축출되었고, 2세기 넘게 번영하던 만수라는 파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