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왕향(王珦). 처음에 학성후에 봉해졌다가 학성부원군에 봉해졌으며, 1361년에 하정사로 파견되었지만, 길이 막혀서 가지 못했다.
공민왕이
홍건적을 피해 복주로 갔을 때 왕향은 동생 왕정과 함께 행재소에서 공민왕을 알현했다.
1377년에 환관 김수만의 아내와 전답과 백성을 가지고 다투었으며, 이에 왕향을 해치려 하면서 왕향에 대해
우왕에게 왕향이 임금에게 이롭지 못하다고 했다. 우왕이 순군에게 명령해 왕향의 집을 지키게 했으며, 우왕은 김수만의 아내, 김원로의 아내에게 거짓으로 무고했다는 자복을 받아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왕씨 숙청을 하면서 1394년 4월 15일에 15명과 함께 강화 나루에서 빠져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