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18 13:48:41

한상욱(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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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창원 LG 세이커스 단장
CHANGWON LG SAKERS
파일:LG 한상욱 단장.jpg
한상욱
<colbgcolor=#C30452> 출생 <colbgcolor=#ffffff,#191919> 1964년 6월 30일 ([age(1964-06-30)]세)
직업 농구팀 단장
학력 건국고등학교 (졸업)
구마모토상과대학교 (경제학 / 학사)
규슈산업대학교 (경제학 / 석사)
입사 1991년 금성사
소속 금성사 (1991~1994)
금성농구단 (1994~1997 / 운영마케팅홍보담당)
창원 LG 세이커스 (1997~2000 / 사무국 대리)
창원 LG 세이커스 (2000~2007 / 사무국장)
파일:LG전자 3D 로고.svg (2007~2009 / 한국마케팅팀)
창원 LG 세이커스 (2010~2016.10 / 사무국장)
창원 LG 세이커스 (2016.11~ / 단장)

1. 개요2. 행보
2.1. 약력
2.1.1. 창원 LG 세이커스 창단 대리 시절2.1.2. 창원 LG 세이커스 사무국장 시절2.1.3. 창원 LG 세이커스 단장 시절
3. 비판4. 참고 자료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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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4년생의 기업인.

창원 LG 세이커스의 프런트 창단 멤버이자 현 단장.

2. 행보

2.1. 약력

건국고등학교-구마모토상과대학-규슈산업대학교 대학원을 거쳐 금성사에 입사한 LG인

2.1.1. 창원 LG 세이커스 창단 대리 시절

1994년 초 농구단 창단을 준비하던 LG 전자는 사내 공모를 통해 프런트로 일할 지원자를 찾았다.

당시 공모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뽑힌 주인공은 일본 규슈산업대를 졸업하고 수출 파트에서 일본 담당으로 일하던 입사 3년차 대리급 직원이었다. 그는 그해 5월 비밀리에 대만으로 날아가 지도자로 활약하던 이충희를 만나 초대 감독 영입작업을 펼쳤고, LG전자는 다음달 ‘금성 농구단’ 창단을 발표했다.

대리로서 역대급 신화를 창초하게 된다.

창단이자 신생팀이었던 LG 농구단은 당초 경험있는 지도자가 절실했다.

이어 진로 맥카스를 인수 이후 창단한 SK 농구단의 경우 안준호라는 40대의 나이에 초대 감독을 한 것과 보면 대조적이었다.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끈 슈터이자 현대전자의 슈터로 알려진 대만리그 선수-감독을 거쳤던 이충희를 초대 감독으로 영입했다. 이 부분은 KBL 30대 감독 시대를 연 역대급 파격이었다. 당시 스타는 양희승이었지만 구단과 연봉차이를 이유로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로 인해 이충희 초대 감독은 3년만에 물러나게 되었다.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KBL에 데뷔한 1997-1998 시즌 정규리그 2위를 함께했다.

2.1.2. 창원 LG 세이커스 사무국장 시절

조우현의 이적과 조성원의 MVP 시즌 때도 자리를 지키면서 2000-2001 시즌 정규리그 2위와 KBL 파이널을 지원했다.

2년뒤 강동희의 트레이드 영입과 김영만의 트레이드 영입 시절이었던 김태환 감독 시절에도 자리를 지키면서 4년 연속 플레이오프와 함께 초대 이충희 시절 못지않은 최고 인기를 누리게 된다.

물론 2004-2005 시즌은 슬럼프였다.

하지만, 2005-2006 시즌과 2006-2007 시즌 창단 10주년을 앞두고 KBL 최고의 명장이자 현대-KCC의 레전드 사령탑였던 신선우 감독의 영입과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었던 현주엽 선수와 조상현 선수의 FA 영입을 주도하며 2006-2007 시즌 정규리그 2위를 지원했다.

이후 잠시 퇴사를 한 뒤 허병진 단장 재임 시절이었던 2010-2011 시즌에 재입사를 하면서 또 놀라운 일을 해내게 된다.

KBL 대표 명장으로 동양-오리온스의 명장이었던 김진 감독의 선임을 하면서 문태영의 친형으로 귀화 FA인 문태종 선수의 영입을 주도하면서 2013-2014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지원했다. 자신도 그 시절 1달간 집에 못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 시절 단장은 LG 전자 최상위 직원으로 NBA 시카고 불스의 전성기를 현지에서 보았던 김완태 단장이었다. 김완태 단장은 사실 스포츠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스포츠마케터에 가까운데 그야말로 고생을 사서 한 격이다. 그 후 김종규 영입 등 호재가 겹치며 역대급 시즌을 보내게 된다.

2.1.3. 창원 LG 세이커스 단장 시절

2016-2017 시즌을 앞두고 창단 첫 프런트 출신이자 KBL에서 두번째 사무국장 출신으로 승진과 함께 현재 창원 LG 세이커스의 7대 단장으로 승진하면서 무거운 중책을 받게 된다.

