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2:01:58

한봉철


파일:한봉철.png
성명 한봉철(韓奉喆)
이명 한상우(韓尙宇), 한봉철(韓奉哲), 한상우(韓相宇), 한진(韓震)
생몰 1898년 3월 2일 ~ 1936년
출생지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
사망지 만주 연길현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한봉철은 1898년 3월 2일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본래 중등학교 시절 기독청년회에 입회하여 활동했던 기독교 신자로, 1919년 3월 24일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에서 발발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해 양평군청과 양평우편소를 습격했다가 체포되어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따. 또한 1920년 6월에는 기독교계의 장로인 한진리(韓眞履)의 권유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배포하였다가 체포되어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1925년 4월에는 혁청단(革靑團) 선언 강령사건으로 종로경찰서에 검속되어 수일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만주 유하현 삼원보로 망명한 그는 공산주의에 경도되어 신활청년회(新活靑年會)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5년 12월 길림성 반석현(磐石縣)에서 남만청년총동맹(南滿靑年總同盟) 창립에 참여하였다. 남만청년총동맹은 1925년 11월 길림성 반석현에서 결성된 사회주의 계열의 청년단체로 일반대중의 문맹을 퇴치하고 강연회와 토론회 및 신문강독회 등을 통해 청년 학생들에게 일본 제국주의에 반대하여 신사상을 보급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9년, 한봉철은 목릉현에서 조선공산당 만주비서부 남만 제1구역의 조직부장을 맡아 청년운동 및 사회운동을 전개했고,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 독립사(獨立師)의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1934년 11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의 군수부장이 되었다. 그러나 1936년경 연길현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한봉철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