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 히라하라 다쿠교(平原宅敎) |
본관 | 청주 한씨[1] |
출생 | 1920년 9월 29일[2] |
경상북도
예천군 제고면 성암동 (現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성현리 천내마을[3] 159번지[4]) |
|
사망 | 1995년 1월 17일 (향년 74세)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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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2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1920년 9월 29일 경상북도 예천군 제고면 성암동(現 예천군 용문면 성현리 천내마을 159번지)에서 아버지 한재혁(韓在赫, 1903 ~ 1949. 3. 3)과 어머니 예안 김씨 김계진(金季鎭, 1898. 10. 19 ~ 1982. 8. 23)[5] 사이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일본 오사카상과대학(現 오사카시립대학) 예과 2학년 재학 중이던 1940년 4월 천황제의 모순 및 일본 제국주의의 중국 침략의 부당함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이에 체포되어 1940년 10월 21일 징역 8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곧 출옥했다.
이후 복학해 오사카상과대학[6]을 졸업하고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교사로 재직하다가 고등학교 교감으로 정년퇴임했고, 퇴임할 당시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여받았다.
1995년 1월 17일 별세했다.
202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
[1]
장도공파(章悼公派) 29세 교(敎) 항렬.(
족보)
[2]
청주한씨제7교대동족보 29권 1236쪽 참조.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는
1912년
11월 10일로 기재되어 있다.
[3]
한택교의 8대조 한규(韓槼, 1604 ~ ?. 4. 13)와 12촌 지간인 한표(韓漂)가 1580년 무렵에 이 마을을
개척했다고 한다.
[4]
1910년부터 1918년
토지조사사업 당시 작성된
지적원도에 따르면, 1910년대 당시 이 지번의 필지는 한택교의 조부 한규섭(韓奎燮, 1855 ~ ?. 5. 17)의 소유였다. 이후 1947년 4월 7일 한택교의 아버지 한재혁(韓在赫, 1903 ~ 1949. 3. 3)에게로 소유권이 이전되었고, 2002년 3월 27일 한택교의 장녀 한영숙(韓英淑, 1948. 1. 5 ~ ), 차녀 한명숙(韓明淑, 1952. 8. 15 ~ ), 3녀 한경애(韓慶愛, 1955. 7. 5 ~ ), 4녀 한정숙(韓貞淑, 1957. 8. 3 ~ ) 등 4명의 공동소유가 되었다. 2022년 4월 25일 한택교의 장녀 한영숙의 소유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5]
김환규(金煥奎)의 딸이다.
[6]
청주한씨제7교대동족보 29권 1236쪽에는 '오사카법전(法專)'을 졸업했다고 등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