허병진 단장과 김완태 단장의 후임이라는 소식보다 KBL 최고 인기구단의 창단 직원 출신 단장의 첫번째 사례라는 소식이 더 놀랍게 여겨졌다.

프로농구에서 사무국장 출신 단장은 손에 꼽는다. KCC 최형길 단장은 농구 선수 출신으로 사무국장을 거쳐 단장까지 올랐고, 김인양 전 LG 단장도 사무국장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하지만 말단 직원으로 출발해 사무국장을 거쳐 단장으로 승진한 사례는 한 단장이 처음이다. 무엇보다 LG 농구단 탄생의 산파로 일했고, 그 이후 1997년 프로농구 출범과 더불어 지금껏 함께 호흡해온 주인공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2017-2018 시즌 개막과 함께 그 동안 서울 방이체육관(1997~2014)과 이천 챔피언스파크(2014~2020) 시절을 뒤로하고 연고 내 LG 전자 창원공장의 영향과 함께 KBL 프로농구연맹의 연고정착 권고에 의해 홈 경기장인 창원실내체육관을 LG 세이커스의 진정한 홈 정착이자 창원보조체육관을 클럽하우스로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진정한 창원 LG 세이커스의 첫번째 단장으로 알리게 되었다.

그 이전 2018-2019 시즌 KBL 농구영신 경기 개최와 2018-2019 시즌 KBL 올스타 게임 개최의 사업도 추진했다.

2020년 07월 03일 창원시청에서 허성무 창원시장과 함께 업무협약 계약을 체결했다.

연고이자 홈코트인 창원시 창원실내체육관 임대료 삭감 및 출퇴근 포함 진정한 창원 LG 세이커스의 문화를 만든 첫번째 LG 농구단 단장이 되었다.

추가로 사무국장에서 단장으로 승진한 두번째 인물이고 최초는 TG 삼보 엑서스 사무국장-동부 프로미 단장을 거쳐 전주 KCC 이지스 단장으로 장기집권하는 최형길 단장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실적을 낸 단장은 아니다. 하단 비판론 참고.

3. 비판

창단 20주년이었던 2016-2017 시즌 종료 이후 2013-2014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면서 3년 재계약을 했던 KBL 대표명장인 김진 감독의 재계약 포기 이후 역대급 흑역사를 섰다.

전임이었던 허병진 단장과 김완태 단장과의 길과는 반대로 갔다.

허 단장 시절에는 성적이 6강권이었지만 부족했던 강을준 감독을 잘 지원해주었고 김 단장은 젊은 선수로서 재건과 개편에 집중하면서 김진 감독도 함께 뜻을 맞추는 등 인화적인 모습과 함께 LG 농구 역대 최고의 경영인 출신 단장으로 모두가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팬들에게 소통하면서 스스로 자문을 받았다.

이런 부분은 농구잡지에서 나온 소식인데 타구단에 비해서는 정보가 나오는 편이다.

특히 2013-2014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김완태 단장님의 경우 단장 재임 시절 구단 직원들에게 역할론까지 했다. 그 중심에 한상욱 당시 사무국장이 있었다.

이로 인해 창단 동기였던 현 사무국장과 함께 LG 농구 팬들에게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자신도 단장이라는 무거운 중책을 받은 이후 조성민 선수의 트레이드를 하면서 역대급 라인업이라 했으나 돌아온 건 성적부진이었다.

대표적으로 2018-2019 시즌 종료 이후 2013-2014 신인왕이자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센터였던 김종규의 FA 잔류 실패 이후 역대급 비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전화기를 끄면서 사무국장이 예정도 없었던 KBL 센터에서 FA 이견차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결과론으로 단장으로서 성적조급증으로 인해 호불호가 뚜렷한 편이다.

전임 단장들과는 좋은 평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현주엽 감독 선임과 함께 두번의 9위로 실적평가는 좋지 못하다.

사무국장 시절에도 팬들과 격의 없는 소통을 했지만 돌아온 건 잡음 자체였다.

김완태 전 단장 시절에 전국구 사업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연속성의 1/10도 못했더니 팀은 성적부진까지 겹치면서 창원 홈 경기의 관중이 대폭으로 줄어들었다. 이것도 예능으로 버텼으나 식사 때 현주엽 감독 포함 직원들과의 소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성원 감독 선임 또한 면접까지 심도있게 했으나 명지대학교 감독 재임 시절을 보면 대학최약체로서 성적을 내지 못했는데 후보기피논란 끝에 선임한 비판이 따르고 있다.

추가로 세이커스 둥지라는 구단 홈페이지 개선의견에 일부 극성팬들의 테러와 함께 구단에서는 폐쇄를 한 이후 20-21 시즌에는 KBL 통합사이트로 이관하면서 과거의 세이커스 스토리까지 들고가지 않았다. 사실상 방치상태였다. 이 부분은 kt 소닉붐과 오리온 오리온스 및 KGC 인삼공사도 구단 홈페이지를 사실상 방치하면서 팬 이탈이 생겼는데 실제로 LG 세이커스 팬들은 DB 프로미에 맞먹는 수준을 감안하면 책임회피논란이라는 비판이 따르고 있다. 13-14 시즌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시절의 주역이었던 김영환 선수와 김종규 선수의 기록 삭제(이 부분은 KBL 사이트에서 복원 가능)에 이어 시즌회원에 대한 LG 유플러스 부산/경남 회원정보노출 사건까지 숱한 논란을 제기했다.

