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터 시티 FC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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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3a0><colcolor=#fff> 구단 | 레스터 시티 FC · 레스터 시티 WFC |
역사 | 역사 · 역대 유니폼 | |
선수단 | 스쿼드 · 스쿼드(간략) | |
역대 시즌 | 2014-15 · 2015-16 · 2016-17 · 2017-18 · 2018-19 · 2019-20 /리그 · 2020-21 /리그 · 2021-22 /리그 · 2022-23 /리그 · 2023-24 /리그 · 2024-25 /리그 | |
더비 매치 | 이스트 미들랜즈 더비 · M69 더비 | |
구단 시설 | 킹 파워 스타디움 · 필버트 스트리트 | |
관련 인물 | 위차이 시왓타나쁘라파 · 아이야왓 시왓타나쁘라파 · 역대 감독(1대~40대) · 역대 감독 · 레스터 시티 FC 100인의 선수들 | |
기타 | 킹 파워 · 아디다스 킷 스폰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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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버트 스트리트 스타디움 Filbert Street Stadiu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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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명칭 | 시티 비지니스 스타디움 |
위치 |
잉글랜드
레스터셔 주
레스터 필버트 스트리트 |
개장 | 1891년 |
폐장 | 2002년 |
철거 | 2003년 |
소유 | 레스터 시티 FC (1962~2002) |
운영 | 레스터 시티 FC (1891~2002) |
수용 인원 |
22,000명[1] 47,298명[2] |
그라운드 크기 | 110m × 76m |
홈 구단 | 레스터 시티 FC (1891~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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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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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1년에 개장하여 2002년 폐장할 때까지 레스터 시티의 굴곡지고 아름다운 역사를 함께한 경기장이다. 2003년, 레스터 시티가 새 홈구장인 워커스 스타디움으로 옮긴 후 1년 뒤 철거되었다.
2. 역사
2.1. 개장 전
창단 초기였던 레스터 포스 시절, 레스터는 제대로 된 경기장 없이 포스 로드 사우스의 개인 구장, 빅토리아 공원, 벨그레이브 로드, 밀 레인(현재의 드 몽포르 대학교 캠퍼스의 중심가)과 그레이스 로드 등에서 경기를 치뤘다. 이후 프로 클럽이 되고 밀 레인에 자체 경기장을 건설했지만 지역 자치 단체의 토지 개발때문에 다시 경기장을 이전해야했다. 그러던 중 1891년 여름, 필버트 스트리트가 되는 부지를 얻었고 이듬해 10월 필버트 스트리트를 세웠다.2.2. 개장 후
첫 건설때는 서쪽에 작은 메인 스탠드와 나머지는 흙으로 덮힌 전형적인 동네축구 필드였다. 1921년, 메인 스탠드를 더 크게 새로 짓고 1927년, 남쪽에도 지붕이 있는 스탠드를 지었다. 이후 북쪽, 동쪽 순으로 스탠드를 만들었다.그라나 제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메인 스탠드였던 서쪽 스탠드의 중앙이 파괴되었고 나중에 큰 화재도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1949년까지 스탠드를 다시 재건했고 경기장 최대 수용 인원은 42,000석까지 늘었다.[3] 이후엔 투광등을 설치하여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친선 경기에서 첫 선을 보이기도 했다.
1940년대 후반, 레스터는 필버트 스트리트 임대 계약을 종료하기로 했으나 의회 투표에서 다행히 살아남고 1962년, 3만5백 파운드에 경기장의 지분을 매입했다. 1971년에는 북쪽과 동쪽이 좌석으로 전환되고 경기장을 보호하기 위해 폴리에틸렌 덮개도 도입되었다. 이윽고 4년 후에는 북쪽 스탠드에 20개의 임원석을 만들었다. 에어 돔 역시 설치되었으나 1982년에 철거되었다.
1990년 1월, 레스터 시티는 힐스버러 참사로 인한 대책 마련을 위해 1994-95 시즌 전까지 입석 경기장을 없애고 전좌석 경기장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테일러 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이에 레스터의 이사진들이 새 경기장을 짓는 쪽을 검토했으나 결국엔 필버트 스트리트의 새로운 메인 스탠드를 설치하고 나머지 입석 구역은 좌석으로 바꾸는 쪽을 택하였다.
2.3. 폐장 및 철거
그러나 1990년대 말, 마틴 오닐 감독의 지도 아래 무지 이제트, 에밀 헤스키, 맷 엘리엇 등의 선수들의 활약으로 프리미어 리그의 중위권 사수, 두 차례의 리그컵 우승 및 한 차례의 준우승을 거두는 등 신흥 강호로써 입지를 다지며 작고 낡은[4] 필버트 스트리트는 매진되기 일쑤였고 이에 레스터의 이사진들은 새 경기장 건설에 다시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1998년 초에 2001-02 시즌에 맞춰 베데 아일랜드 사우스에 4만석 규모의 전좌석 경기장을 지을 계획을 발표했지만 2000년 1월 5일, 계획이 중단되었다.결국 2001년 11월 2일, 소어 강변에 위치한 프리먼스 워프에 32,000석 규모의 경기장을 지어 2003-04 시즌에 맞춰 개장하기로 하는 계획을 공개했다.
필버트 스트리트는 2002년 3월, 개발 회사에 375만 파운드에 매각되었다. 필버트 스트리트에서의 마지막 경기는 이미 강등이 확정된[5] 01-02 프리미어 리그 38R 토트넘과의 경기가 되었다. 맷 파이퍼가 다이빙 헤더 결승골을 넣으며 필버트 스트리트의 마지막 득점자이자 마지막 승리를 안겨주며 레스터는 필버트 스트리트와의 긴 동행을 마치게 되었다.
2003년 3월, 필버트 스트리트는 철거를 시작하며 역사에만 남게되었다.
3. 이후
필버트 스트리트의 부지 일부는 드 몽포르 대학교와 레스터 대학교 학생들의 숙박 시설인 필버트 빌리지가 되었다.또한 이곳을 거치는 도로 이름은 레스터의 전설적인 공격수 게리 리네커에서 이름을 딴 리네커 로드로 불린다.
나머지 부지는 주택 계발 예정지가 되었지만 금융위기로 인해 무산되었다. 이후 주차장 회사에 임대되기도 했지만 2012년 3월에 계약이 종료되었다.
4. 여담
- 레스터 시티의 마스코트인 필버트 폭스의 이름이 이 필버트 스트리트에서 영감을 얻었다.
[1]
폐장 당시
[2]
최대 기록, (vs
토트넘 홋스퍼
FA컵 5라운드)
[3]
여담으로 당시 경기장 재건할 때 투입된 인력의 대부분은 경기장 근처 수용서의 독일 포로들이었다.
[4]
일례로
마틴 오닐 감독은 새 선수를 영입할 때 낡은 동쪽과 북쪽 스탠드를 보지 못하게 했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5]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언급된 농담을 쳤던 오닐 감독은 구단과의 마찰로 팀을 떠났으며,
닐 레넌, 스티브 구피 등의 주축 선수들 역시 이탈하고 조직력도 와해되며 결국 오닐 감독이 떠난 후 2시즌 뒤인 01-02 시즌, 리그 34R에서
맨유에게 패배를 당하며 강등을 당하고 말았다.