팬들에게 역대급 비판을 받는데도 불구하고 20 KBL CUP에서 랜선 응원을 했다. 솔직히 이 부분에 대해서 팬들간의 호불호가 있다.

추가로 시즌 중 답답한 모습을 보인 나머지 코로나 19로 인한 마스크 착용의무를 어긴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단장이 저렇게 쫓기는 모양새가 아닌가라는 의문을 농구기자들이 제보까지 했다.

온라인 농구채널인 이류농구의 류동혁 기자는 20년 넘게 취재한 결과 LG 세이커스 감독 선임의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는 불만을 토로하며 현주엽과 한상욱 단장에 강한 비판을 한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이미 LG 세이커스 역대 단장 중 명장이었던 김진 감독을 강을준 감독에게 자문받고 선임한 5대 허병진 단장과 NBA 시카고 불스 시절 전성기를 현장에서 보면서 꿈을 키우셨던 최고의 구단 단장으로 평가받는 6대 김완태 단장에 비해서는 사업실패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팬들의 거센 압박을 받고 있다.

아무리 전기전자공학 출신이고 비전공이라지만 단장으로서의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KCC 최형길 단장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퇴진 시위까지 벌이자는 글이 올라와 파장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 하나의 악재는 LG 세이커스 유소년 농구교실에 대한 일방통행까지 나오면서 파장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KBL 연고정착사업으로 인해 창원실내체육관의 보조체육관을 선수단 훈련장으로 바꾸면서 두가지 문제점이 나온 것이다

하나는 창원시 배드민턴계의 반발과 LG 세이커스 유소년 농구교실 창원지점의 반발이다.

창원보조체육관을 훈련장으로 바꾸기 이전 과거 창원시 배드민턴 동호회였는데 일방통행으로 인해 창원시 배드민턴 동호회에도 거센 비난을 받았다. 대신 창원시 배드민턴 동호회는 창원축구센터 내 체육관으로 이전하면서 일단락은 되었다.

더 이상 LG 세이커스 유소년 농구교실 창원지점 운영이 쉽지 않아지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창원의 미래 농구팬 유치실패에 이어 인근의 부산에도 LG 팬을 잃기 일부직전까지 놓였다. 팀 성적도 현주엽 선임 이후 두번의 9위 뒤 조성원 선임 후 첫해 꼴찌로 인해 아무것도 못한 단장이라는 비난도 받고 있다.

LG 세이커스 유소년 농구교실은 5대 강을준 감독 시절 당시 허병진 단장님 시절부터 시작했는데 그 시절 LG 세이커스는 팬 친화적이라는 긍정적인 평을 얻었다. 이후 허병진 단장은 김진 감독을 선임했고 후임이었던 김완태 단장은 전임 허병진 단장의 유소년 농구교실 사업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고향이었던 당진점에서 개설하는 등 전국구 인기구단의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한상욱 단장 부임 이후 LG 세이커스 유소년 농구교실 관련 소식은 농구잡지에서 귀신처럼 사라졌다. 이미 김완태 단장은 이 소식도 비판을 했다.

추가로 같은 연고권 팀인 kt 소닉붐의 경우 KBL에서 비인기이자 비주류팀으로 팬층과 유소년 층이 작은데 kt 소닉붐 유소년 농구교실 부산지점은 적어도 부산 사직체육관 내 보조체육관에서 훈련을 진행하는 걸 보면 또 하나의 비교대상이 되고 말았다.

지속적인 퇴진압박에 시달리지만 어떻게 된 영문인지 5년간 팀 성적은 김진 감독과 김영환 선수를 보낸 첫해 8위를 포함해서 현주엽 암흑기의 9-3-9라는 비밀번호도 모잘라 조성원 시련기의 창단 첫 꼴찌인 10이라는 숫자까지 더해졌는데 kt 소닉붐 최현준 단장과 함께 끈질긴 재임을 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2018-2019 시즌부터 부임한 이규홍 대표이사는 그 동안 KBL D 리그에 참가하지 않았는데 창단 첫 D 리그팀을 창단했다. 이 부분은 한상욱 단장의 사업과는 큰 연관은 없다.

4. 참고 자료

말단에서 책임자 오른 LG농구 한상욱 단장, “20번째 시즌, 창단 첫 챔피언 위해 최선의 지원”
인터뷰 창원LG 한상욱 단장
KBL·창원시, 올스타전 성공 개최 위해 손잡다...기초자치단체 중 최초
'농구 도시' 창원 LG, 선수단 연고지 이전 속도 낸다

5.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